'부동산 위선' 끝은 어디?
‘부동산 안정화’를 위해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법을 추진해온 정부여당 인사들이 법 시행 직전 임대료를 인상한 사실이 줄줄이 드러나고 있다.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위선’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일부 여당 인사들은 일련의 논란들이 자신들이 주도해 통과시킨 “주택임대차보호법 결함” 때문이라며 ‘제도 탓’을 하거나 사안의 본질과 어긋나는 해명을 늘어놓으며 논란을 더 키우고 있다.
전월세 인상률을 5%로 제한하는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을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당 법 시행 이틀 전 자신이 소유한 서울 아파트 임대료를 5%보다 높게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 법은 박 의원의 21대 국회 1호 법안이기도 하다.
국회 공보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박 의원은 지난해 7월 3일 보증금 1억원, 월세 185만원에 서울 중구 신당동의 아파트(84.95㎡)의 임대 계약을 새로 체결했다. 기존 임대료는 보증금 3억원에 월세 100만원이었다. 당시 전월세 전환율 4%를 적용하면 임대료를 9.1% 인상한 것이다. 지난해 9월 개정된 임대차보호법 시행령이 정한 전·월세 전환율 2.5%를 적용하면 인상 폭은 26.6%에 이른다.
박 의원이 한 임대차 계약은 신규 계약이라 전월세 5% 상한제 적용을 받진 않는다. 그러나 세입자 보호를 위해 임대료 인상폭을 5%로 제한한 법을 주도해놓고 정작 자신은 임대료를 대폭 올린 것이라 도덕성 타격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박 의원은 “부동산중개업소 사장님이 ‘시세보다 많이 싸게 계약한 것’이라고 했다”며 “살펴보니 시세보다 월 20만원 정도만 낮게 계약이 체결된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거 안정 등을 주장하였음에도 보다 꼼꼼하게 챙기지 못해서 시세보다 크게 낮은 가격으로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시세보다 싸게 계약했다”는 박 의원의 해명은 오히려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세입자 주거 안정을 외쳐놓고 정작 자신은 임대료를 대폭 인상하는 ‘민주당식 위선’에 분노를 느끼는 여론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여당 일부 의원들 또한 여전히 본질에서 벗어난 엉뚱한 해명을 늘어놓고 있는 모습이다.
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주도해 통과시킨 임대차법에 제도적 결함 탓에 박 의원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은 “(임대차법 시행 직전 임대료 대폭 인상 등에 관해선) 개인한테 맡겨둘 만한 문제가 아니고 제도적으로 결함이 있었다고 본다”며 “계약갱신에 대해선 5% 제한을 하고 신규계약은 자유롭게 풀어놓았는데, 수많은 임대인들에게 도덕적 갈등요소가 되거나 뭔가 시험에 들게 만드는 제도였다고 본다”고 이같이 말했다. 박 의원의 도덕성 문제가 아닌 제도의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노웅래 민주당 중앙선대위 공동선대위원장도 ‘박 의원이 임대료를 더 많이 깎아주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다는 식의 주장을 폈다.
노 위원장은 같은 날 오전 YTN 라디오 ‘출발 새아침’에서 “박주민 의원 건은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니 그 나름대로 자기는 폭리를 취하려 한 것이 아니라 깎아주려고 했던 것”이라며 “문제가 되니 더 많이 깎아줬어야 하는데 덜 깎아 준 것에 대해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야당들은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1일 오전 대표단회의에서 “민주당 정권 자체가 다주택자를 위한 기득권 집단이라는 사실은 이제 낯설지 않다. 비교적 진보적이고 양심적이라던 의원마저 알고 보면 발 빠른 집주인일 뿐”이라며 “유력 대선주자의 투기에 대한 사과든 정책 약속이든 진정성 없이 들리는 이유”이라고 지적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도 “전월세 5% 상한제를 골자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당사자가, 법 통과를 앞두고서는 자신이 소유한 집의 월세를 대폭 올렸다. 누구라도 배신감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강 대표는 “‘시세보다 낮은 금액이었다’는 해명은 올바르지 않다. 면피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만 보여줄 뿐”이라며 “앞에서는 사회정의를 외쳤지만 막상 자신의 말을 삶에서 실천하지 못했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도 전날 논평을 내고 “정권의 고질적 남탓까지 쏙 빼닮은 박 의원은 ‘부동산 중개업소 탓’까지 잊지 않았다”며 “김의겸 전 대변인의 ‘아내 탓’, 김상조 전 정책실장의 ‘집주인 탓’에 이어 끝이 없는 남 탓 시리즈”라며 “박 의원은 국회에서의 의정활동을 할 명분 자체가 없어졌다. 분명한 거취를 밝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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