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일상, 내겐 너무도 낯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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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1월 11일 09: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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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에도 일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어째서 이렇게 낯선 것인가? 새롭게 땅을 차지한 사람들과 그 때문에 자신의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 그들 사이의 오랜 대립. 그것이 나로 하여금 팔레스타인이라는 하나의 대지에서 삶을 자동적으로 탈각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생각이 이쯤에서 멈추자 곧 난감해진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당한 발화법이 어떤 식으로도 찾아지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뙈기의 땅』(엘리자베스 레어드 지음, 정병선 옮김, 밝은세상)의 작가 엘리자베스 레어드는 역시 다르지 않은 난감함에 처했으리라.

그러나 작가는 난감한 심정 뒤에 숨어 눌변을 변명할 수가 없다. 영국 출신의 작가 엘리자베스 레어드는 최대한의 화법을 찾아내어 소설의 언어로 팔레스타인과 그곳의 쉽지 않은 삶을 그리기 위해 자신의 거처를 이스라엘 점령지인 팔레스타인 라말라로 옮기기도 했다.

   
▲ 『한 뙈기의 땅』(엘리자베스 레어드 지음, 정병선 옮김, 밝은세상)
 

『한 뙈기의 땅』은 이방인에 의해 씌어진 것이지만, 문학적 이방인의 쓸모를 더 없이 요긴하게 드러내고 있다. 소설은 이스라엘 압력 단체들의 인쇄 중지 요구를 견디며 어렵게 세상에 왔다.

“이스라엘 군이 오늘 아침 가자 지구의 난민촌을 폭격했습니다. 세 살 난 아이를 포함, 팔레스타인인 아홉 명이 사망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한 명이 오늘 아침 예루살렘의 번화가에서 발포해 이스라엘 여성 다섯 명이 사망하고, 어린이 세 명이 중상을 당했습니다. 하마스의 대변인은….”

열린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뉴스는 연일 누군가의 부고를 알려온다. 이스라엘 군의 탱크가 일주일씩이나 시내를 점령하고 있다가 물러갔다. 사흘 째 되던 날 두 시간 동안 외출이 허락되었던 것을 제외하면 일주일간이나 통행금지인 채로 집 안에만 갇혀 있었던 셈이다.

아직 어린 소년에 불과하지만 카림도 안다. 지금 이 자유가 시한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언제고 군인들은 다시 밀고 들어올 것이며, 아무 예고 없이 누군가 죽거나 피흘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당면한 자유를 만끽하는 것만이 카림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세계적 축구 선수가 되고 싶은 팔레스타인 소년

세계적인 축구 선수가 되는 것, 카림의 첫 번째 소망이다.

"카림은 다섯 계단씩 뛰어 내려와 아파트 뒤의 공터로 향했다. 카림의 동작은 끝까지 압축되었다가 갑자기 퉁겨진 용수철처럼 탄력이 넘쳤다. 카림은 한시바삐 발끝으로 공의 감촉을 느끼고 싶었다. 공터에는 카림이 바라던 대로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다.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아무런 참견도 받지 않고 원하는 만큼 공을 찰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p.31)

자유란 이런 것이어야 옳을 것이다. 그 어떤 방해도 없이 가슴에 품은 소망 하나로 몸과 마음이 한껏 날아오를 수 있는 것. 허나 소년의 아홉 번째 소망으로 "살아남기. 혹시 총에 맞더라도 치료가 가능한 부위여야 함. 절대 머리나 척추가 아니기를, 인샬라."(p.12)라고 썼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소년은 군인들이 돌아오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소년은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자유에 대해 절대적으로 절박할 뿐이다. 소년의 열 번째 소망? 그것은 아직 괄호.

팔레스타인이 겪는 굴욕과 공포는 오래되었으나, 그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팔레스타인의 사람들은 날마다 이전의 굴욕과 공포를 갱신하며 산다.

"그렇게 당하고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게 분해요. 오는 길에 그 사람들이 아빠를 발가벗겼어요. 올리브 농장에서는 우리를 총으로 쐈죠. 우리의 땅이고 농장에서 그렇게 당하고도 아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엄마는 폭탄 공격 뉴스와 순교자 이야기를 듣고도 어떡하면 집까지 무사히 돌아갈 수 있는지만 걱정하잖아요. 정말 부끄럽고 화가 나요."(p.77)

소년은 분노할 대상을 알지만 아직 슬픔의 근원을 알지는 못한다. 분노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적대적 구도 속에서 빚어지고, 슬픔은 ‘적’과 ‘아’를 넘어선 자리에서 비로소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웃의 노인 아부 페이잘과 카림의 대화를 들어보라.

“인간이라구요? 할아버지께서는 그 이스라엘 정착민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래, 인간. 우리와 다를 게 없는 인간. 사실 난 바로 그 결론을 얻고 나서 아주 슬펐단다. 그들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기 때문이지. 우리도 그들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들은 인간이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었어.

만약 우리에게 그들을 압도할 힘이 있었다면, 아니 누군가를 압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도 그들과 똑같은 짓을 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정복자들, 즉 힘을 가진 자들은 힘없는 자에게 가하는 행위에 대해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단다.”(p.78∼79)

그렇다면 분노를 이기고 슬픔을 가슴에 품은 채 팔레스타인, 혹은 힘없는 자들과 더불어 소년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는가? ‘한 뙈기의 땅’은 바로 그 대답을 위해 마련된 공간인지도 모른다.

메뚜기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난민촌의 아이와 친구가 된 카림은, 파괴된 건물의 잔해가 쌓인 공터를 자신들만의 공터로 가꾸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신나게 축구 경기를 할 작정이다. 폐가전 제품과 낡은 기름통을 치우고 무거운 돌덩이들을 들어낸다면 근사한 축구장이 될 것이다.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꽤 큰 땅이 깨끗하게 정돈되었다. 이제는 벽을 향해 공을 찰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 셈이었다. 카림이 벽을 향해 공을 차기 시작하자 아이도 따라 했다. 아이들은 곧 그 리듬에 빠져들었다. 차고 튀고 되 차고, 발끝으로 공을 잡았다가 다시 차고 튀고 되 차고……. 생각보다 더 훌륭했다. 카림은 아이와 함께 공을 차면서 몇 시간이고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p.38)

물론 아이들도 안다. 그들만의 자유로운 대지가 안전하게 영속하지는 못할 것임을. 작은 돌멩이들에 페인트를 칠해 팔레스타인의 국기를 만들어 보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이스라엘의 군인들은 언제든 탱크를 몰고 그들의 땅을 유린할 수 있다.

그러한 유린에 대항하는 것, 그들과 맞서 싸우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기도 하다. 여기서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가장 무거운 진실은 이 싸움의 성공과 실패가 ‘군인을 몇 명이나 죽였는가’에 따라 가늠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르게 말한다면, 소년들은 그들의 적과도 싸워야 하고, 적에 대한 분노와도 싸워야만 하는 것이다.

탱크를 몰고 공터로 들어온 이스라엘 군인들과 맞서는 대목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그 첫 번째는 고양이 아지자와 어울리는 이스라엘 군인들의 모습이다. 군인들을 피해 쓰레기 더미에 몸을 숨기고 있던 카림은, 이스라엘 병사에게 사랑스럽게 몸을 비벼대고 그에게서 음식을 받아먹는 고양이 아지자를 본다.

“병사가 활짝 웃으며 아지자의 목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녀석은 등을 대고 구르면서 배를 드러냈다. 병사는 아지자를 오래 전에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다정하게 털을 어루만졌다.”(p.214)

진정으로 슬픈 것은 바로 이런 것일 터이다. 그들과 고양이가 함께 ‘한 뙈기의 땅 a little piece of ground’를 누릴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어느 순간이 닥치면 고양이에게 지었던 미소를 거두고 누군가가 누군가를 모욕해야만 한다는 것.

다음으로, 카림이 저항의 본질적인 존엄성을 깨닫는 장면을 보자. 카림은 메뚜기처럼 최대한의 용맹함을 발휘해 이스라엘 군인들을 교란하는 소년 전사가 되지는 못한다.

“왜 나는 몸을 숨긴 채 겁에 질려 있었을까? 왜 나는 메뚜기처럼 가지만으로 무장한 채 탱크를 막아서지 못했을까? 왜 나는 탱크의 포신에 매달려 이스라엘 군인을 조롱하지 못했을까? 저들이 계속 파괴행위를 벌이는데도 왜 나는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p.198)

갖가지 질문들이 어린 카림을 괴롭힌다. 하지만 용맹스러운 메뚜기와 숨어 있는 카림, 그들은 서로에 대한 대립항일 수 없다. 발가벗은 모습으로 모욕당해야 했던 카림의 아버지가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라 아버지를 모욕하는 이들이 부끄러운 것처럼 말이다.

“카림은 현재 자신도 이스라엘 군에 저항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여기에 숨어 있는 것, 바로 그들의 코앞에서 버티고 있는 것도 일종의 저항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공터에서 몰아내는 것을 거부한 채 결연히 버티고 있는 것이니까.”(p.207)

파괴된 공터만을 놓고 말하자면, 소년들은 패배했다. 지금으로서는 멋진 축구장보다 다시금 닥쳐 올 몇 번의 패배들이 소년들에게 더 가까이에 있다. 그러나 그 패배의 현장에서 카림은 몇 번이고 멋진 축구장을 꿈꿀 태세다.

‘a little peace of ground’를 위해 분노와 싸우고 슬픔을 견뎌야 하는 소년들이 팔레스타인의 지금을 산다. 소년의 열 번째 소망? 그것은 이제, ‘평범하게 사는 것’(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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