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이 이상한가 시대가 이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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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1월 11일 03: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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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TA의 지구정치경제학>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라는 책을 최근에 출간한 홍기빈은 나와는 동년배이다. 68학생운동이 전세계를 뒤집고, 암스트롱이 달에 가던 그 해에 그와 나는 서울 한 구석에서 소리 없이 태어났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마흔을 바라보는 이 나이까지 별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살았다. 그는 서울대에서 나는 연세대에서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전공하면서 80년대 후반의 수많은 경제학도들이 집회와 시위에 나갔듯이 그렇게 세상에서 아무런 티내지 않고, 별 흔적 없는 경제학과 출신의 소위 ‘학출’로 인생을 살았다면 아마 대체적으로 정확한 프로필일 것이다.

    2.

    2006년 초반에 시작된 한미 FTA는 내 또래나 비슷한 연배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반인보다는 훨씬 큰 문화적이며 정서적인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있던 변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비가역적’이며 ‘회복 불가능한’ 거대한 변화 앞에 알몸으로 서 있던 셈이다.

    한미FTA, 문화정서적 충격으로 다가오다

    그리고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게는 시대의 무게가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다. 80년대 후반의 정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부끄러움’과 ‘자책감’에 사로잡히면서 상반기를 보낸 셈이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알리바이’라도 필요하고, 그 시기에 무엇을 했을까라는 후대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홍기빈 그리고 국제경제학을 전공했던 송기호 변호사까지 FTA에 관한 책을 저술하기 시작한 것은 거의 비슷한 시기였는데, 그렇다고 세 사람이 논의를 하거나 역할을 분배하거나와 같은 공동의 논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내 부끄러운 졸저를 포함해서 연달아 나온 세 권의 FTA와 관련된 책은 기본적으로는 일종의 ‘고해성서’에 해당하는 셈이다.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너무 뻔했고, 책 몇 권이 나온다고 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필 받은’ 그래서 ‘홀린 듯이 추진하는’ 한미 FTA의 도도한 흐름을 멈추거나 방향을 조금이라도 돌리기 어렵다는 것은 너무 뻔했다. 그렇지만 가만히 있기가 너무 괴로웠다.

    일련의 FTA와 관련된 책들은 슬픈 한 세대의 시대에 대한 알리바이이며, 고해성서인 셈이다.

    3.

       
     ▲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홍기빈 지음, 녹색평론사 펴냄, 2006).
     

    한미 FTA와 관련되어 전 부문이 정부의 공세에 밀리는 중이고, 국민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온전히 알리는 데에도 효과적이지는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어쩌면 한미 FTA 자체가 우리 시대의 자화상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노무현이라는 특별한 사나이가 ‘정신이 이상해서’ 이 일을 추진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가 바로 이 시대의 이상한 정신의 총합인 셈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아직도 답 하기가 어렵다.

    노무현이 이상한가, 시대가 이상한가 

    어쩌면 그런 점에서 나도, 홍기빈도 그리고 송기호 변호사도 시대와 호흡하면서 대화하는데에는 실패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디 이 세 사람만 그렇겠는가?

    나름대로 ‘레토릭’의 한 세계를 열고자 했던 진중권도 지치도록 지쳐서 쓰러졌고, 조금은 다른 영역이지만 사회적인 잔소리를 쉬지 않았던 강준만도 이제는 예봉을 잠깐 꺾고 ‘역사 이야기’라는 다른 영역으로 넘어간 시점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기빈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라는 책의 등장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히 존재한다. 홍기빈이라는 한 사나이가 이 고해성서를 시작으로 앞으로 우리 사회에 ‘광야의 외치는 사나이’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시사점이다.

    그리고 이 책의 부제로 달려 있는 ‘지구정치경제학’이라는 묘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단어가 말하는 것은 “기대하시라 개봉박두”라는 한 마디이다. 아마 역사적으로 이 책은 홍기빈이라는 한 사나이가 드디어 길고 긴 학문적 모색과 개인적 방황을 한 번 정리하고, 세상 앞으로 나오게 된 계기로 기록될 것이다.

    4.

    책이 말하고자 하는 시사점은 본격적으로 자본과 국가 사이의 갈등과 제도적 변천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사태의 본질을 보고자 했던 거의 첫 번째 작업이라는 점일 것이다. 사회과학 혹은 경제학에서 ‘현대적 현상’에 대해서 가장 쉽게 말을 풀어가는 방법은 ‘미국은 나쁜 놈’이라는 가설을 채택하는 방법이다.

    ‘미국은 나쁜 놈’, 절반은 맞고 절반을 틀리고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릴 수 있는데, 이 작업가설은 상당히 많은 고민들을 피할 수 있게 해주고, 세상을 굉장히 단순하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여기에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 혹은 ‘사실상 식민지’라는 가설을 추가하면 복잡한 문제를 정말 쉽고 명료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린 이론이 될 가능성이 많지만, ‘그나마’ 절반이라도 아는 게 어디냐고, 우리 사회의 이론화 작업이 진행된 셈이다. 물론 절반이라도 아는 건 다행이다. 그러나 우파들도 세상의 절반은 안다. ‘미국은 좋은 놈’이라는 우파들 혹은 조선일보식 민족주의자들의 가정도 세상의 절반은 설명한다.

    홍기빈의 저술이 고통스럽게 진행되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첫 번째 단초는 그가 바로 ‘미국은 나쁜 놈’이라는 가설을 채택하지 않았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현재 나쁜 짓을 많이 하고 주로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명되지 않는 ‘뭔가’가 분명히 남는다.

    홍기빈이 서 있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가해자’의 위치에 서 있는 것만이 아니라 많은 경우 ‘피해자’의 위치에 서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바로 직접소송제의 경우이다.

    미국, 일방적 ‘가해자’ 위치에 있지 않다

    우리나라 외무부는 미국 정부도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미국도 손해를 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게 우리나라 기업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것인가? 이 논리적인 문제에 대한 답변이 바로 홍기빈의 지구정치경제학이다.

    미국정부도 몰랐고, EU 정부도 몰랐고, 우리나라 정부는 더더구나 몰랐던 이 특별한 제도는 중세의 ‘상인법’에 기원을 가지고 있는, 그래서 나름대로는 상인들의 코스모폴리타니즘과 관련된 제도이다. 쉽게 표현하면 다국적기업들에게는 미국 정부도 귀챦은 존재이고, 한국 정부도 귀챦은 존재이고, 그래서 이 기업들에게는 정부라는 것은 때때로 결탁하고 때때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쿠킹’ 즉 요리하는 존재일 뿐이다.

    캐나다와 미국, 멕시코 등 호주를 제외한 모든 국가는 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라는 제도 앞에서는 피해자일 뿐이다. 이 경우 정부는 사실상 아무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미국을 포함한 민중들과 기업 사이의 관계인데, 다국적기업은 정부에게 소송을 걸면서 사실상 국경을 뛰어넘어 민중들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가는 제도가 되는 셈이다.

    한미 FTA에 숨어 들어온 조항이 바로 이 제도이고, 호주 외에는 이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지어 캐나다는 물론 미국까지도 이 제도의 부당함에 시달리게 된 셈이고, 이 변화는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홍기빈은 여기에서 한국과 미국 사이의 갈등의 축만이 아닌 다국적기업과 ‘자유무역협정’이라는 특수 관계에 대해서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는 셈이다. 한 국가의 정부가 관할하고 있는 국내 법정이 아니라 ‘국제분쟁절차’로 넘어가면서 미국도 피소율은 물론 패소율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직접 소송제, 상상 불가능의 가공할 폭발력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 외환은행에 대해서 벌어진 몇 가지 부당한 일을 우리나라 법원이 해결하는 간단한 일에도 이렇게 검찰과 법원 사이에 낑낑거리고 있는데, 국제분쟁절차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은행은 물론이고 캐나다의 경우처럼 우체국의 공공 서비스를 지키기도 어려울뿐더러, 거의 무한대의 적용범위를 가지고 있는 이 제도의 가공한 폭발력이란 상상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베트란드 러셀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전체집합’의 역설을 환기한다면, 국가 직접소송제라는 이 작은 제도는 FTA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폐해를 포함하는 또 다른 전체집합인 셈이다. 문장 하나가 이렇게 엄청난 일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상황이 놀랍기만 하다.

    5.

    마이(MAI)라고 불렀던 다자간 투자협상이 결렬된 이후 8년이 지났다. 각 국 정부가 서둘러 FTA에 나서는 이유 중의 하나는 당분간 마이 혹은 후속협상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맨 앞에 내세우는데, 사실 이 국가들의 경우에 모두 합리적이고 사회적 논의를 전제로 하면서 움직인다고 보기는 어렵다.

    FTA가 가지고 있는 시사점은 선진국을 포함해서 이제 일련의 다국적기업들이 소속국가 혹은 미국이라는 정부를 가지고 놀 정도로 힘이 막강해졌고, 그래서 불합리한 요소들이 계속해서 숨겨진 상태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그걸 염두에 두더라도 우리나라의 한미 FTA 협상은 한 마디로 ‘미친 짓’이다. 기업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지역토호연합’이라고 할 수 있는 토호들이 관료들을 내세워서 주도하는 셈이다. 호주와의 FTA에 진행되는 협상이기 때문에 이제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정도는 빼도 괜찮은 전레가 이미 존재하지만, 그야말로 협상에 나서는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다루고 있는 조항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한미 FTA 협상은 ‘미친 짓’이다

    그런 점에서 홍기빈이 스스로 ‘팜플렛’이라고 불리기를 바라는 이 책은 한국으로서는 ‘이미 살아온 시간’이 아니라 ‘앞으로 살게 될 세상’에 대한 예언서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런 진지하고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는 상품성 없는 책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과학 시장에서 출간하기가 쉽지가 않지만, 그래도 이 빡빡한 출판시장의 닫힌 구조를 뚫고 이 정도로 제대로 된 책이 나왔다는 것은 감탄스러운 일이다. 학문적 가치도 높고, 시의성도 높을뿐더러, 경제학과 출신답지 않게 높은 문학성을 가지고 있는 홍기빈의 책은 읽는 재미도 솔솔치 않다.

    여담이지만 20년이 지나면 홍기빈도 소위 ‘자신의 콜렉션’을 가지게 되는 대한민국의 대표 저자가 될 것이다. 그가 정색을 하고 내놓은 고해성서로부터 한 학자의 족적을 따라가면서 그의 외침, 때로는 속삭임을 구경하는 것도 작지 않은 재미일 것이다. 나는 이 “광야의 외치는 사나이”의 등장이 너무 반갑고 즐겁다. 그 즐거움을 다른 사람과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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