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순 성폭력 피해자 "민주당 사과해야
    ···가여운 피해자 아닌 용서할 수 있는 인간”
    “선거 치러지게 된 이유가 많이 묻혀”
        2021년 03월 18일 07: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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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7월 고소가 이뤄진 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나와 심경을 밝혔다. 그는 “잘못한 일들에 대해 진심으로 인정한다면 용서하고 싶다. 지금까지 행해졌던 모든 일들에 대해 사과하라”고 말했다.

    피해자 A씨는 이날 오전 서울 명동 티마크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멈춰서 성찰하고, 성평등한 내일로 한 걸음’ 기자회견에서 “성폭력 피해자에게 있어 말하기는 의미 있는 치유의 시작이라고 한다. 한 사건의 피해자로서 제 존엄의 회복을 위해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꼭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A씨는 “저는 불쌍하고 가여운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다. 저는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존엄한 인간”이라며 “사실에 관한 소모적인 논쟁이 아닌 진정성 있는 반성과 용서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회를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사실의 인정’과 멀어지도록 만들었던 피해호소인 명칭과 사건 왜곡, 당헌 개정, 극심한 2차 가해를 묵인한 상황”에 대해 언급하며 더불어민주당에 사과를 거듭 요구했다. 박 전 시장 성폭력 혐의에 대해선 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인정한 상황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사건과 관련해 박 전 시장 피소 사실 유출 등 2차 가해를 저지른 일부 의원 등에 대해선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그는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의 사과를 받아들일 의향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민주당에는 소속 정치인의 중대한 잘못이라는 책임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라며 “피해호소인이라는 명칭으로 저의 피해 사실을 축소·은폐하려고 했고, 투표율 23%의 당원 투표로 서울시장 선거에 결국 후보를 냈다. 지금 선거 캠프에는 저에게 상처 주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답했다.

    이어 “사과하기 전에 사실에 대한 인정과 후속 조치가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지금까지의 사과는 진정성도, 현실성도 없는 사과였다고 생각을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A씨는 “구체적인 사과의 방법으로는 민주당에서는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한다. 저를 피해호소인 이라고 명명했던 그 의원들에 대해 직접 저에게 사과하도록 박영선 후보님께서 따끔하게 혼내주셨으면 좋겠다”며 “그리고 그 의원들에 대한 당 차원의 징계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또한 “남인순 의원으로 인한 저의 상처와 사회적 손실은 회복하기 불가능한 지경”이라며 “저는 그분께서는 반드시 정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민주당에서 아무런 징계가 없었습니다. 민주당 차원의 징계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A씨는 “이제 저의 말하기의 시기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라며 “이제 그분들이 조치하고 행동하셔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왜 치러지는지 잊히는 현실에 답답함 느껴”

    피해자를 비롯해 이날 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모두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의미를 되짚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시장 성폭력 사건으로 치러지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성평등 정책 논의는 실종된 채, 부동산 이슈가 중심이 된 것에 대한 비판이다. 이들은 피해자의 말하기를 계기로 이번 보궐선거의 의미를 환기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피해자 A씨는 “지금 상황에서 본래 선거가 치러지게 된 이유가 많이 묻혔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저의 피해 사실을 왜곡하고 오히려 상처 줬던 정당에서 시장이 선출되었을 때 저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든다”고 말했다.

    여성단체 대표자들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반드시 얻어야 했던 교훈이 보이지 않는다고 일제히 비판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이 선거만은 적어도 피해자가 돌아갈 자리를 만드는 선거여야 했다. 여성이 인간으로서 동등하고 노동자로서 존중받는 서울시를 만드는 선거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며 “여당은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어 위력이 지속되는 장을 만들었고, 기회가 될 때마다 박원순의 치적을 떠올리게 했다”고 비판했다.

    앞서 김진애 열린민주당 후보는 박 전 시장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박원순 전 시장의 족적이 눈부시다”고 평가하며 성폭력 사건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석연찮은 의문점이 남아있다”고 했다. 박영선 민주당 후보는 선거캠프에 피해자 A씨를 ‘피해호소인’이라고 주장한 이들을 중용하고 이들에 대한 비판을 “여성비하”라고 옹호하기도 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대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권김현영 소장은 “박원순의 성평등 정책은 다른 어떤 자치단체보다도 훌륭했다. 그런 박원순 전 시장이 위력 성폭력의 가해행위를 했고 이를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왜 어떤 제도가 작동하지 않았는지,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더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이번 선거에서 정책으로 나오길 바랐지만 (야권의 후보들은) 이 사건을 정쟁으로 쓰는데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문제가 발생된 이후에 제대로 된 처리를 할 수 있는 기구와 제도를 원한다. 후보 모두 여성을 보호 대상으로 취급하는 여성안전 정책에 머물지 말고 여성을 동등한 시민으로 존중하는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어 달라”며 “우리는 이 사건이 정쟁의 도구로만 쓰이는 게 아니라 구체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피해자가 돌아갈 자리는 그때서야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A씨와 함께 시장실에서 일했던 이대호 씨는 새로운 서울시장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이 씨는 “피해자가 겪은 일이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이고, 피해자는 자신의 일상을 돌려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이야기해달라”며 “성폭력 피해자가 문제제기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며 조직에 누를 끼치는 일도, 다른 정치적 의도나 개인적 이익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보궐선거가 열린 맥락을 고려할 때 피해자에게 용기와 신뢰를 주는 일은 새로운 서울시장에게 요구되는 소명이라고 생각한다”며 “기꺼이 그 역할을 해주셔서 피해자의 복귀를 돕고, 다른 직원들 또한 자신이 성폭력을 겪었을 때 당당하게 문제제기할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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