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삭발을 해서 '9.11합의'가 폐기될 수 있다면"
    By tathata
        2006년 11월 08일 06: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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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날씨답지 않은 찬바람이 몰아치는 8일 오후 4시. 여의도 국회 앞에는 87명의 보건의료노 조합원들이 삭발을 하는 바리깡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조합원들은 보건의료노조의 깃발을 온몸에 두르고 두 눈을 감은 채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묵묵히 삭발을 했다. 지켜보는 조합원들은 굳은 침묵 속에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일부 조합원은 눈시울을 붉히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기도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8일 ‘9.11 합의’ 폐기와 비정규권리보장 입법쟁취, 한미FTA저지 등을 요구하며 조합원 7백여명이 참가한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보건의료노조는 특히 ‘9.11 합의’가 필수공익사업장 노조의 파업권을 원천봉쇄하여 노조를 무력화한다며, 이를 반드시 폐기시키기 위한 의지를 천명하기 위해 이날 대규모 삭발식을 거행했다. 결의대회는 ‘노경총 합의’를 규탄하는 조합원들의 함성과 열기로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 보건의료노조는 8일 조합원 7백여명이 참가한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어 필수공익사업장 폐지, 필수유지의무 대체근로 허용 반대 등을 요구했다.
     

    "삭발을 해서 9.11 합의가 폐기된다면 기꺼이…"

    홍명욱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9.11 야합으로 탄생한 노동관계법 개악안은 노동자에게는 핵무기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살인적이고 야만적”이라며 “노사관계 로드맵으로 직권중재가 폐기되나 싶었더니 대체근로 전면허용과 필수유지의무로 되살아났다”고 ‘노경총 합의’를 비난했다. 홍 위원장은 “노동자의 자존심을 팔아먹은 한국노총은 (직권중재의) 악법보다 더 악법으로 개악시켰다”며 “우리가 삭발을 해서 로드맵이 폐기될 수 있다면 기꺼이 머리를 밀겠다”고 말했다.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고맙고 자랑스럽고 죄송하다”는 말로 발언을 시작했다. 조 위원장은 “이 땅의 노동현실은 여성 동지들에게 수치심과 거부감이 들 수 있는 삭발식을 강요할만큼 어려움에 봉착했다”며 “파업권을 무력화시키고, 정리해고 예고일을 단축시키는 노경총 합의를 민주노총 총파업으로 폐기시키자”고 호소했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도 연단에 올라 “투쟁하지 않는 노동자는 생명을 빼앗긴다”며 “오늘 여러분들이 삭발을 하는 것은 전임자 임금 몇 푼을 받기 위해 한국노총이 버린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것”이라고 삭발식을 지지했다.

    한국노총 연세의료원노조도 참가해 ‘9.11합의’ 비판

    이날 대회에는 한국노총 사업장인 연세의료원노조가 참가, 필수공익사업장의 파업권을 봉쇄하는 ‘9.11 합의’를 비판해 주목을 끌었다.

    강창모 연세의료원노조 사무국장은 “비록 상급단체는 다르다 하더라도 병원노동자의 파업권 확보를 위해 보건의료노조와 함께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연세의료원노조의 결사투쟁으로 파업권을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강창모 국장의 발언이 끝나자, 참가한 조합원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연세의료원노조의 연대에 환영을 표시했다.

       

     ▲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87명이 집단 삭발을 하고 있다.

     

       

    ▲삭발을 끝낸 후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홍명욱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오후 4시가 되자 삭발식이 시작됐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은 “결혼을 앞둔 조합원, 딸의 결혼식을 앞둔 부모 조합원, 부모님의 환갑 등 집안의 경조사를 앞둔 조합원도 있어 삭발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다”며 “그러나 삭발로 직권중재의 악법 속에서도 꿋꿋하게 지켜온 민주노조를 사수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는 결의를 모았다”고 전했다.

    삭발을 앞둔 한 간부와 조합원들은 다소 긴장된 모습이었다. 한 여성 조합원은 “이번에 처음 머리를 깎는데 떨린다”면서도 “어차피 머리는 금방 자란다”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애초에는 70여명의 조합원이 삭발을 결심했지만, 이날 삭발을 하겠다고 나선 조합원이 더 늘어나 준비한 바리깡이 모자란 사태까지 빚어지기도 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87명의 간부와 조합원들은 일제히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이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분주하게 셔터를 눌렸다. ‘윙’하는 바리깡 소리가 굳은 침묵 속에서 차갑게 들렸다.

    30여분이 지나 삭발식이 끝나자 조합원들은 까칠한 머리를 손으로 만지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한 조합원은 “머리를 깎아서 로드맵이 폐기될 수 있다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총파업이 일주일 앞으로 바짝 다가온 가운데 보건의료노조의 삭발투쟁은 민주노총 전면투쟁의 서막이 올랐음을 알리고 있다. 머리카락을 싹뚝 자른 조합원들은 까칠한 머리에 ‘단결 투쟁’의 머리띠를 다시 조여 맸다.

    이날 대회는 오후 5시가 되어 끝이 났으며, 참가자들은 이날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밤을 지새고, 9일 오후에 광화문에서 집회를 개최해 다시 한번 로드맵 폐기를 요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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