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침내 봄은 올 것이다
    [낭만파 농부] 복수초, 화암사, 매화
        2021년 02월 25일 11: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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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봄은 꽃이다. 산기슭에 점점이 자리를 잡고, 한참 피어오르고 있는 샛노란 복수초를 바라보니 과연 그렇다. 무엇인가 보인다 해서 봄이라 했다지 않는가. 초목이 고스러지고 헐벗어 칙칙한 들녘에 불현듯 나타나는 고운 빛의 그 무엇이 눈에 확 띌 것임은 자명한 일. 학술적으로야 그 어원이 ‘빛’, ‘볕’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그 또한 같은 맥락이니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화사한 복수초로 하여 비로소 새봄을 만난 셈이 되었다. 엊그제, 그러니까 지난 주말을 맞아 봄을 찾아 마음먹고 나선 화암사 나들이 길이었다. 산사로 통하는 골짜기 양지바른 길섶에서 노란 꽃무리를 만난 것이었다. 그날따라 초여름이라도 된 듯 귓가를 스치는 바람도 무척 부드러웠고, 숲길의 나무들도 생기가 도는 것이었다.

    화암사를 찾을 때마다 승방 적묵당 툇마루에 걸터앉아 법당 극락전과 강당 우화루 사이로 들어오는 불명산 어름을 넋 놓고 바라보는 게 일이었다. 이들 전각의 지붕 사이로 이제 막 물이 오르고 있는 나무숲과 옅은 하늘이 아스라이 선계의 풍치를 자아내던 것이었다.

    이날은 포근한 날씨 덕에 절집을 찾은 이가 많아 툇마루에 빈틈이 없었다. 잠시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아쉽지만 그냥 발길을 돌렸다. 우화루 아래 뜰에는 나이가 지긋한 매화가 한 그루 서 있다. 꽃망울은 아직 벙그러질 조짐이 없다. 부풀지도 아니 했다.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고 어렵사리 초점을 맞췄다. 사진을 찍고 돌아서니 함께 나선 길벗들이 저만치 나무벤치에 앉아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매화꽃망울을 붙잡으려 애를 먹는 내 꼬락서니가 우스웠던지 그 모양을 찍고 있다가 멋쩍게 웃는다.

    어림셈을 해보니 이 절간 나들이는 지난 가을 이후 넉 달 만이다. 틈만 나면 찾던 곳인데 그새 많이 격조했다 싶은 것이다. 물론 겨울을 지나며 큰 고비를 넘나든 코로나19 팬데믹 탓이 컸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더해 5인 이상 집합금지명령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설 명절에도 떨어진 식구들이 한데 모일 수 없었다.

    이런 형편이니 누군가를 만나는 일 자체가 큰 부담일 수밖에 없고, 바깥나들이는 엄두를 내기조차 어려웠던 것이다. 강요된 고립이 길어질수록 그에 따른 심리적 압박감도 커질 수밖에 없을 터. 끝내 한계에 다다른 고립감이 익숙한 절간 나들이라는 출구를 떠올린 셈이다.

    사실 이게 처음은 아니다. 첫 ‘탈출’은 그 일주일 전 느닷없이 감행됐다. 어설프고 껄쩍지근하게 설을 쇠고 나니 울화가 치밀고 오기가 일었던 모양이다.

    떠날 테요
    나는
    봄을 찾아서
    무작정
    떠날 테요

    설 연휴 끝 무렵에 무턱대고 길을 나섰더랬다. 바닷바람 쐰 지가 오래라 서쪽으로 길을 잡았다. 스무 해 전쯤 다녀왔던 아름다운 섬, 선유도를 떠올린 것이다. 그 때는 정기 여객선을 타고 들어가 허름한 농가에 민박하면서 이틀을 보냈더랬다. 아뿔사, 그 사이 새만금 방조제가 들어서고, 고군산열도가 그 중간다리 노릇을 하면서 육지와 연결되지 않았던가. 방조제가 지나는 신시도부터 무녀도-선유도-장자도에 이르는 주요 섬들이 다리로 이어진 것. 그 섬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여기에 “자연을 헤집어놓은 흉물스런 차도가 아니었다면 더 좋았겠더라”는 토를 달면 뻔뻔한 얘기가 될 테고.

    돌아오는 길은 내친 김에 변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내소사 들머리 전나무 숲길은 갑갑함에 겨운 이들이 몰리면서 그 호젓함을 느끼기 어려웠다. 꽁꽁 싸맨 전각들이며 까칠한 수목들은 아직은 겨울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대웅전 언저리 벚꽃과 앞마당의 홍매화도 아직은 머나먼 꿈일 뿐. 해변도로를 따라 들어선 격포항의 노을 또한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파리해보였다. 그곳에 아직 봄은 없던 거였다.

    거기서 열흘 남짓, 이젠 봄의 길목이다. 꽃샘추위라는 고비를 지나고 나면 마침내 봄은 올 것이다. 어차피 찾아올 봄인데 미리부터 이리 안달할 건 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힘든 시절일수록 그걸 견뎌내기 위한 희망이 절실했을 거다. 지금 당장 그 증표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겠지.

    시골살이라는 게 단순해서 그런지 필요하면 그때그때 해치우는 편이다. 버릇처럼 늑장을 부리거나 미루려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면 대부분 그럴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래선가? 이제 필요하면 희망까지도 당겨쓰는 경지에 이르렀나 보다.

    어차피 한 번 뿐인 삶이다.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이고. 그러니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그 자체로 ‘자기실현’일 때 최선이겠지. 그걸 ‘행복’이라 부른다면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아둔한 짓이리라. 찬찬히 따져보라. 오늘의 금욕과 내일의 행복은 그 인과관계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떤 필요에 따라 그렇게 간주될 뿐이다. 현실을, 실체적 진실을 직시하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근거 없는 낙관 또는 확증편향에 빠져 스스로를 끝없는 ‘희망고문’으로 내몰아서야 되겠는가 이 말이다.

    보름쯤 지나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릴 무렵 다시 화암사를 찾으련다. 그 때 쯤엔 얼레지도 피어나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겠지. 희망에서 봄으로.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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