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빅테크·핀테크 업체 특혜
    금융노조 등 “무분별한 규제완화, 제2의 사모펀드 우려…즉각 폐기”
        2021년 02월 24일 08: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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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디지털 전환 가속화에 따라 금융 환경도 달라져야 한다며 발의된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빅테크(대형 정보통신기업)·핀테크 업체를 통한 금융 거래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인데, 금융권 노동자들과 시민사회, 일부 정치권은 “혁신금융을 빙자해 비금융회사인 빅테크 업체들에게 금융사업을 허용하고 전자금융종합그룹 출현을 독려하는 개정안”이라며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금융노조

    지난해 발의된 전금법 개정안(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정무위원장)은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빅테크·핀테크 업체를 통한 거래를 금융결제원이 수집·관리하고 이를 금융위원회가 감독한다는 것과 이 업체들이 예대를 제외한 금융거래 금융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해당 개정안은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됐다.

    윤 의원은 해당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디지털금융은 대표적인 비대면 산업으로서 이용자와 거래규모 등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며 “(그러나 2006년 제정한 전자금융거래법이) 금융환경의 변화를 제도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인터넷전문은행, 금융규제샌드박스, 데이터 3법에 이어 디지털금융의 혁신과 안정을 위한 법·제도의 정비를 완결하도록 하는 한편, 현행 제도의 운영상 나타난 일부 미비점을 개선·보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금법 개정안을 놓고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급거래청산제도화 ▲종합지급결제사업자 도입이 쟁점이다.

    한편 박홍배 민주당 최고위원은 금융노조, 금융정의연대, 배진교 정의당 의원(국회 정무위)이 주최하는 24일 회견에 참석해 “혁신과 규제완화라는 미신에 사로잡힌 금융위가 또 다시 섣부른 금융정책을 들고 나왔다”며 “금융위는 또 다시 비금융 전자금융업자를 디지털 금융의 선봉장으로 육성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다”며 전금법 개정안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 최고위원은 금융산업노조 위원장이기도 하다.

    금융산업 뒤흔들 지급거래청산제도 놓고 한은-금융위 갈등
    노조·시민사회 “금융소비자 보호 논의 없이 밥그릇 싸움만”

    ‘지급거래청산제도화’는 금융위에 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에 대한 허가 및 감독·제재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핀테크 업체를 위한 별도의 청산 기관을 설립하자는 뜻이다. 청산이란 거래를 통해 발생하는 채권·채무 관계를 계산해 서로 주고받을 금액을 확정하는 것을 뜻한다. 수명의 고객이 A은행에 맡겨뒀던 10만원을 B은행 고객들에게 보내고, B은행 고객들이 A은행 고객에 5만원을 보낸 경우 청산 과정을 통해 두 은행은 5만원만 주고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현재 청산 업무는 금융결제원이 수행하고 있다. 금융결제원이 지급 지시를 중계하고 금융기관 간 주고받을 차액을 확정하면, 한은이 최종 결제하는 구조다. 그러나 전금법 개정안은 핀테크 업체의 거래에 한해 금융결제원이 관리하고 금융위가 감독하도록 했다.

    한국은행은 “금융위가 금융결제원을 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으로 지정해 관리‧감독하는 것은 중앙은행의 고유기능인 지급결제제도 운영‧관리 업무를 감독 당국이 통제하려는 의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반면 금융위는 개정안 부칙에 ‘금융결제원의 업무 중 한은이 결제기관으로 불이행 위험을 감축하는 장치를 마련한 업무에 대해선 자료 제출과 검사 대상 등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한은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한은은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 등의 지불‧결제 수단을 통한 개인의 충전‧거래내역 등이 모두 금융결제원 한곳에 모여 금융위가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 내용도 문제 삼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는 전금법 개정안 발의 목적이 소비자 보호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핀테크 업체가 파산했을 때 내부 거래 내역을 알지 못하면 금융 소비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홍배 최고위원은 이날 회견에서 “빅테크 기업들이 부도가 날 경우 고객들의 예치금을 신속하게 되돌려주기 위해서는 별도의 외부기관 청산이 필요하다는 금융위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며 “예금보험의 부보 대상이 아닌 빅테크 기업들은 회사가 부도가 날 경우 모든 결정권한을 회생법원과 관리인이 가지므로 외부청산기관이 존재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달라진 금융산업에 따른 금융소비자 보호 등 본질적 논의 없이 두 기관의 갈등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금융노조, 금융정의연대,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24일 국회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전금법 개정안은 금융시장 질서 전체를 바꿀 수 있는 내용”이라며 “그럼에도 정작 금융산업 변화와 금융소비자 보호, 빅테크·핀테크 규제 필요성과 같은 본질 논의는 사라진 채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의 지배구조 문제 등 ‘밥그릇 싸움’으로만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배진교 의원은 “금융위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 빅테크의 내외부 모든 거래의 권리관계를 금융결제원의 지급시스템을 통해 확정하는 외부청산을 의무화한다고 한다. 빅테크에 대해서는 별도의 감독과 규제 수단을 마련해야 할 문제이지 기존 지급결제시스템에 껴맞추는 것은 오히려 금융시장 질서를 교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핀테크 업체들, 은행·카드사와 동일 업무하지만 규제는 안받아

    지급거래청산제도화보다 더 큰 문제는 종합지급결제사업자(종지결) 도입이라는 게 노조와 시민사회 등의 설명이다. 종지결이 도입되면 핀테크 업체들은 예대 업무를 제외한 계좌 개설을 비롯해 급여 이체, 카드 대금, 보험료, 공과금 납부 등 결제 서비스가 가능해지고 소액‧후불결제도 허용된다. 은행업 허가를 받지 않고도 기존 은행과 카드사와 동일한 업무를 하는 셈이다.

    개정안은 이처럼 핀테크 업체들에게 금융업을 허용하면서도 기존 금융기관이 받던 규제는 적용받지 않는다. 특혜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 최고위원은 “종합지급결제사업자를 도입하는 전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네이버, 토스 등 비금융 전자금융업자는 은행 연계계좌가 아닌 그들의 전산망에서 은행의 보통예금과 같은 지급계좌를 개설하게 된다”며 “그 중 선불전자지급수단 발행업자는 고객 예탁금의 절반만 은행 등 외부기관에서 관리하면 되며 나머지 예탁금은 어떻게 운용되든 규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후불결제업 허용에 대해서도 “사업자당 30만원이라는 무이자 외상구매 한도는 복수의 업체, 그리고 월마다 갱신되는 신용한도를 고려할 경우 과도한 외상구매 부채 증가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노조 등은 ‘동일 업무 동일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현재 비금융 전자금융업자는 은행업의 인가를 받고 있지 않으며 2021년 3월 시행되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적용 범위에도 제외된 상태”라고 짚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전자금융업자에게 소액후불결제까지 허용하는 것은 핀테크·빅테크에 적절한 규제 마련 없이 신용카드업까지 허용하는 것”이라며 일반금융법에 준하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분별한 규제완화, 제2의 사모펀드 우려…즉각 폐기해야”

    박 최고위원은 “2020년 12월 금융감독원의 글로벌 핀테크 트렌드 및 감독정책 보고서에서 지적한 것처럼 감독당국이 금융시장에 진입하는 소규모 다수의 핀테크 사업자를 감시 감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2020년 6월 독일의 대표적인 핀테크 기업 와이어카드의 파산 사태가 한국에서도 발생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며 “감독이 어려운 사모펀드를 전문투자자가 아닌 일반 고객에게 판매해 사모펀드 사태를 불러온 금융위는 무분별한 규제 완화로 핀테크, 빅테크 기업에서 제2의 사모펀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이를 온전히 책임질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감시·감독도 되지 않는 핀테크 업체의 무더기 금융업 진출을 허용해 제2의 사모펀드 사태와 같은 금융소비자의 피해를 방조하는 것은 혁신도 규제완화도 아니다”라며 “국회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논의를 즉각 중단해야 하며 금융의 올바르고 건전한 발전과 소비자 보호, 금융소외계층 보호를 위해 금융위가 제출한 전금버 개정안의 즉각 폐기를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이처럼 각 기관과 단체 사이에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지만 마땅한 사회적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무위는 25일 해당 개정안의 공청회를 비공개로 개최한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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