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의 페미니즘에서 누락된 목소리
    [책소개] 『모든 여성은 같은 투쟁을 하지 않는다』(미키 켄들.이민경 (옮긴이) /서해문집)
        2021년 02월 20일 09: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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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 출신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후드는 페미니즘이 단지 학계 이론이 아니라는 걸 가르쳐줬다. 옳은 말을 옳은 때에 하는 것도 아니다. 페미니즘은 바로 당신이 하는 것이며,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13쪽)

    켄들의 이력은 다른 페미니스트 작가와는 조금 다르다. 켄들은 빈곤층 비율이 높고 흑인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 책 원제 ‘후드 페미니즘Hood Feminism’의 ‘후드Hood’는 이런 지역을 가리키는 속어다)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학계에서 페미니즘을 배우지 않았으며, 기자나 에세이스트가 아닌 군인으로서 직업적 이력을 쌓았고, 이전까지 책은 단 한 권을 썼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두 번째 책이 출간 직후 주목을 받은 이유는 분명하다. (여러 추천사에서 언급하듯이) 날카롭고 직설적인 비판, 한 가지 사건 안에 얽힌 여러 가지 문제를 바라보는 통찰력 있는 시선, 무엇보다도 흔히 ‘페미니즘 이슈’라 여겨지지는 않지만 우리 삶을 둘러싼 거의 모든 문제(주거, 정치, 교육, 의료, 식량 불안, 젠트리피케이션, 범죄, 총기 폭력 등)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젠트리피케이션이니 총이니 하는 문제가 페미니즘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것들은 페미니즘 이슈가 아니지 않은가? 켄들은 여기에 이렇게 답한다. “사실은 맞다. 단지 어떤 여성의 삶에서는 페미니즘 이슈가 아닐 뿐이다.”(44쪽)

    1851년 여성인권대회장 연단에 선 소저너 트루스가 청중들을 향해 던진 그 유명한 물음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가 더없이 선명하게 보여주듯이, 사회에서 보편적이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여성이 있다. 우리가 ‘여성’을 말할 때 흔히 트랜스 여성이, 장애 여성이, 빈곤층 여성이 간과되곤 하는 것처럼 말이다.

    켄들은 소저너 트루스가 던진 고전적인 질문(19세기 말 모든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져야 함을 주장했던 여성 참정권 운동 속에서, 여성은 누구인가?)을 좀 더 복잡하게 변주한다. 여성이란 누구이며, 어떤 문제는 여성들의 문제로 여겨지는 반면 어떤 문제는 어째서 여성들의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가? 모든 여성에게 권리가 주어져야 함을 주장하는 페미니즘 운동 속에서 어떤 문제를 설정하는 틀은 무엇이며, 그러한 틀 짓기에 관여하는 요소들은 무엇인가? 이들 질문에 대한 답변은 때로 백인-중산층-여성이 중심인 주류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곤 하며, 이러한 비판은 백인 여성을 일반화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 ‘환영받을 만한 불편함’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지만 이는 비단 미국 안에서만 유효한, 미국에 국한된 논의가 아님을 덧붙여야겠다. 켄들이 던지는 질문들, 예컨대 ‘굶주림은 페미니즘 이슈가 아닌가?’ 혹은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은 어째서 페미니즘 운동 안에서 논의되지 않는가?’ 같은 질문들은 동시대 한국에서도 유효해 보인다. 몇몇 문제들이 주류 페미니즘 운동의 중심을 차지하는 동안 어떤 문제들은 기각되고, 논의되지 않는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켄들은 중심을 차지한 문제들이 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 이슈를 말하는 데 흔히 시스젠더-비장애인-대졸-수도권에 거주하는 여성이 상상될 때,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어떤 여성들은, 그들이 겪는 문제는 수면 위에 오르지도 못한 채 사라져버림을 지적하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좋은 말이지만, ‘모두’는 누구일까? 거기서 누락된 이들의 목소리는 어떻게 들어야 할까? 이 책 원제인 ‘후드 페미니즘’은 바로 (미키 켄들을 포함해) 그들을 ‘모두’에 포함시키는 페미니즘이자, 그들이 살아내는 페미니즘이다. 한 인터뷰에서 (‘후드 페미니즘’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켄들은 좀 더 직접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것을 살아 있는 페미니즘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이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살아 있는 페미니스트 경험 말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 똑같은 행동, 똑같은 말이라 해도 누가 하는가에 따라 돌아오는 반응이 달라지듯이, “낯선 목소리는 종종 오해받”아왔다는 것. “우리는 흑인 여성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보다 흑인 여성에 대해 들을 기회가 더 많”았다는 것. 켄들이 ‘용맹함의 페티시화’ 장에서 말하듯이, 어떤 여성들의 분노는 완벽하게 정당한 근거를 가질 때조차 비난을 산다. 같은 맥락에서 켄들의 비판들, “매섭고 날카로운” 이 비판이 불편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쓸모는 어쩌면 그런 불편함을 맞닥뜨리는 데 있으며, “우리에게는 더 불편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권력을 닮아가는 운동이 되지 않으려면, 켄들의 이 불편한 목소리를 차분히 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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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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