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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발의 젊은 불쌈꾼
    백기완 선생님, 정녕 가시렵니까
    [추모사] 아버지·스승·동지였던 선생
        2021년 02월 18일 10: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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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이제 가시렵니까! 이 땅은 노나메기와 거리가 아득하기만 한데, 통일의 길은 닫히고, 촛불에도 기득권들은 여전한데 정녕 가시렵니까? 막히면 길을 내어 가자며 한 살매(일생) 내내 홀로 이끄셨음에도 사위가 모두 암암합니다. 미풍처럼 속삭이다가 장마 뒤 가람처럼 달리다가는 폭포처럼 수직으로 내리꽂더니 곧 용오름으로 솟구치던 그 목소리, 자본과 권력, 반(反)생명을 향하여 단호하게 주먹질을 하시던 그 몸짓, 약자를 찾아가 나누어주시던 그 따끈한 한 모금. 이 모두가 사라진 이 자리, 너무도 깜깜한 절벽입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다고 했던가요? 늘 권력과 자본에 맞서서 목숨을 걸고 딱 한 발 더 떼며 투쟁하셨습니다. 오로지 가진 놈하고만 싸워야 한다며, 터럭만큼도 타협하지 않은 채 늘 맨 앞에서 맞짱을 뜨셨습니다. 그래서 선생의 개인사가 바로 이 땅의 민중 투쟁사였습니다. 그래서 이쪽저쪽의 모든 이들을 불러내고 또 하나가 되게 하는 가장 큰 어른이셨습니다.

    원대한 꿈만이 변화를 만드는 것이겠지요. ‘지금 여기’에 진부함과 무력함의 사막만이 펼쳐질까 보아 유토피아의 오아시스를 만들고, 길을 잃은 모든 이를 위하여 노나메기의 별을 새겨 놓으셨습니다. 내 배만 부르면 키가 안 큰다는 어머니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아, “너도 나도 일하여 함께 잘살되 올바르게 잘 사는 노나메기” 세상을 향하여 남김없이 앞서서 나가셨습니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선다”라며 엄혹한 시국마다 온몸으로 춤사위를 추셨습니다. 선생의 문학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온몸으로 토해낸, 노나메기를 향한 비나리’이겠지요. 따스한 공동체를 이루었던 옛살라비(고향) 마을과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이와 대립되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분노, 노나메기가 어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램들을 한데 뒤섞어 비나리 한 바탕을 만드셨습니다.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 니나(민중)들의 피와 땀의 현장과 말들을 아울러 민중사상을 형성하고 민중미학과 예술로 빚어내셨습니다. 현실을 올곧게 반영하면서도 환한 비전을 담아 온몸으로 쓰셨기에, 다른 점은 몰라도, 선생의 문학은 구체성과 진정성에서는 으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울보셨지요? 오체투지와 같은 투쟁현장만이 아니라 말씀하시다가,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다가 자주 눈물을 보이셨지요. 모르는 이들은 의아해하지만, “김진숙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듯, 선생님의 그 용기와 강인함의 뿌리는 약자의 고통을 당신 것만큼 아파하는 공감이었습니다.

    필자(왼쪽)와 백기완 선생

    ‘칼든 선비’라는 덧이름(별명)을 주시며 곁을 지키라 하셨지요. 그 말씀에 따라 별 볼 일 없는 딸깍발이가 4대강 사업, 한진, 유성 등의 희망버스, 쌍용자동차 복직투쟁에서 세월호와 촛불에 이르기까지 옆에서 모시는 영광을 입었습니다.

    덕분에 선생님의 가없는 고독과 고통을 언뜻 엿보았습니다. 고독은 앞선 이들의 숙명이지만, “아무도 몰라!”라며 고개를 떨구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현수막을 들고 행진을 하시다가 손을 부르르 떨며 소피를 참는 일은 다반사였고, 고문 후유증으로 여름에도 담요를 덮어야 함에도 영하 10도가 넘는 강추위에도 끝까지 현장을 지키셨습니다. 평택에서는 집회가 끝나자마자 천막 안 난로로 모셨는데 곧 저보고 소주를 사오라고 하셨지요. 난로의 온기로도 언 몸이 녹지 않으셨던 것이지요. “우리는 몸을 떨고 있었다면 당신께선 고문을 또 견뎌내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선생님의 가없는 고독과 고통을 덜어드리지 못하여 몹시도 죄송합니다.

    이제 한 시대가 끝났습니다. 지금 빈 이 자리! 이후로도 오래도록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기에 더욱 비통합니다. 하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투쟁의 서사, 말과 글들이 기억의 주름을 이루었다가 새록새록 빛을 뿜어낼 것이기에, 뿌리신 오롯한 씨앗이 나네(새싹)를 내고 숲을 이룰 것을 알기에, 아버지이자 스승이고 동지였던 ‘백발의 젊은 불쌈꾼(혁명가)’을 보냅니다. 그곳에선 부디 자당과 함께 평안하소서.

    * 이 추모사는 <경향신문> 2.18일자에도 실렸습니다. 

    필자소개
    한양대 교수. 전 민교협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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