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앙에서 평화와 생태로 부활한 쿠바
        2006년 11월 06일 09: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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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는 인류에게 극명하게 상반되는 두 가지의 가능성을 보여준 나라다. 하나는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할 가능성이 있음을 40여 년 전에 보여주었고, 다른 하나는 생태농업으로 인류가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음을 10여 년 전에 보여주었다.

    이른바 20세기 최악의 위기라 불리는 쿠바사태는 62년 10월 20일부터 11월 2일까지 13일간 벌어진 일로 당시 미국의 코앞인 쿠바에 소련이 핵미사일 배치를 시도하자 이에 미국이 극렬하게 반발하여 핵전쟁 발발 위기까지 갔던 사건이다.

    이 사태는 결국 소련이 물러남으로써 일단락되었지만 핵전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세계 최고의 핵 보유 국가였다. 둘 중 하나라도 먼저 핵단추를 눌렀다 하면 그 순간 바로 인류는 멸망으로 치닫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걸 서로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들에 의해 핵전쟁이 억제되어 왔다는 것도 잘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절대 누구도 핵단추를 먼저 누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거꾸로 누군가가 먼저 정확히 선제 공격에 성공할 수 있다고 착각만 한다면 언제든지 핵단추를 누를 수도 있음을 쿠바 사태는 보여주었다. “D-13”라는 영화를 보면 13일간의 그때의 초긴장을 잘 엿볼 수 있다.

       
     
    ▲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한 도시농부<사진 이진천>
     

    소련의 지원으로 이룩한 복지선진국가

    이와 달리 쿠바가 인류에게 보여준 희망의 시나리오는 역설적이게도 쿠바가 최악의 위기에 직면하면서 쓰여지기 시작했다.

    쿠바는 소련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던 신생 사회주의 나라였다. 주요 산업은 사탕수수, 커피, 담배를 위주로 한 단작 대량 생산체제(모노컬처)의 농업으로 그 생산물은 거의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나라들이 팔아주었다. 가격도 국제 시세보다 비싸게 팔아 준 데다, 석유 같은 경우는 거꾸로 국제 시세보다 싸게 공급해 주었으니 소련은 거의 쿠바에게 어머니의 나라였다.

    그런 경제적 토대 위에서 쿠바는 세계적인 복지선진국가로 발돋움했다. 무료의료를 진작부터 실현했던 쿠바는 유아사망률이 1천명 당 6.4명으로 7명인 미국보다 의료복지가 앞설 정도였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유치원에서부터 박사까지 모두 무료이며 어떤 오지에도 학교가 있고 기숙사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정도면 가히 선진국 못지 않은 복지국가라 할만하다.

    그런데 이런 복지는 소련에 의존한 기형적인 경제구조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리고 문제는 곧 터져버렸다. 소련과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게다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국이 곧바로 최강의 경제봉쇄를 단행하고 나섰다. 식료품과 의약품까지 봉쇄하여 북한보다 더욱 강력한 봉쇄를 가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증유의 허리케인까지 닥쳐 도저히 회생불가능한 사태로까지 빠져들게 만들었다.

    소련붕괴·미국경제봉쇄·허리케인으로 국가경제 완전파탄

    소련 붕괴로 밀려온 1중고, 미국의 경제봉쇄로 밀려온 2중고, 강력한 허리케인이라는 3중고, 그야말로 라이트, 레프트 펀치, 스트레이트 펀치, 마지막 어퍼컷 펀치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넉다운될 상황이 된 것이다. 먹을 것도 동나고, 에너지도 바닥이 났다. 석유와 부품이 수입되지 않아 공장은 80퍼센트가 문을 닫고, 실업률이 40퍼센트에 이르렀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 식단을 근대화해야 한다고 해서 육식 위주로 바꿨다가 그 수입이 끊기자 밥상도 텅 비게 생겼다. 한 발짝이라도 잘못 내딛으면 수많은 아사자가 속출할 위기의 순간이 갑작스럽게 연속적으로 덮쳐온 것이다.

    그런데 백척간두에 선 쿠바가 선택한 것은 놀랍게도 농업이었다. 그것도 기존의 모노컬처 중심의 상업적인 단작농업이 아니라 도시농업과 유기농업을 중심으로 한 자급자립형 소농이었다. 말하자면 전근대적인 전통 가족소농으로 돌아선 것이다.

    국방비 감축 의료복지비 유지

    자신의 모국과 같은 소련이 붕괴되고 적대국가인 미국에 둘러싸여 사고무친이 된 처지에서 쿠바의 선택은 너무나 의외였다. 참으로 의외의 선택 중에 또 다른 하나는 기존의 의료복지 재정을 하나도 줄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련의 지원도 끊기고 미국의 봉쇄는 더 목을 조여 오는데 어떻게 의료재정을 조달했을까?

    그것은 바로 군비 재정의 축소였다. 말하자면 국방비 예산을 줄여서 의료예산을 유지한 것이다. 기회의 칼날을 갈고 있는 적대국가의 코앞에서 국방비를 줄인다는 것은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우리처럼 아직도 남북대립의 긴장 속에 살고 있는 처지에서는 참으로 의아스럽지 않을 수 없는 점이다.

    그런 쿠바의 자신감과 과감성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대형 트랙터와 농기계에 의존했던 기존 단작농사 방식을 과감하게 폐기하고 옛날 방식의 축력 농법을 도입했다. 이제 소는 먹는 음식이 아니라 농기계로 돌변했다. 또한 사탕수수와 커피와 담배에 의존했던 상업적 작물을 때려치우고 식량 자급도를 높이기 위해 자급형 식량작물 농사로 돌아섰다.

    쓰레기장까지 밭을 만들어 수도 40%가 농지로 둔갑

    또한 도시에 조그만 빈 땅이라도 있으면 바로 갈아엎었다. 땅이 아니라도 좋았다. 콘크리트 바닥이면 화단을 만들어 꽃이 아닌 먹을거리를 키웠고, 아파트 베란다, 옥상 같은 자투리 공간도 놀리지 않았다. 관공서와 학교의 뒷마당도 다 밭으로 만들었다. 길가의 땅도 마찬가지다. 하다 못해 쓰레기장도 밭으로 만들 정도였다. 이로써 쿠바의 수도 아바나는 도시 전체 면적의 40퍼센트가 농지로 둔갑하게 되었다.

    1990년도부터 시작한 쿠바의 시도는 결국 10년만에 성공을 이뤄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식량위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해, 220만명의 수도 아바나 같은 경우는 유기농업으로 식량 자급을 이뤄냈다. 특히 아바나를 비롯한 도시농업의 역할이 눈부셨는데, 1999년 도시농업으로 전체 쌀의 65퍼센트, 채소의 46퍼센트, 오렌지를 뺀 과일류 38퍼센트를 자급할 수 있었다. 그 외 달걀과 꿀, 토끼와 꽃, 약용식물까지 도시에서 생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쿠바는 단지 농업국가로 변신한 것만은 아니었다. 모든 물자를 수입에 의존했던 지난날의 방식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모든 걸 스스로 자급해야 했기에 농업을 위주로 하면서도 모든 면에서 생태적 자급방식으로 가야만 했다.

    대체의학·대체에너지·자전거천국까지 생태국가

    예컨대 의약품 같은 경우 수입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허브와 약초를 키워 대체했고, 침과 뜸을 이용한 동양식 의술을 확대했다. 석유도 수입이 끊겼기에 대안 에너지를 개발해야 했는데 태양을 비롯한 자연에너지가 그것이었다.

    석유는 봉쇄해도 태양은 봉쇄할 수 없기에 가장 현실적인 대안 에너지로 떠올랐다. 봉쇄를 못하는 자연에너지원은 무엇이든 다 이용했다. 풍력과 수력도 대표적이지만 더 주목할 것은 이른바 바이오 에너지다. 사탕수수를 이용한 바이오 에너지 개발이 성공하여 국내 에너지 수요량의 30퍼센트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에너지 문제는 자연스레 자동차 문화를 자전거 문화로 바꾸게 했다. 아바나는 원래 자동차 도시였다. 그 도시가 자전거의 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아바나는 처음엔 자전거 제작 기술을 중국의 북경에서 배워왔다. 당시 북경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자전거 도시였다.

    그런데 지금은 북경이 자동차 도시로 바뀌고 아바나는 거꾸로 자전거 도시로 바뀌었다. 누구는 부자가 되더니 자랑스럽게 매연을 뿜고 다니고, 누구는 가난해지더니 소박해져서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 같아 이런 비교적인 예를 볼 때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역시 인간이란 조금은 배가 고파야 철이 드는 것만 같다.

    아바나가 생태도시로 그 면모를 바꾸게 된 것 중에 하나는 도시녹화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기존 단작 중심의 상업적인 농사는 그 자체가 자연파괴적이었다. 대형농기계와 석유에 의존한 소모적인 농사인데다 화학비료와 농약과 제초제에 의존한 공해농법이었으며 주변 자연 숲과 전혀 공존하려 하지 않는 농사였다. 오히려 그 공간마저 파괴하여 돈을 끌어모을 수 있는 경작지로 바꾸려 한다.

    그러나 생태적인 자급형 농사로 넘어가면 자연 숲과는 필수적으로 공존해야 한다. 오히려 자연 숲에 의존해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보는 게 맞다. 그렇다고 항상 농지가 숲에 의존하는 것만은 아니다. 농지에는 거름을 주기 때문에 영양이 많고 벌레도 많아 숲 속의 생명들에게는 오아시스 역할을 할 수 있다.

       
     
    ▲ 흙상자 도시농업 <사진 이진천>
     

    민중들이 실질적인 권력의 주체로

    쿠바 생태주의 실험의 더욱 놀라운 점은 사회 전반적으로 커뮤니티를 매우 활성시켰다는 사실이다. 중앙권력을 분산시켜 지방정부의 권한을 확대해주고, 민간단체들의 활동이 아주 활발해졌으며 지역 내 커뮤니티 문화가 매우 활성화되었다. 쿠바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보다 5년 먼저 권력 분산을 시도했다.

    권력을 분산한다는 의미는 민중들이 실질적인 권력의 주체로 등장하는 것을 뜻하고 더 나아가서는 권력이라는 의미가 매우 퇴화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소련은 실패했지만 쿠바는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 있다. 소련의 권력 분산은 오히려 권력 투쟁을 더욱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면 쿠바의 그것은 민중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된 것이다.

    사실 카스트로를 비롯한 쿠바의 권력층이 아무리 지도력이 있다 해도 일시에 유기농업으로 사회 전체가 넘어간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현상이다. 독재 권력이든, 고도의 민주주의 국가이든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전 국민이 합심하여 아무런 혼란 없이 위기를 극복하고 그렇게 어렵다는 유기농업으로 식량 자급을 이뤄낸 데에는 역시 민중들이 주체로서 앞장섰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모든 인류가 겪을 재앙을 먼저 경험한 쿠바

    아바나 시민이 경험했던 위기는 석유문명에 근거한 현 인류의 모든 도시가 곧 직면하게 될 사태의 예고편이었다. 즉 쿠바의 특수한 정치상황 때문에 인류의 어두운 미래를 좀 일찍 겸험한 것이다. 앞에서 말한 핵미사일 위기의 쿠바사태로부터 핵전쟁이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음을 예고해주었듯이, 석유 공급이 단절되었을 때 인류가 겪어야 할 혼란과 위기도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음을 예고해 준 것이다. 그래서 쿠바와 아바나의 얘기는 결코 남 얘기일 수만은 없다.

    그런데 예고편도 예고편이지만 그 위기의 극복이 또한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은 예고편임을 쿠바와 아바나는 몸으로 보여주었다. 유기농업을 사람들은 아주 비현실적인 농사 방식이라 한다. 품도 많이 드는데다 수확량도 적어 그것으로 어떻게 필요한 식량을 조달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유기농업으로 더구나 콘크리트로 덮여있는 도시를 경작하여 식량자급을 이뤄낸 것이다. 단지 식량만 자급한 것이 아니라 모든 문명을 지속가능한 생태적인 것으로 뒤바꿈으로써 삶의 질을 한 단계 더 진일보시키면서 말이다.

    문명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쿠바의 사례는 먼 남의 나라 얘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최첨단 문명사회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 현상들과 정신적 황폐함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생태도시로 변신한 아바나의 사례야말로 인류가 추구해야 할 행복한 삶의 비전임을 어렵지 않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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