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게시판] 민주노동당 평당원의 방북 평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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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1월 06일 08: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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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의 방북대표단이 귀국했다.
    과연 이번의 방북활동이 ‘기념사진’ 말고 무엇을 남겼는지 궁금하다.

    1.

    북한의 핵실험과 이른바 ‘일심회 사건’의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 방북사업은 처음부터 ‘진퇴양난’이었다.

    이미 북한발 악재에 둘러싸인 민주노동당에게 북한과의 교류활동은 그 내용과 상관없이 일단 ‘색안경 쓴 시선’을 받는 일이었다. 게다가 심지어 북한의 핵무장을 사실상 찬동하는 입장까지 등장한 그동안의 당내의 논란의 상황은 처음 부터 당 대표단이 북한에 가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론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즉 이미 당내에서 북한 정부의 행동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의 여지가 좁아질 대로 좁아진 상황에서, 방북대표단이 자칫 단지 북한 정부의 입장에 대해 추인만 해주는 모습으로 비칠 경우 핵실험 이후 한국의 여론을 생각한다면 나갈때 보다 더 싸늘한 시선을 받으며 귀국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

    한국을 떠나기 전, 문성현 대표는 “핵문제와 관련한 국민여러분들의 우려와 비판을 북측에 가감없이 그대로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조선사민당과의 만남의 자리에서는 김영대 조선사민당 위원장이 문성현 대표의 말을 끊으면서 까지 “핵시험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얘기”라며 발끈한 바 있다. 그러나 실상 조선사민당측의 반응과 관계없이, 애초부터 ‘미국에 1차적인 책임이 있으나, 이번 핵시험에 대해서는 유감’이라는 발언은, 실상 당내 의견의 대충의 봉합 수준이지,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들의 우려와 비판’, 그 ‘가감없는 전달’에는 한참 못 미치는 발언이었다.

    그런 수준의 발언에 대해서 조차 남의 정당 대표의 공식적 발표도중에 말을 끊으면서 나선 (북의 관변단체) 조선사민당 측의 반응이 말해주는 것은, 핵무장에 대한 북한의 정부의 의지와 더불어 북한이 한국의 진보세력에 대해 지닌 생각의 오만함을 읽게 해주는 것 뿐이다.

    하지만, 정작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만남에서는 당 대표단은 ‘유감’이라는 미온적 입장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게다가 민주노동당이 북한 정부에게 비핵화 노력을 촉구하는 데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운운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 있든 없든, 민주노동당은 남한, 대한민국 민중들의 입장을 전해야 하는 것임을 생각해 보면 이는 한수 접은 정도가 아니라 접고 또 접어, 거의 ‘종이학’ 수준이 된 셈이다.

    반면 북측에서 돌아온 것은 ‘비핵화 입장’은 커녕, ‘핵은 자위수단’라는 핵무장에 대한 의지의 피력이었다. 나아가 민주노동당에게는 ‘남녘 동포들에게 민주노동당 대표단이 잘 이해시키’라는 지시인지 부탁인지 알기 어려운 말이나 늘어놓았다.

    대체 민주노동당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북한 정부의 주장을 이해시키려 해야 할 이유따위가 뭐가 있는가? 정책이 문제가 아니고 국민들의 오해가 문제라는 주장은 역대 군사독재는 물론, YS, DJ, 노무현 정부에서도 항상 들은 헛소리지만, 심지어 남의 나라 정당에게 자국의 국정홍보를 부탁하는 것은 한 수준 높은 개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김영남의 ‘북의 핵은 남쪽을 향하거나 동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는 발언과 라이스나 부시의 ‘우리는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다’는 발언이 다르면 얼마나 다른가? 물론, 아마도 미국정부는 실제로 북한에 군사적 공격을 할 생각은 없는 것이 사실일 것이고, 마찬가지로 북한 역시 그들의 조야한 핵장치로 남한은 커녕, 미국도 공격할 의지가 없음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들의 행동이 한반도에서 긴장과 대립을 조성하는 것이었음은 더욱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보가 아닌이상, 최근 몇 해 사이 한반도의 두 국가들의 관계가 좀 더 원만했던, 불화를 겪던, 근본적으로 패권적 경쟁의 관계 자체가 바뀌지 않았음은 누구나 알 수 있고, 그 속에서 북한의 핵무장은 그것이 실제 군사적으로 남한을 겨냥하는 것 인지와 무관하게, 애초부터 미국 뿐 아니라 남한 역시을 겨냥하게 되어있음 또한 사실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3.

    그럼에도 김영남과의 회담 말미에 이산가족 상봉사업 재개와 연관된 이야기를 들은 것은 나름의 수확일 수 있다.

    물론, 굳이 민주노동당의 방북활동으로 인해 북측이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말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간만에 남한에서 찾아온 인사들에 대해 주는 선물/미끼라고 해도 굳이 찾아갔으니 받아 올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핵보유 선언에 이어, 핵실험으로 한단계 수위가 상승된 긴장의 정도를 생각해 볼때, 이산가족상봉을 재개…하는 것을, 이야기 해 볼 수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얼만큼의 효과를 지닐수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합쳐도 만경대 방문 사건 하나가 만든 부정적 효과를 상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경대 방문이 북한을 공식방문 하는 인사들이 거쳐야 하는 관례적인 일이요, 이번 방북에서 다뤄지는 중요한 문제와 관련이 없기 때문에 굳이 알리지 않았다는 당의 입장을 사람들이 액면 그대로 믿어줄지 모르겠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이 사건의 파장이 심각해진 이유는 그것이 한국 언론을 통해 소개된 것이 아니라, ‘조선중앙TV’를 통해 알려지면서 증폭된 면이 있다.

    나는 당 대표단이 달리 처신했다면 역풍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당 대표단은 처신이고 무엇이고 할 여지가 없었다. 왜냐하면 현지에서 실시간으로 자신의 입장을 한국 국민들에게 알리거나 해명할 통로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당의 대표단은 진보정치 기자를 제외한 어떤 남한 언론사 기자단도 동행할 수 없었고, 하루 하루의 상황을 정리해 중앙당 대변인실로 보내오는 팩스 이외에 당 대표단의 활동내용을 한국에 알릴 통로가 없었다. 한때 SBS 기자와 동행이 이야기되던 남측 언론사 기자들의 동행이 무산된 것은 북한정부의 거부 때문이었다.

    게다가 북측은 민주노동당의 대표단에게 국제전화회선 조차 주지 않아 현지에서 남한언론과 실시간으로 접촉할 방법은 없었다. 당 대표단이 당의 방북활동에 대한 국내의 여론을 세세하게 알고 있었을지도 의문이고, 또한 만경대 관광은 공식방문에 따른 관례적 코스라는 사실을 남한 여론에 사전에 해명할 기회도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거절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남측 인사의 만경대 방문을 관영방송 조선중앙TV가 ‘수령님의 생가를 방문하고 경의를 표했다’는 뉴스를 내보내지 않을 가능성 역시 0% 일 것이다. 즉, 민주노동당 방북 대표단은 안그래도 북한 발 악재에 휩싸인 채 북한을 방문한 다음, 이번 방북에서 다뤄진 접촉이나 회담 내용을 떠나 의례적 일정 하나의 파장도 수습할 길이 없이, 고스란히 앉아서 뒤집어써야 했던 것이다.

    4.

    과연 방북한 것이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의 대표단이었다고 해도 기자단 동행이나 국제전화선 사용조차 못하는 상황을 감수해야 했을지 나는 의문스럽다.

    기자단 동행이나 국제전화 회선사용 같은, 외교적 방문에 따른 당연한 편의제공도 거절한 북한정부의 태도, (대표단의 보고에 따른다면) 방북기간 내내 핵실험에 대한 유감표명의 항의를 했다는 관변단체 조선사민당, ‘가서 남쪽 사람들이나 잘 이해시켜라’라는 고압적인 주문을 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태도, 이 모든 것에서 나는 북한정부가 남한의 진보세력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그들은 남한의 진보세력은 남한의, 대한민국의 사회와 그 민중을 대표하는 독립적 변수로 생각할 의사가 없다. 그들은 여전히 남한의 진보세력에게는 (좀 옛날식으로 말하면)’민주기지’ 북한의 ‘지도’ 하에 ‘전 한반도에서의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의 승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북한 정부의 외교적 이해에 종속된 존재일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잘해야 수정주의자, 심하면 미제의 분열책동에 놀아나느니 뭐니 하는 소리나 늘어놓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잘 알려져 있듯, 50년대 북한의 권력투쟁 기간동안 북한 내부에서 이런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숙청 당했다.)

    떡 하니 ‘이북5도청’이라는 것을 아직 운영중인 남한이나, 역시 소위 ‘혁명의 전국적 승리’ 따위를 말하며, 남한의 사회운동을 그들의 국가이해, 외교적 이해를 위해 공작하고 포섭할 생각이나 하는 북한 모두, 사회의 변화와 그 전망을 모조리 국가와 국가의 패권경쟁에 투사하는 남북한의 고유한 ‘적대적 공존’의 한 풍경일 것이다.

    사정이 좀 나아도 새로운 핵대치의 불안에 시달리거나, 나쁜 경우 국제적 봉쇄 속에 기아의 행군을 할 민중들의 고통에 대해 답해주는 것은 남이건 북이건 그 국가들, 정부들일 수 없으며 그 이해에 종속된 세력일 수도 없을 것이다.

    핵소동과 간첩소동의 와중에 치러진 민주노동당의 ‘남북 정당간 교류사업’은 떠날 때 보다 더 추워진 날씨 속에 돌아와야 했다. 핵 대치로 치닫는, 질적으로 한 단계 상승된 긴장의 수위는 이산가족상봉은 물론, 6자 회담의 재개소식 정도로도 꿈쩍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방북활동이 확인 해준 것이라고 해 봐야, 뻔한 외교적 수사를 걷어내고 나면, 북한 정권이 남한의 진보세력을 어찌 여기는지 정도가 될 것 같다.

    5.

    기왕 진행된 사업이기에, 이미 잡힌 일정이기에, 그리고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방북을 포기한다면 그것 또한 정치적 위축을 시인하는 것으로 비칠까 두려워 강행된 방북사업. 그러나 그 결과를 놓고 볼 때 과연 충분한 정치적 고민이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리고 방북사업의 첫 목표인 듯 말해지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유감과 우려를 가감 없이 전하겠다’는 말이 진지한 의지였는지, 아니면 어쨌든 이미 결정된 일정을 진행하기 위해 당 내외의 ‘우려’에 대한 위무의 발언이었는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성과는 알기 힘들다.

    게다가 당원들조차도 이번 방북대표단이 한국 언론사의 기자단 동행도, 국제전화선 사용도 할 수 없는 처지로 방북하게 된 것을 당이 아니라, 언론보도를 통해 알아야 했던 것은 매우 문제가 있는 처사이다. 이미 실제 파장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한국 언론을 통해 당 방북대표단의 활동이 직접 소개될 수 있는가 없는가는 그 국내정치적 효과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기술적 사항이다.

    따라서 그런 문제가 대표단의 방북 이후에 언론보도를 통해서야 알려졌다는 것은, 얼마든지 보기에 따라서는 이는 방북사업이 당내의 부정적 여론을 만날까 공개하지 않은 듯 보일 수 있는 문제이다. 당의 주요사업이 어쨌거나 잡혀있는 일정이니 하고 본다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매우 문제가 있는 관행이다. 당은 정치적 존재이고, 그 정치적 의미가 숙고되지 않은 행동은 언제나 본의 아니게 당의 사회적 위상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참에 연례적으로 치러지는 조선사민당과의 교류협력사업 자체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정확히 말해 우리가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정당이라고 말 할 수도 없는 관변단체와의 정당간 교류협력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게다가 북한의 논리로 따진다면, 남한의 진보정당이 지도정당도 아닌, ‘우당’, 즉 ‘인민민주주의 통일전선’의 모양새를 위해 지속되는 부속 정당과 교류협력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남한 진보세력의 정당 역시 조선사민당류의 통일전선의 하위 파트너 정도라는 것이 된다.

    북한과의 교류협력사업이 민주노동당에게 무슨 이념적, 정치적 내용을 따른 ‘국제적 운동’의 일부로서 정당간 교류협력사업은 아니다. 그것은 나름의 정당외교라는 가치 밖에 없는 것이라면, 굳이 조선사민당을 만나야 할 이유가 없다. 일당체제 체제의 국가를 상대한다면 집권당 이외에 상대할 가치가 있는 누가 있을까.

    6.

    북한 발 악재에 둘러싸인 민주노동당. 나아가 불행하게도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생각보다 길어질 지 모르는 새로운 핵 대치의 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상황에 대해서는 분명 미국 뿐 아니라 북한정부의 이해 또한 일조 한 것이 분명하다. 상황이 고착될 수록 미국의 군사패권주의만을 변수로 이야기할 수도없고, 유의미한 정치적 주장을 구성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제 북한에 대한 문제, 북한을 상대로 한 제반 활동의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 진보진영의 독자적 입장과 비전을 그리는 것을 회피하고, 그저 ‘화해협력과 통일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 불명의 수사로 얼버무리는 것은 정말로 한국 진보세력의 정치적 성장을 막는 족쇄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 글은 ‘독자게시판’에 올라온 글입니다. 필자께서 <레디앙> 편집국에 연락을 주시면 저희가 약속한 바와 같이 ‘문화상품권’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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