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빛같은 논문들은 저홀로 빛나고
        2006년 11월 05일 05: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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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비판사회학대회 – 경제위기 이후 10년, 한국사회의 변동과 전망>이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금요일 받아본 논문들은 빛나는 별무리와 같았다.

    경제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정치와 경제, 계급과 노동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고찰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해, 문화, 젠더, 인권, 환경, 지역 문제를 두루 살피고,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을 평가하고, 대안사회 모색에까지 무려 64편의 논문 발표가 한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생각과 말의 향연(symposium)이었다.

    ‘빛나는 별무리 같은 논문들’은 저 홀로 빛나고

    특히, 내가 둘러본 여남은 개의 토론 자리 모두에서 ‘민주노동당’이 언급되고, 노동조합운동에 직접 관련된 발표가 스무 개 남짓에 이를 만큼 현실 문제에 대한 연구가 많았다. 그런데 정작 대회가 열린 고려대에서 ‘민주노동당 사람’이라거나 ‘민주노총 사람’이라 칭할만한 청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발표나 토론을 맡은 두어 명이 겨우 눈에 띄었을 뿐이다.

    별이 빛나면 뭣하나? 그 찬란하다는 은하수를 공해 속의 일상이 가리고 있는 것을 ……. 길 잃은 자가 고개 들어 별자리를 찾으려 하지 않는 것을 ……. 우리는 언제인가부터 가던 길에 의문치 않고 그저 발걸음을 내딛을 뿐인 물리법칙과 경험주의에 빠져 있다.

       
     ▲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김원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의 김원은 울산 현대자동차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 대공장 노동조합의 사회적 고립」을 발표했다. 그의 발표에서는 ‘붉은 조끼와 지역민’, ‘고립된 섬’,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의 이중성’, ‘공장에 갇힌 노동정치’, ‘노동운동의 가치는 정규직 조합원과 가족만의 것’이라는 등의 자극적인 언사가 이어졌고, 그것들을 증명하는 수치와 통계가 가득했다.

    김원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뿐 아니라, 조합원의 삶 자체를 바꾸어야 하는데, 현재의 조합원들은 사교육과 고소비에 붙잡혀 있다. 현대차 조합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해보면 그 자녀들이 고급 학원과 축구팀 같은 데 다니는 등 전형적 도시중산층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것을 잔업으로 벌충한다. 조합원들을 인터뷰해보면, 잔업 잘 따는 활동가나 현장조직이 인기를 얻고 있다.”

    "잔업 잘 따는 조직이 인기 얻고 있다"

    약정 토론자나 청객 누구도 그런 현상 자체, 객관적 인식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해석만을 달리 했을 뿐이다. 약정 토론자인 김동춘(과거사위 상임위원)은 김원이 신자유주의와 실리주의를 연결시킨 것을 지적하며, 노동조합 실리주의는 경제위기나 신자유주의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가족주의가 대공장 노동조합만의 문제인가, 비정규직 역시 그러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노총과 함께 사회민주당 일을 했던 유팔무(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기업 노조원들은 오래 전부터 중산층이었다. 중산층이 중산층화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반박했다.

    김원은 민주노조운동의 오늘을 “‘민주노조’에서 ‘노조’로”라고 답했다.

       
    ▲ 카톨릭대 조돈문 교수
     

    김원의 발표와 같은 시간에 겹쳐 찾아보지 못한 가톨릭대 조돈문 교수의 발표 「한국 노동계급의 계급의식 보수화」는 앞으로 몇 년을 연구해야 할 귀중한 자료다. 그는 설문조사 데이터를 들어 “노동계급의 보수화 현상이 확인된다 …… 노동계급은 여타 계급들에 비해 진보적 성향을 보이고 …… 보수화 추세에 있어서도 노동계급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전개되어 있다 …… 민주노총 등 대항기구들이 …… 지배이데올로기의 침투에 대해 일정 정도 방호벽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나는 그의 데이터를 다른 방식으로 뜯어보기로 했다. 노동계급의 보수화가 덜하여 사회 전체의 계급의식이 양극화되었다는 측면 뿐 아니라, 노동계급 내 다양한 부문 간에 보수화의 경향 편차에서도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지난 10여년 동안 민주노조운동은 무엇을 했나

    1991년에서 2003년까지 노동계급 의식의 보수화에는 뚜렷한 편차가 발견된다. 비숙련(-0.1913)보다 숙련(-0.2332), 여성(-0.1909)보다 남성(-0.2309), 비정규직(-0.1557)보다 정규직(-0.2609)에서 보수화의 경향이 현격한 것이다. 이는 물론 근로조건이 양호한 데 따른 것인데, 숙련 남성 정규직과 민주노총 조합원은 거대한 교집합을 이룬다. 그렇다면 12년 동안 민주노조운동은 무엇을 한 것인가?

    한편, 비노조원(-0.2083)과 노조원(0.1887), 한국노총(-0.1754)과 민주노총(-0.1624)의 보수화 편차는 그다지 크지 않다. 다시 한 번, 12년 동안 민주노조운동은 무엇을 한 것인가?

    조돈문의 평가처럼 민주노총이 보수화에 대한 ‘방호벽 역할’을 했는지 의문스럽다. 민주노조의 공시적 절대적 진보 지표도 높이 사야 하지만, 민주노조의 통시적 상대적 보수화 경향도 눈여겨 볼 대목이기 때문이다. 나는 민주노조운동 발전과 상대적 보수화 경향이 하나의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된 데 더 주목하려 한다.

    비판사회학대회 오전 시간을 구경하며, 풍부하고 날카로운 분석들에 감명받은 나는 대회 주관자인 산업사회학회의 대안과 조언이 듣고 싶어졌다. ‘대안사회의 모색’이라는 중간 주제 아래 두 개의 논문이 발표됐다.

    어린 맑스 인용해서 맑스를 오도하지 말라 

    연구공간 수유+너머 고병권의 「코뮨주의와 소유」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전혀 다르게 그려지고 있었다. “프롤레타리아는 국가를 갖지 못했으나 그것을 폐지할 생각이다. 프롤레타리아는 가족을 갖지 못했으나 그것을 폐지할 생각이다. 프롤레타리아에게는 민족이 없으나 그것으로부터 떠날 생각이었다. 그들은 가족도, 민족도, 국가도 없지만 그들은 또한 그것을 능동적으로 버린다 …… 자기 보존이 아닌 자기 극복으로서 자기를 긍정하는 존재”

    오전 발표자들의 ‘가족주의에 사로잡힌 중산층’이라는 현상 인식은 이처럼 멋진 찬사 앞에서 설자리를 잃고 말았다. 고병권은, ‘강성대국’을 옹호하고, ‘민족의 영광인 핵무장’에 열광하는 노동조합운동에 대해서는 좀 모르는 듯 했다.

    그는 “맑스의 사적 소유의 철폐가 의미하는 것은 특정 행위자로서 국가의 소유가 아니다”라는 고민거리를 던졌다. 그러면서 “코뮨주의적 소유 ‘권리’는 어떤 법적 형식을 지칭한다기보다,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나로서는 선문답이다.

    이에 대해 이성백(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은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신비화, 신격화다. 현실에서의 프롤레타리아는 ‘정체성의 양식’에서 부르주아와 같은 유산계급이다. 맑스는 ‘국가 소유’를 사적 소유 철폐의 한 형태로 인정했다. 맑스 이론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다”고 비판했다. 서관모(충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스무 살 좀 넘은 어린 맑스가 쓴 글만 인용하며 맑스주의를 오도하지 말라”고 혹평했다.

    유럽 최신이론과 19세기 무정부주의의 함수관계

    전남대 사회학과의 윤수종은 소수자운동에서 대안을 찾는 모양이다. 그의 논문 「소수자 운동과 대안사회」에는 ‘매춘여성운동, 넝마주이운동, 탈북자운동, 북파공작원운동, 정신병원수용자운동, 수양부모운동’ 등 스물두 가지 소수자운동이 나열돼 있었다.

    “이념으로 무장된 일사불란한 조직이 이루어내는 혁명이 아니라, 노동계급을 비롯한 다양한 층들이 서로 엮여 있는 관계 상태(배치)를 모든 곳에서 다른 흐름으로 만들어감으로써 기존의 구조를 변형시켜 가려는 것이다. 이념의 문제에서 욕망의 문제로 옮겨간다고나 할까.

    …… 분권운동 같은 권력 참여 운동, 민노당의 의회 진출, 계급정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당형태운동과 같은 소극적인 방식보다는, 자율적인 집합체들을 만들어가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 소수자들의 다양한 증식이야말로 제국의 지구 계획에 맞서 대중의 삶의 공간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에게, 이념은 욕망의 정화(精華)라거나 소수자 증식의 주체는 소수자가 아닌 자본이라는 반박을 던질 필요는 없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학자들의 최신 이론이 인용되는 요즘의 유행은, 진부한 내가 보기에는 19세기 무정부주의 아이디어로의 복귀이지만, 200년의 실패를 반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넓어진 자본주의 학술시장의 울타리 안에서 맴돌 것이기 때문이다.

    2006 비판사회학대회의 전반부는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구체적인 분석틀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후반부에는 신니체주의 철학의 추상적 영감이 횡행했다. 근대나 현대 이념에 입각한 과거 분석은 선명했고, 탈현대 사상 조류가 내다보는 미래는 모호했다.

    별이 안 보이는 것은 대기 중의 오염 때문이기도 하고, 고개 들어 먼 곳을 응시할 용기 없음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별이 쏟아내는 우주먼지가 우주 공간 속에 가득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 그리고 별빛이 다른 별빛을 가리거나, 죽은 별 – 블랙홀이 별빛을 삼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2006 비판사회학대회 발표문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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