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올로기도 양극화되고 있다
        2006년 11월 04일 01: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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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노동자가 절반을 넘어서고 사회 양극화가 우리 사회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민주노총 조합원과 미조직 노동자들의 갈등이 크게 부각되고 노동자 정당으로 나선 민주노동당이 10% 이하 지지율로 고전할 때 노동정책 하나 변변한 게 없는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은 50%를 넘어섰다.

    노동조합이나 진보를 표방한 정당이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존재를 배신한 의식의 문제인가, 의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만든 사회적 환경이 중요한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까. 카톨릭대 조돈문 교수는 4일 ‘비판사회학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한국 노동계급의 계급의식’을 통해 “사회 전반적으로 보수화 추세가 진행되고 노동계급의 보수화 현상도 확인된다”면서 하지만 “민주노총 등 대항기구들이 지배이데올로기에 맞서 이데올로기적 각축을 벌이는 한편, 지배이데올로기의 침투에 대해 일정정도 방호벽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1991년 실시된 ‘경제활동 및 생활실태 조사’와 2003년 ‘사회구조의 변화와 일자리 조사’를 비교 분석한 결과 “(한국 사회) 노동계급의 보수화 현상은 경험적으로 확인되었다”며 특히 “이데올로기적 보수화는 모든 계급에 보편적으로 발견되고 있어 사회 전반적으로 보수화 추세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우리 사회 계급을 자본계급, 쁘띠부르주아, 중간계급, 노동계급 등 4대 계급으로 범주화하고 설문 문항 중 ‘파업 중 기업이 다른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기업체란 노동자와 소비자를 희생해서 돈을 번다’, ‘정부가 노사관계에서 기업의 편만을 든다’라는 의견에 동의하면 +1, 반대하면 -1, 중립적 응답은 0으로 하여 평균값을 취해 ‘계급적대의식’ 변수를 산출했다. 최저치 -1과 최고치 +1 사이에서 값이 커질수록 높은 계급의식을 나타낸다는 설명이다.

    그 결과 계급의식의 전체 평균은 0.2601만큼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보수화 추세는 여타 계급들에 비해 가장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노동계급과 여타 계급들과의 계급의식 차이는 1991년에 비해 2003년에는 0.0905만큼 커졌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노동계급은 여타 계급들에 비해 진보적 성향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데올로기적 보수화 추세에 있어서도 노동계급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전개되어 있다”며 “경미하게나마 노동계급과 여타 계급들 사이의 이념적 괴리가 확대되는 이데올로기적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노동계급 보수화 추세의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노동계급 계급의식 연구의 대표적 3가지 분석틀인 ‘계급구성접근법’, ‘물적조건접근법’, ‘이데올로기접근법’으로 설문조사 결과를 비교·분석했다.

    조 교수는 우선 1991년과 2003년 사이 우리 사회 노동계급의 계급구성, 물적 조건, 이데올로기 영향력의 변화를 분석했다. 계급 구성의 경우 서비스부문이 90년 전체 취업자의 54.5%에서 2003년 72.1%로 급증했으며 비정규직 역시 45.8%에서 49.5%로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물적 조건은 이 기간 실질임금이 연평균 5.5%의 상승률을 보여 전반적인 생활수준 향상을 기록한 반면 지니계수는 1990년 0.295에서 2003년 0.306으로 증가해 불평등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데올로기 접근에서도 조 교수는 “우리 사회의 경우 민주화 진전으로 인해 정권의 정당성이 크게 향상되었고 자본계급의 물적기반과 이데올로기적 자원이 강화돼 이데올로기적 포섭에 따른 노동계급의 보수화가 예측된다”며 “반면, 민주노조운동이 성장하고 민주노동당이라는 노동계급 정당이 창당돼 의회에 진출하는 등 대항기구들 또한 강화돼 노동계급의 급진화도 예측되는 상반된 경향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러한 변화들을 바탕으로 실제 성장부문과 전통부문 등 노동계급의 부문별 계급의식 차이를 낳았는지(계급구성접근법), 특전적 부문과 주변적 부문 사이 양극화가 전개되었는지(물적조건접근법), 지배계급 이데올로기와 대항이데올로기의 노동계급 계급의식에 대한 상대적 영향력은 어떠했는지(이데올로기 접근법)에 주목했다.

    분석 결과, 노동계급 내 부문간 유의미한 차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1년과 2003년 전통산업과 서비스부문, 숙련 부문과 미숙련 부문 사이의 계급의식 차이는 유의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성별과 고용형태같이 최근 노동계급 내 계급구성 변화를 반영하는 부문들 사이에도 계급의식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노동조합 조직화와 관련된 부문들에서는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다. 민주노총 부문과 미조직 부분 사이에서도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조 교수는 “조직노동 부문과 미조직 부문 사이의 차이는 주로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높은 계급의식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물적조건접근법과 이데올로기적 접근법에서는 경험적 타당성이 입증됐다. 물적 조건 변화의 경우, 정규직 숙련노동자로서 근로소득과 가계소득 수준이 각각 상위 1/3 수준에 속하는 ‘특전적 부문’의 노동자들에게서 보수화 추세가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비정규직에 비숙련 노동자로 근로·가계소득이 각각 하위 1/3에 속하는 ‘주변적 부문’ 노동자와 특전적 부문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차이는 실제 유의미하지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조 교수는 이데올로기접근법에서 지배계급 이데올로기 강화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 정당과 노동조합 같은 이데올로기적 대항기구들의 역할과 결속력에 따라 보수화 추세가 다소나마 저지될 수 있느냐는 점에 주목했다.

    조 교수는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경우 경미한 이데올로기적 보수화를 보이고 있으나 1991년과 2003년 사이 보수화 정도가 유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민주노총과 소속 노동조합들이 노동자들의 구심점으로서 이데올로기적 대항기구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더불어 “민주노총 부문이 미조직부문에 비해 높은 계급의식을 보이고 보수화 추세도 유의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 반면 한국노총 노동조합의 차별성은 유의미하지 않게 나타났다”며 “이는 민주노총이 계급조직으로서 변혁지향성을 지니고 있는 것에 반해 한국노총이 이익집단으로서 노조경제주의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조 교수는 “결국 지배이데올로기론이 예측하는 보수화현상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항이데올로기론이 주장하는 대항기구 역할의 중요성도 입증되고 있다”며 “지배이데올로기와 대항이데올로기가 각축을 벌이고 있으며 일방적인 이데올로기적 포섭 현상이 전개되는 것은 아님을 확인해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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