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장에 갇힌 노동정치
        2006년 11월 04일 11: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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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유주의 이후 한국의 대공장 노조는 어떤 변화를 겪어왔을까. 김원 교수(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는 울산광역시 북구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노조를 중심으로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이 신자유주의에 어떻게 대응해왔는지를 분석했다.

    김 교수는 “현자 노동조합이 신자유주의에 따른 새로운 균열과 분할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창출되고 있는 지역이라는 공간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자기 계획이 부재할 때, ‘진보정치 1번지’라는 슬로건은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상실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다음은 발제문 요약.

    한국 대공장 노동조합의 사회적 고립
    -울산 현대자동차 노종조합을 중심으로

    현대자동차 노조가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노동운동의 고양기가 지나간 이후 신자유주의 공세가 거세게 밀려들었던 90년대 중후반부터였다. 1997년 경제위기와 정리해고 법안이 통과되면서, 조합원들은 1997년 선거에서 협상을 위한 임금보존 – 흔히 ‘최대한의 투쟁을 통한 최대한의 경제적 보상 획득’ 이라고 불리우는 – 이라는 과거 투쟁 방식이 아닌, 고용보장을 위한 전투적 노동조합(현장조직)을 선택했다.

    그러나 1998년 전국적인 노-사 대립의 ‘대리전’이었던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투쟁에서 집행부는 ‘정리해고자는 한 명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집권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면서 정리해고를 받아들였고, 이는 2006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장조직, 활동가 그리고 노조원 모두에게 ‘내상’으로 남아있다.

    노조는 99년 경제 상황의 호전으로 다시 조직력을 확보했으나, 집행부, 현장조직 그리고 조합원은 모두 ‘언제든지 사측은 다시 우리를 정리해고시킬 수 있다’는 암묵적인 확신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상호배타적인 교섭태도, 표면적으로는 사측이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지만 노사관계의 기본적인 불안정성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기업 단위 노사갈등의 심화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이른바 조합원들의 ‘이중 몰입’, 즉 고용주와 노조 양측 가운데 어느 측에 대해서도 전적인 몰입(혹은 충성)을 하지 않는 새로운 현상이다.

    1998년 정리해고는 현대자동차 조합원과 가족들에게 ‘고용안정’이란 ‘유전자’를 심었다. “마치 어릴 적 끔찍한 기억처럼, 유전자에 각인돼 있을 정도다”라는 한 활동가의 말처럼,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고용불안은 조합원들을 노조와 회사에 대한 이중몰입과 과거에 두드러지지 않던 생산성 경쟁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이전 시기 노조에 부여하던 의미와 달리 조합원들은 노조를 ‘고용안전판’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이는 과거 민주노조가 지향하던 단결과 투쟁이라는 가치와 고용안정이라는 가치가 여전히 ‘경합’하는 현재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붉은 조끼와 ‘지역민’

    ‘붉은 조끼’는 현대자동차 정규직 조합원들을 가리키는 모멸적인 단어이다. 과거 붉은 조끼는 전투적 노동조합의 단결과 투쟁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제 붉은 조끼의 의미가 변했다. 바로 울산에서 특권을 유지하는 남성정규직 조합원을 상징하는, 속칭 ‘대공장 노조 이기주의’의 표현이 붉은 조끼이다.

    주목되는 사실은 지역민과 현대자동차 조합원(혹은 현대자동차 대 비현대자동차)간의 ‘간극’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라는 점이다. 양정동의 경우 노동가요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크며, 특히 지방토호들은 노조를 백안시해서 빨간 조끼만 입어도 거부감을 가질 정도라고 한다. 이처럼 지역민과의 ‘간극’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노조 및 활동가의 ‘지역’에 대한 관심은 부정적이거나 무관심한 편이다.

    3차례에 걸친 선거 결과에서 드러나듯이 지역민 다수가 현대자동차 노조와 민노당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이들의 지역 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지역 내 다양한 네트워크 창출을 시도하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 일상적인 네트워크가 노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며, 이번 면접과 조사에서도 아파트 부녀회가 유일한 네트워크였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자동차 노조와 노동자운동은 ‘고립된 섬’으로 존재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기 어렵다.

    주변계급으로서 비정규직

    2005년 1월 현재,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는 생산직은 2만7,079명으로 사내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하는 규모는 1만3천여 명인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전체 절반에 가까운 숫자다. 2000년 현대자동차 노조는 ‘완전고용보장 합의서’를 체결하면서 고용유지를 위해 "공장 전체의 비정규직 투입비율은 16.9%(97년 8월 비율) 이내 관리를 원칙으로 한다"고 합의했다.

    이는 정규직 고용 유지를 위해 사내하청노동자의 사용을 노조가 허용해 준 것으로, 당시 하청노동자들을 ‘정규직의 고용안전판’으로 이용한다는 비정규직(노조)과 노동운동 내부 비난이 이어졌다.

    물론 현대자동차 조합원들도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비정규직투쟁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노조 내 최우선 사업으로 배치되고 있지 못한 한계를 조합원들도 인식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노동자들에 비해 숙련수준이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사고하고 있으며,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때문에 정규직이 피해를 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조사결과 정부와 사회가 이들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40.1%)와 같은 노동자로서 조건 없이 연대해야 한다(43%)가 비슷한 비율로 나타났고, 처지가 딱하기는 하지만 함께 할 방법이 없다(12.9%)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이러한 비정규직에 대한 태도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당위적으로는 ‘무조건적인 연대’를 이야기하지만, 이들을 동등한 노동자로 보기보다 ‘보호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정규직 조합원들이 비정규직의 투쟁을 ‘고립적’ 혹은 ‘부족한’ 이란 수식어가 붙는 제한적인 투쟁으로 인식하고 있다. 고용안정은 물량확보, 특근 보장이고, 조합원들은 이를 매개로 활동가와 노조를 흔드는, 역으로 활동가와 노조는 고용보장에 대한 확실한 전망을 담보할 수도 없으면서 조합원들의 인기에 영합한다.

    한 활동가의 말을 빌자면 “고용불안이라고 흔들어서 같이 먹고" 살거나 혹은 “현장에서 대의원이 될 사람은 지금은 어떤 민주성과 투쟁성을 갖춘 것이 아니라 조합원의 고충을 잘 처리해주고, 조합원들을 피곤하게 하지 않는 것, 조합원을 귀찮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2005년 10월 보선과 올해 5월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결과는 울산 지역 노동운동 위기 징후라고 볼 수 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고용안전판으로 삼고 있지만, 이를 묵인·외면하는 원인은 선거에서의 문제, 즉 울산 북구 지역정치를 현대자동차라는 단사 정규직 노동자들의 힘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그러나 울산 북구 ‘무적의 신화’는 원내진출 이후 1년 반이 지나면서 깨졌다. 지난 10·26 재선거와 5.31 지방선거는 울산의 진보진영이 단결해도 질 선거라는 것, 더 이상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힘만으로는 공직후보를 당선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선거였다.

    현대자동차 조합원, 활동가들은 지역에 대한 고민은 있으나, 자신들의 활동이 단위사업장 밖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진보성이 단지 공장안에만 있지, 지역사회에 나오면 다 똑같이 돼 버린다.

    지역차원의 노동자 정치는 여전히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 차원의 문제로 협소하게 이해되거나, 공장 안의 진보성이 지역으로 확장된 실천으로 조직화되고 있지 못하다.

    친노동자 정당이 집권한 울산 북구청으로 대표되는 지자체 역시 도덕성, 청렴도와 비정규직센터 등 노동의 정치 개입 등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지역사회 소비, 생산, 재생산 등에 대한 개입 전략에서 여전히 ‘시혜적’인 측면이 강했으며, 이는 정규직 조합원 이외 비정규직과 실업자, 노동빈곤층 등과 포괄적인 연대를 주도적으로 조직하는 데 한계로 작용했다.

    신자유주의 이후 울산 북구의 노동운동은 ‘결핍 혹은 부재’ 또는 ‘사회적 고립’이라고 특징지울 수 있다. 첫 번째, 대공장 정규직 조합원은 가족 중심적인 가치를 내면화하고 있고, 이는 이들의 실천을 가족 중심적이고 ‘공장 내부의 실천’으로 제약하고 있다.

    두 번째, 현대자동차 노조는 1998년 정리해고 투쟁 이후 전면화된 ‘고용불안’(혹은 정리해고) 문제를 기업 내에서 해결하려고 했고, 그 결과 ‘지역’에 대한 고민이 극히 취약한 상태였다.

    세 번째, 지역정치의 차원에서 북구청은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노동복지와 지역내 의제를 이슈화시키려는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이는 적극적인 노동시장과 노동력재생산 과정에 대한 개입을 통해 정규직 이외 지역 주변부 집단을 조직하는 것이라기보다, 시혜적이거나 일시적인 성격이 강했다.

    이러한 사회적 고립의 근원에는 1998년 정리해고 투쟁 이후 여전히 조직력을 유지하고, 울산 북구내 강력한 사회·정치세력으로 존재하는 현대자동차 노조 ‘내부’의 문제, 즉 조합원의 일상과 경험을 변화시키는 데 실패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물론 울산 북구의 정치적 실험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며, 현대자동차 정규직 조합원들이 ‘배부른 기득권층’이 아님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자 노동조합이 신자유주의에 따른 새로운 균열과 분할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창출되고 있는 지역이라는 공간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자기 계획이 부재할 때, ‘진보정치 1번지’라는 슬로건은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상실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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