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닉스 회사 이제 진절머리가 나요”
        2006년 11월 04일 09: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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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충북 영동에서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유성기업 영동공장. 금속노조 유성영동지회(지회장 김성민) 주간조 조합원 110명들은 낮 1시부터 4시간 파업을 벌이고 관광버스 3대에 올랐다. 이날 휴가를 낸 조합원들을 빼고는 모든 조합원들이 하이닉스 청주공장의 연대집회에 참석했다.

    하이닉스 하청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쫓겨난 이후 올해만 11번째 연대투쟁이었다. 이날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지부장 정근원) 소속 유성영동, 씨멘스브이디오한라, 캄코, 케이엘텍, 엔텍 등 8개 사업장 1천6백명이 파업을 벌이고 800여명이 하이닉스 공장으로 달려왔다. 전국에서 모인 금속노조 간부들을 포함해 이날 1천5백명이 집회에 참가했다.

       
     
     

    유성영동지회 김기돈(27) 조합원은 한 번도 하이닉스 연대투쟁에 빠지지 않았다. 주야 교대근무를 하는 조합원들은 야간근무할 때 빠지기도 하지만 그는 공무부 정비과에 속해 있어 주간근무만 하기 때문에 하이닉스 모든 집회에 참가했다.

    “매번 멀리 청주까지 가야 하고 늦게 끝나 집에 늦게 가게 되니까 조합원들 불만도 생기고 힘들어해요. 하지만 우리야 자주 와봐야 한달에 한 두 번인데, 빨리 끝나서 하이닉스 조합원들이 일하게 되는 게 우리가 여기 와서 고생한 거 갚아주는 게 되는 거죠.”

    “돈으로 정리하려면 1인당최소 10억은 줘야죠.”

    최근 노사간에 교섭이 진행되고 있지만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그는 “회사가 돈으로 정리하려고 한다는 얘기가 있던데 받아들이면 안되죠. 노동자의 자존심을 포기하는 건데, 받으려면 한 사람당 최소 10억은 줘야죠”라고 말한다. “하이닉스 조합원들이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이 싸움을 지금까지 끌고오지 않았겠죠. 회사는 그런 생각을 포기하고 빨리 복직시키는 게 이익일 거예요.”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조합원들도 하이닉스 투쟁의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전국적으로 하이닉스에 여론이 집중되어 있는데 여기서 싸움을 지게 되면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이상 싸움을 이어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고, 승리를 한다면 많은 비정규직에게 희망이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연대투쟁에는 적지않은 희생이 따른다. 영동에서 청주까지는 80Km 거리다. 1시간 이상을 달려야 한다. 일찍 끝나 7시쯤에 집에 도착한 적도 있지만 어떤 날은 밤 10시에 끝나 11시 넘어 집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파업 한 번 하면 일당 4~5만원이 깎인다. 하이닉스 조합원 생계비를 지원하기 위해 그는 매달 1만원씩 내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2년 넘게 하이닉스 조합원들 가열찬 모습으로 투쟁했는데 승리하는 날까지 무슨 일이 있든 꼭 달려오겠다”고 말했다.

    유성영동지회는 이날 버스비로 90만원이 들어갔다. 1년 조합비 3천만원 중에서 600만원 이상이 쟁의비로 쓰이는데 모자라서 간부들이 사비를 털기도 한다. 집회가 많았을 때는 통장에 3만원 남은 적도 있었다. 김성민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많이 힘들어하지만 최선을 다해 투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3일 오후 3시 하이닉스 청주공장 앞에는 1천5백명의 금속노동자들이 전국에서 모여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지회 파업 승리 금속노동자 결의대회’를 열었다. 라면을 팔아 재정사업을 했던 금속노조 인천지부는 이날 투쟁기금 100만원과 60만원 상당의 라면을 하이닉스 하청노동자들에게 전달했다.

    “우린 가끔 나오지만 맨날 여기서 사는 사람도 있는데”

    집회를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이닉스 정문 앞에 모여있던 노동자들은 쫄딱 온 몸을 젖어야 했다. 폭우가 더욱 거칠어지자 몇몇 여성노동자들이 하이닉스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대한이연지회 아주머니들에게 “지겹지 않냐?”고 말을 건네자 얘기가 쏟아져나왔다. “여기 수도 없이 왔어요. 몇 번 왔는지도 몰라요. 뻑하면 와. 지겹지. 빨리 끝나서 안 왔으면 좋겠지.” “신탄진에서 왔는데 40분 걸렸어. 멀미도 나고 너무 지겨워.”

    “하이닉스 회사 해도해도 너무하네, 이젠 진절머리가 나.” “용역경비들 많이 쓴다던데 그 사람들한테 줄 돈 있으면 해결해줘야지.” “없는 사람 선의 좀 베풀어주고 도와줘야지, 사장님 너무하네.”

    오면서 멀리를 심하게 했다는 조합원이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도 우리는 가끔 한 번씩 나오지만 맨날 여기서 사는 사람도 있는데 나와야지. 힘들지만 나와야지. 근데 비가 이렇게 와서 사람들 다 감기 걸리겠네.” 비가 조금 가늘어지자 아주머니들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집회가 시작됐다. 금속노조 김창한 위원장은 “인간답게 살겠다고 선언한 지 만 2년인데 자본은 절대 공장에 조합원들을 들여놓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며 “공장을 전방 휴전선처럼 만들어놓고 있지만 우리는 어떤 고난이 따르더라도 공장으로 돌아가고야 말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고난이 따르더라도 공장을 돌아가고야 말 것”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오병웅 부지회장은 “바로 저 옆에 보이는 공장에서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차별과 착취를 당하며 십수년 차별을 받아왔다”며 “가열찬 투쟁의 성과물이 더디게 나온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차해도 지부장도 “자본이 하이닉스 비정규직 백 명의 동지들을 탄압하는 것은 비정규직의 투쟁의 불씨를 꺼뜨리고자 하는 것”이라며 “이 땅의 가장 억압받고 착취받는 비정규직 투쟁의 불씨를 꺼뜨림으로써 이 땅의 전체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70여명의 하이닉스 조합원이 연단에 올랐고, 대전충북지부 정근원 지부장과 신재교 지회장이 삭발을 했다. 신재교 지회장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금속노조 최용현 부위원장은 “삭발한 머리가 다시 자라서 다시 삭발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동자와 가족들의 목숨을 유린하는 자본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충북 정근원 지부장 하이닉스 신재교 지회장 삭발

    “너무도 많은 집회다. 2년이 지났다. 13명이 구속됐다. 집행유예만 50년을 때렸다. 가정이 파탄났다. 그러나 우리는 이 투쟁을 결코 멈출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다. 너무도 억울해서 우리 월급 5만원만 올려달라고 노조를 만들었더니 2년동안 이토록 우리를 탄압했다. 이 세상 밑바닥에서 싸우고 있는 이 동지들 공장으로 돌려보내지 못한다면 우리가 지금껏 외쳤던 구호는 헛구호일 뿐이다.” 대전충북지부 정근원 지부장의 절규가 참가자들의 가슴을 오래도록 메아리쳤다.

    집회를 마친 조합원들은 하이닉스 공장을 철통같이 방어해주고 있는 경찰과 곳곳에서 몸싸움을 벌였고, 항의의 표시로 계란을 공장 안에 집어던졌다.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이 진절머리나는 전투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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