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백엔 탄광 말고 돼지고기도 없다?
    By
        2006년 11월 04일 08:54 오전

    Print Friendly
     ‘토요연재-맛있는 얘기’가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필자는 경제학을 공부한 소장 학자로 음식의 맛과 음식의 사회학에 대해 많은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레디앙> 독자들과 맛의 미학과 음식의 사회학에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함께 나눌 예정입니다. 필자의 이름은 필명입니다. <편집자 주>

    어린 시절, 강원도 태백하면 떠오르는 것은 검은 강물이 흐르는 탄광촌이다. 이런 이미지는 국민학교 시절 삼척 죽서루에서 개최되었던 한 사생대회의 어떤 일화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 사생대회에서 태백(당시 이름 황지)에서 온 한 친구의 그림을 보고는 깜짝 놀랐었는데, 그 이유는 이 친구가 그린 강물은 온통 검은색이었기 때문이었다.

    검은 강물이 흐르는 땅

    그러나 지금 태백지역에는 탄광이 없다. 1980년 초반부터 시작된 석탄합리화 정책에 따라 40여개나 있던 대부분의 탄광들이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태백에는 탄광 말고 또 하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 돼지고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막장 노동 후, 탄가루 묻은 흰 수건 목에 걸고, 막걸리 한 사발에 탄불에 지글지글 익은 돼지비계를 우적우적 씹어 넘기는 선술집 광부의 모습을 상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풍경은 더 이상 구경하기 힘들다. 그 이유는 이 지역 광산이 거의 폐쇄되었으니 광부들을 보기 힘들뿐만 아니라 그 흔한 돼지고기도 이곳에서는 보기 힘든 음식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태백이 돼지고기를 안 먹는 이슬람 지역도 아니고 정말 돼지고기가 없는 걸까? 물론 하는 말이 그렇지 찾으려 하면 정말 돼지고기가 없겠는가. 이 지역에서 돼지고기가 귀해진 이유는 질 좋고 값싼 소고기가 풍부하기 때문에 그렇다.

    비슷한 가격대에 질 좋은 소고기를 먹을 수 있는데 굳이 돼지고기를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과연 얼마나 싸고 질 좋은 소고기가 있는 걸까? 1990년대 중반 친구들과 태백산을 올랐다 내려 온 후, 태백시장의 한 식당에 들어가 등심을 시킨 적이 있었는데, 놀라웠던 것은 단돈 7천원이면 소등심 1인분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서울 등심가격이 1만5천원에서 2만원 사이였으니, 절반 가격도 안 되었던 것이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1인분에 200g이 아니라 400g이였던 것이었다. 1인분 시켜 2명이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니 어찌 반갑지 아니 할까.

    그래도 가격이야 어찌되었건 음식은 맛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맛이 없다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값싼 수입 냉동육이 판치던 시절, 싼게 비지떡이라는 소리를 듣기 딱 십상이지. 하지만 내가 먹은 고기는 여지껏 먹어본 고기 중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뛰어난 맛이었다.

    씹을 때 입안 가득히 퍼지는 풍부한 육즙과 질겅거리지 않는 부드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에 그런 풍부한 육즙과 부드러운 양질의 소고기는 냉동되지 않고 신선한 냉장상태로 유지, 제공되어야 하며, 나아가 소의 사육에 비법과 많은 정성이 있어야 가능한 법이었다. 그저 탄광촌이라고만 알고 있던 강원도 산골 오지, 어떻게 그렇게 맛있는 소고기가 값싸고 풍부한지 그저 궁금하고 신기할 따름 이었다.

       
     ▲ 무슨 말이 필요할까! 우리한우의 맛!!
     

    절망 속에 핀 꽃, 태백한우

    세계에서 가장 품질이 우수하다고 인정되는 일본 화우는 보통 Kg당 10만엔(100만원) 정도에 팔린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가 닭 잡아 먹는 소린가 하겠지만, 소고기의 맛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소고기의 맛은 보통 소의 품종, 사육방법, 도축방법, 냉장방법 따라 차이가 난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육방법 중 마블링이라는 방식이 있다. 이는 소고기의 부드러움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꽃등심을 볼 때 마치 하얀색 꽃이 핀 것처럼 지방질이 거미줄 처럼 퍼져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만드는 작업이 마블링이다. 보통 이 마블링은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이루어 진다. 소를 거의 움직일 수 없는 공간에 가두어 놓고 계속 고열량의 질 좋은 사료를 먹이는 것이다.

    그러면 소의 근육조직은 퇴화되고 그 퇴화된 조직은 지방질화된다. 이렇게 형성된 지방질이 부드러운 등심의 비밀인 것이다. 즉 섬세하게 형성된 지방질이 고기를 입에 넣었을 때, 입에서 살살 녹는 느낌과 효과를 주게 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과정으로 부드러움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요리가 있다. 프랑스의 유명한 거위간 요리, 푸아그라다. 푸아그라는 거위에게 쉴새없이 먹이를 먹여 형성된 지방화된 거위간을 이용하는 요리이다.

    그러나 내가 이지역 선배로부터 전해들은 태백한우의 사육방식은 이와는 많이 다르다. 좀 더 인간적이라고나 할까. 태백한우는 해발 600m 고원 목장에서 방목과 집사를 통해 사육된다. 소가 깨끗하고 풍부한 산소를 취하게 되니 자연스레 건강한 세포질을 형성하게 되고, 건강해진 세포는 많은 수분과 쉽게 변질되지 않는 특징을 가지게 된다.

    그러니 씹을 때 풍부한 육즙이 그대로 입안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리고 육질의 부드러움을 위해 전기식이 아닌 전통적인 도살방식을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도살방법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생략하기로 하자. 먹는 것을 앞에 두고 이를 말하기엔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하여튼 이것이 태백한우의 풍부한 육즙과 부드러운 육질의 요인이다.

    그러나 사실 이렇게 맛있는 태백한우 탄생의 뒤에는 이 지역사람들의 가슴 아프고, 가슴절절한 사연들이 깃들여져 있다. 그 사연은 태백지역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하던 석탄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도시에서조차 쫒겨나 인생막장이라 일컫는 이 지역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에게 1980년대 초반부터 실시된 석탄합리화 정책은 천청병력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당장 탄광이 문을 닫으면, 집도 절도 없이 떠돌이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회사에 제공되었던 사택을 떠날 수도, 월급을 못받으니 먹고 입을 것을 살 수도 없었던 처지, 그렇다고 그들이 쫒겨난 도시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은 벼랑 끝 절망이 광산 노동자를 휘감았었다. 그러나 광산 노동자들 비정한 현실 앞에 무릎꿇고, 죽기만을 기다릴 수 만은 없었다.

    검은 땅, 검은 진주 – 배진

    그 암울함을 벗어나기 위해 온몸으로 몸부림쳤던 한사람이 있었다. 광산노동자협의회장이었던 배진이었다. 배진은 광산노동자와 태백 시민이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는데, 그가 찾은 길이 한우사육이었다. 한우사육은 태백지역이 가지는 지리적, 환경적 잇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한우사육이 태백의 희망이라고 판단한 배진은 지역에 있는 모든 사육업자, 식육점 업자 한사람, 한사람을 설득하기 시작하였고, 그렇게서 규합된 사람들은 한우를 제대로 사육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양질의 한우를 사육하기 위해 사료, 방목 등 사육방법에서부터 도축방법까지 함께 연구하고, 그 결과를 함께 공유하였다.

    그렇게 새로운 희망 위해 지역민의 땀과 정성이 한우에 쏟아진 것이다. 그 정성은 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서서히 빛을 보게된다. 8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태백한우 사육이 거의 10년만에 사람들의 입을 통해 세상 밖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90년대 진보적 잡지 월간 ‘길을 찾는 사람들’은 배진을 ‘검은 땅, 검은 진주’라 소개한 바가 있다. 그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노동운동에 대한 헌신에 대한 칭송이었을 것이다. 배진은 80년대 후반 진보정당운동에 관여하여, 민중당 태백지구당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80년 사북항쟁부터 1988년 강원탄전 노조부위원장이었던 성완희 열사의 분신에 이르기까지 전 80년대 태백은 그야말로 분노와 절망이 끓어 올라던 현장이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배진이 탄을 캐는 노동자에서 노동자와 서민의 희망을 캐는 정치노동자로 나서게 된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배진 그에게 태백한우가 당시 태백지역의 절망적인 삶의 돌발구를 의미했다면, 그의 정치활동은 억압된 민중의 희망에 불을 지피우기 작업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도 전, 그는 1994년 자신의 몸을 태워 불 지피는 석탄 같았던 그 뜨거운 삶을 마감하고 만다. 민중당 정책위원장이었던 장기표는 그의 죽음 앞에서 원통한 사람이 먼저 죽었다고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 낙동강 발원지 황지못
     

    태백한우를 더욱 맛있게 즐기는 방법

    태백 한우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태백한우에 얽힌 이야기를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나누며 태백한우의 숨겨진 맛을 보는 것이다. 한 지역에 불어닫쳤던 절망과 그것을 온몸으로 극복했던 민중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 이야기는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지 하는 자본주의 삶의 방식과는 또 다른 민중적 삶의 방식이 있으니 어찌 고기 맛이 절로 나지 않겠는가.

    이와는 다르게 즐기는 방식이 있다. 이는 태백지역이 볼거리와 자른 자원들이 풍부한 지역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보면, 태백한우와 철을 함께 즐기는 방법과 철에 따라 나는 풍성한 다른 먹거리와 함께 하는 방식이 있다.

    먼저 계절을 함께 태백한우를 즐기는 방법을 말해보자. 청량리에서 태백행 기차를 타는 것이 가장 추천할 만하다. 왜냐하면 고기를 먹으러 가는데 술한잔 빠질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또한 태백을 가는데 태백산에 어찌 안 오르겠는가. 자가운전하여 가면 이런 즐거움을 놓칠 수 있는 까닭이다.

    겨울철에 간다면 태백산의 눈꽃을 질리도록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름드리 주목나무에 함박눈 싸인 모습을 보면서, 눈꽃터널 속을 뒤 놀다가 태백한우를 먹으러 가는 것이다. 물론 봄에는 흐드러지게 핀 철쭉꽃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여름에 간다면 아주 징글징글 맞은 모기 없는 시골의 정취를 흠뻑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태백의 자연에 흠뻑 동화된 후 태백한우를 먹으러 가는 것을 추천한다. 원한다면 광산박물관이나 근처에 있는 석회동굴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나만의 노하우를 살짝 알려드립니다

    내 노하우를 살짝 알려주는 것인데, 두번째 방법은 철 따라 나는 산나물과 함께 하는 방법이다. 보통 태백한우를 맛볼 수 있는 식육점들이 황지시장 근처에 몰려 있기 때문에 더욱 편리하다. 황지시장은 태백역에서 내려 한강의 발원지 황지공원을 통과하면 쉽게 갈 수 있다.

    한강이 시작되는 황지공원에서 머물러 잠시 끝없이 용천되는 물을 감상해도 좋다. 봄에 간다면, 황지시장에는 할머니들이 함지박 가득 산에서 뜯어온 산나물들로 가득하다. 곰취, 버들취, 달래순, 참드릅 등 이름도 알 수 없는 산나물들을 할머니에게서 사는 것이다.

    한보따리 사봐야 기껏해야 5천원 미만이니 경제적으로도 큰 부담이 없다. 그렇게 산 산나물을 깨끗이 씻어 태백한우 고기를 싸먹든지 날로 먹든지 하면, 그 쌉쌉한 산나물에 맛에 한결 고기맛이 좋아진다.

    가을이라면, 무조건 송이버섯을 사야한다. 9월 중순이나 말경에 가게 되면 황지시장에는 송이시장이 열리는데 그곳에서 송이를 사는 것이다. 그런데 상품 송이는 그 가격이 상당하다. 더구나 최근에 강원도 산불 때문에 송이버섯 시세가 많이 올랐다 한다.

    그런데 태백한우와 함께 먹을 것이라면 굳이 최상품 송이를 살 필요는 없다. 할머니들이 따온 송이 중 이미 활짝 피어버린 하품송이 몇개만 사면 된다. 그러면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본래 송이의 향과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식육점에 가서 송이버섯을 쭉쭉 찢어 숯불에 살짝 구워 먹거나, 태백한우와 곁들여 먹으면, 입안 가득 송이향 가득한 것이 정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