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소리 아닌 마음의 소리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조던 스콧 글/ 책읽는곰)
        2021년 02월 08일 03:14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굿 닥터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미국 드라마 『굿 닥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보는 내내 눈물 콧물을 쏟았고, 급기야 시즌1부터 정주행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미국 드라마 『굿 닥터』는 같은 이름의 한국 드라마를 원작으로 새롭게 만든 것입니다. 이전에 『닥터 하우스』라는 의학 드라마로 큰 사랑을 받았던 제작자 데이빗 쇼어는 한층 성숙한 솜씨로 『굿 닥터』 시리즈를 이끌고 있습니다.

    드라마 『굿 닥터』의 주인공 숀 머피는 자폐증을 지닌 외과 의사입니다. 숀 머피는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자폐증을 지녔다는 이유로 병원에 채용되는 일조차 어렵습니다. 다행이 어릴 때부터 자신을 돌봐준 원장님의 지지와 탁월한 실력 덕분에 인사위원회를 간신히 통과합니다. 하지만 채용된 뒤에는 또 다른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속한 외과의 과장과 교수들이 숀을 아예 수술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자폐증을 극복하고 외과의사가 된 주인공 숀 머피는 환자를 치료해야 할 병원에서 날마다 자신을 둘러싼 차별과 편견에 맞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합니다.

    물론 날마다 차별과 편견에 맞서야 하는 현실은 미국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 세계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차별과 편견에 맞서야 합니다.

    낱말들의 소리가 들려요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의 주인공은 말을 더듬는 소년입니다. 소년은 말소리가 아닌 마음의 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눈을 떠요. 아침마다 낱말들의 소리가 들려요. 나를 둘러싸는 소리가 들려요. 내 방 창 너머로 보이는 소나무의 스-. 소나무 가지에 내려앉은 까마귀의 끄-. 아침 하늘에서 희미해져 가는 달의 드-. 나는 아침마다 나를 둘러싼 낱말들의 소리를 들으며 깨어나요. 그리고 나는 그 어떤 것도 말할 수가 없어요.

    -본문 중에서

    소년은 소리 없이 아침밥을 먹고 아무 말 없이 학교에 갑니다. 학교에 가면 소년은 맨 뒷자리에 앉습니다. 말할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요. 하지만 선생님이 소년에게 뭔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소년을 바라봅니다. 당연히 소년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오늘도 교실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소년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이 책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라는 소년의 한마디 말에 힘을 얻습니다. 말을 더듬는 사람이든 말을 잘하는 사람이든 아무 상관 없습니다. 누구나 ‘강물처럼’과 ‘말해요’라는 말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누구나 강물처럼 힘차게 살고 싶습니다. 누구나 강물처럼 당당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말 하지 못한 이야기가, 가슴에 담아둔 슬픔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던 스콧의 서정적인 서사를 그림책으로 완성한 그림책 작가는 바로 시드니 스미스입니다. 시드니 스미스는 소년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소리와 자연의 위대한 힘을 빛과 고요함으로 그려냈습니다. 시드니 스미스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사람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자연의 소리만이 힘차게 가슴을 두드립니다.

    나를 살리는 말 한 마디

    “이 또한 지나갑니다. 괜찮아요. 잘될 거예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면 됩니다.”

    제가 힘들 때마다 저를 구해준 말들입니다. 삶의 고비, 고비마다 저에겐 늘 이런 응원의 말을 해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실패와 절망으로만 보일 수 있는 순간에도 한 마디 격려와 응원만 들으면 저는 벌떡 일어나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응원의 한마디 말이 저에게는 백만 불짜리 보약이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기업과 상점들이 문을 닫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언제나 밝고 명랑했던 이웃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합니다.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 이웃에게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말뿐입니다. 누구든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습니다. 이 힘든 시기를 잘 버티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차별과 편견 때문에 힘들게 살아온 이웃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먹고사는 일의 어려움에 차별과 편견의 고통까지 더한다면 어쩌면 아무도 버티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차별과 편견을 버리고 부디 서로에게 힘이 되는 한마디 말을 건네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강물처럼 삽니다. 나도 강물처럼 삽니다. 우리 모두 강물처럼 삽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