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학교민주시민교육'의 시사점
    [기고] 「연방정치교육원」과 「보이텔스바흐 합의」
        2021년 02월 08일 09: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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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학교민주시민교육, 우리 교육이 배워야 할 점

    독일 <학교민주시민교육>은 ‘정치교육’(Politsche Bildung)을 가리킨다. 나치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전후 독일을 점령한 전승국들이 취한 태도이다. 전체주의를 극복하려는 ‘정치교육’, 곧 <학교민주시민교육>을 담당하는 교과목은 ‘사회교과’이지만 주마다 명칭이 다르다. 독일 연방 내 16개 주마다 <학교민주시민교육> 교과 명칭이 다른 것은 교육과 관련된 권한 행사에서 연방정부보다 주정부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정치교육’(Politsche Bildung), 곧 ‘중등Ⅱ과정’(SekundarstufeⅡ)의 경우를 살펴보자. 베를린(정치교육), 브란덴부르크(정치교육), 브레멘(정치), 함부르크(정치‧사회‧경제), 바덴 뷔템베르크(공동사회), 튀링겐(사회과), 작센 안할트(사회과), 라인란트 팔츠(사회과), 바이에른(사회과), 작센(공동사회‧법‧경제), 니더작센(정치경제), 헤센(정치경제),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사회과학) 등으로 모두 ‘사회교과’ 명칭이 다르다. 그리고 독일은 <학교민주시민교육>이 다소 늦게 사회과 교육과정에 들어가면서 시수 확보가 기대에 미치질 못한 게 특징이다.

    독일 학교사회는 대체로 역사>지리>사회과목의 차례로 역사 교과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역사 교과는 김나지움에서 필수과목으로 배우고 아비투어(Abitur) 시험에서 시험을 친다. 다만, 베를린, 함부르크, 니더작센, 라인란트팔츠주 김나지움 상급단계에선 역사교과와 사회교과를 비슷한 비중으로 가르치고 배운다.

    특이한 경우는 남부 바이에른주인데 <학교민주시민교육> 과정이 잘 담긴 ‘사회과’(Sozialkunde)의 비중이 매우 낮다. 바이에른주의 경우 <학교민주시민교육> 교과 명칭은 ‘사회과’(Sozialkunde)이다. 10학년-12학년 김나지움에서 주당 1시간 ‘사회과’ 수업이 배정돼 있다. 게다가 ‘사회과’ 수업이 역사교과와 통합돼 있어 아비투어(Abitur) 시험에 ‘사회과’ 과목이 없다. 따라서 바이에른주의 경우 <학교민주시민교육>은 역사교과와 통합돼 가르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독일 학교교육과정에서 사회과목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독일은 기간학제,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 등 교육정책과 교육과정에서 주정부의 권한이 절대적이다. 독일은 ‘독일 연방공화국 상설 주(州) 문화교육부장관회의’(약칭 KMK)를 통해 16개 각 주에 적용될 표준을 협의한다. <학교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기본방침 또한 마찬가지로 KMK를 통해 각 주에 표준을 제시해 준다. 그러면 독일 16개 각 주정부는 KMK의 기본방침을 자신의 현실에 맞게 결정한다. 학교당국은 주정부가 제시한 기본방침에 따라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한다.

    특별히 기억할 만한 사항으로 KMK는 2009년에 <학교민주시민교육>에 역점을 두고 ‘민주주의 교육의 강화 결의’(일명 ‘2009 결의’)를 통해 일선 학교현장에서 ‘수업 차원’과 ‘학생 참여 차원’으로 나눠 교육과정 운영상 기본 방침을 각 주에 제시했다. ‘학생 참여 차원’에서 제시된 기본 방침 4가지는 우리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① 학생들에게 학생회 활동 등 교내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참여 권장’
    ② 학교에서 특별한 ‘참여 활동에 대한 포상’
    ③ 학생들에게 「시 학생의회」나 「주 학생의회」 등 ‘교외 정치 참여 권장’
    ④ 학생들에게 ‘학교 평가 참여 권장’

    학교 밖 정치활동에 학생들이 적극 참여하도록 권장

    <학교민주시민교육>과 관련하여 놀라운 사실은 독일 ‘주정부 교육문화부장관 협의체 회의’(약칭 KMK)는 학교 밖 정치활동에 학생들이 적극 참여하도록 권장한다는 데 있다. 우리교육 현실에선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독일에선 <민주시민교육>이 프랑스처럼 학교 울타리 안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학교 바깥에 존재하는 다양한 <민주시민교육> 관련 기관과 단체를 <학교민주시민교육>과 적극 연계해 활용한다.

    예를 들면 「독일연방 정치교육원」, 「주 정치교육원」, 좌우 이념에 따른 다양한 정당 재단,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민주시민교육> 프로그램을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연계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독일 <학교민주시민교육>, 곧 ‘정치교육’(Politsche Bildung)은 학교와 외부 기관(단체)이 상호 연계돼 구성되고 시행된다. 이러한 현상을 북돋우고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중심기관이 「독일연방 정치교육원」이다.

    독일 <학교민주시민교육>에서 다루는 주제 가운데 난민문제와 사회통합, 그리고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인종주의는 주된 학습주제이다.

    「독일연방 정치교육원」은 ‘나치즘 청산과 전체주의 방지, 그리고 민주 시민사회 육성’을 목적으로 1952년 내무부 산하에 설립됐다. 「독일연방 정치교육원」의 역할은 독일 ‘민주시민교육’을 전체적으로 기획하고 사업을 구상하며 학교,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해 ‘민주시민교육’을 실행하는 관련 기관에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실제로 「독일연방 정치교육원」은 연간 400개 정도에 이르는 시민사회단체, 교육단체에 ‘민주시민교육’ 관련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각 주마다 「주 정치교육원」이 설립돼 있어 「연방 정치교육원」과 긴밀히 협조한다.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나치 교육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함께, 국가 차원에서 설립했다. 오늘날 주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을 초중등 학교교육에서 필수과목으로 가르치는 이유이다.

    「독일연방 정치교육원」과 「주 정치교육원」은 2005년부터 매년 ‘정치교육의 날’(Aktionstage Politische Bildung)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는 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 동서독 사회통합을 이루고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공공의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힘으로써 민주주의 체제를 더욱 견고하게 다지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다.

    다종다양한 전시회와 강연, 세미나와 문화행사 등 190개 행사를 80개 ‘정치교육’ 관련 단체가 주관하여 진행한다. 2007년 행사부턴 ‘퀴즈 쇼’ 형식으로 ‘기후-환경-지식’을 연관 짓는 행사가 열렸다. 2012년부턴 「독일 정치교육협회」도 참여하여 2015년 현재 「독일연방 정치교육원」을 비롯해 총 18개 기관이 이 행사를 주도하고 있다. ‘정치교육의 날’ 행사는 2000년대 이후 변화된 ‘독일 민주시민교육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독일연방 정치교육원」에 대해선 한국사회가 주목할 부분이 크다. 우리도 교육부총리 직속으로 (가칭) 「민주시민교육원」을 설립해 학교 안팎을 아우르는 <민주시민교육>을 기획하고 집행하며 지원할 수 있는 민주시민교육 거버넌스를 구축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

    독일은 68혁명 이후 70년대 냉전체제 하에서 좌우 이념 논쟁과 대립이 극심했던 국가이다. 그리하여 1976년 남부 독일 소도시 보이텔스바흐(Beutelsbach)에 좌우를 망라한 교육학자, 정치학자들이 모여 <학교민주시민교육>, 바로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를 이뤄냈다. 물론 합의된 문서는 없었지만 논쟁 끝에 시민교육의 원리에 대한 최소합의로서 <학교민주시민교육>의 대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이른바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가 그것이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향후 독일 학교교육의 기준틀로 작용해 왔고 지금도 독일 연방 내 모든 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그러면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학교민주시민교육>의 대원칙이자 최소합의인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학교교육에서 지켜야 할 세 가지 교수-학습 원칙이다.

    첫째, 교실 수업에서 주입 및 교화 금지의 원칙이다. 즉, 교사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를 강요하거나 주입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다. 나치 전체주의 교육경험에 대한 철저한 자기성찰의 결과로 좌우 모두 동의한 것이다.

    둘째, 논쟁성 수업에 대한 원칙이다. 학문이나 정치 사회적으로 논쟁적인 현안은 학교 교실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학생들로 하여금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셋째, 학생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려한다는 원칙이다. 교실 수업에서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분석하고 고려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교수-학습 원칙이다. 이는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는 동안 자신의 주체적 관점과 태도를 정립할 수 있도록 존중하는 방식이다.

    2018년 1월 4일 ‘서울특별시 조례 6797호’ (「서울특별시교육청 학교민주시민교육 진흥 조례」)를 공표한 서울시 교육청을 비롯해 몇몇 지자체 교육청에서 <학교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할 때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기초한 교수-학습원칙을 제시한 적이 있다. 이른바 ‘한국형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창출하고 이를 학교교육에 적용하려는 시도이다. 「서울특별시교육청 학교민주시민교육 진흥 조례」 제4조에서 밝힌 <학교민주시민교육>의 기본원칙을 살펴보자.

    1. 「대한민국헌법」(이하 “헌법”이라 한다)이 규정한 가치와 이념을 계승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다.
    2. 우리 사회에서 논쟁적인 것은 학교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사적인 이해관계나 특정한 정치적 의견을 주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
    3. 주입식 방식이 아닌 자유로운 토론과 참여를 통한 교육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4. 학교 구성원 누구나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보편적 접근성은 보장되며 자발적인 참여를 지원한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서울시보다 혁신학교운동이 전국에서 가장 앞섰던 경기도 교육청 조례가 선구적으로 먼저 선을 보였다. 서울시 교육청 조례는 경기도 교육청 조례를 거의 모방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2016년 7월에 시행된 「경기도교육청 학교민주시민교육 진흥 조례」 제4조는 다음과 같다. ‘한국형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원칙을 도출할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제4조(기본원칙) 학교민주시민교육 시행의 기본원칙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민주주의, 공화주의, 기본권 보장 등 우리 헌법의 기본 가치와 이념을 계승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다.
    2. 우리 사회에서 논쟁적인 것은 학교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뤄야 하며, 사적인 이해관계나 특정한 정치적 의견을 주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3. 자유로운 토론과 참여를 통해야 하며, 교화나 일방적인 주입은 금지한다.
    4. 학교시민들의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보편적 접근성은 보장하며 자발적인 참여를 지원한다.

    2020년 7월 22일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개최된 「학교민주시민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향후 입법과제」에 대한 토론회 장면 (출처 : 하성환)

    독일에선 의무교육단계에서 ‘노동법’을 필수교육과정으로 공부한다. 노동조합 간부가 되어 사용자와 임금협상을 비롯해 단체교섭을 어떻게 진행하는지를 학교교육을 통해 학습한다. 언론 인터뷰를 어떻게 진행하고 대외연설문이나 항의문건을 작성하는 법도 학교교육을 통해 이뤄진다. 1997년 「독일연방 정치교육원」과 「주 정치교육원」 대표들은 “민주주의는 ‘정치교육’을 필요로 한다.”는 「뮌헨 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정치교육협회」에서는 2004년 ‘정치교육’(Politsche Bildung)을 통해 길러야 할 역량으로 ‘정치적 판단역량’과 ‘정치적 행동역량’, 그리고 제반 정치문제에 대해 스스로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는 ‘방법적 역량’을 제시했다.

    민주주의는 ‘민주시민’을 통해서 구현되고 유지되는 체제이다. ‘행복한 시민’ 역시 행복한 학교교육을 통해서 탄생되고 길러진다. 학교교육이 비판적 사고와 사회 참여의식으로 무장된 ‘민주시민’을 길러내지 못한다면 행복한 사회는 결코 건설되지 않는다.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물음 앞에 우리가 독일 교육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필자소개
    학교시민교육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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