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학교민주시민교육
    우리 교육이 배워야 할 점
    [기고] 공통필수과목의 의미와 배경
        2021년 02월 02일 10:48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프랑스 <학교민주시민교육>은 프랑스 공교육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프랑스 <학교민주시민교육>의 선구자는 제3공화국 교육부장관 쥘 페리(Jules Ferry)이다. 그가 교육부장관으로 재직 시에 세계 최초로 초등학교 무상 의무교육을 실현하고 종교로부터 교육의 세속화, 바로 라이시테(laicite)를 공교육의 원칙으로 확립했다.

    가톨릭 예수회 사제들을 학교에서 추방하고 공교육의 영역에서 종교를 분리시켰다. 교육의 세속화를 이뤄내고 근대 보통교육을 뿌리내림으로써 프랑스 현대교육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다. 다시 말해 프랑스 근대 시민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인류애를 공화국의 가치로 규정하고 이를 보통교육을 통해 ‘공화국 시민’으로 길러내는 데 쥘 페리가 존재했다. 비록 그가 총리 시절 아프리카와 인도차이나를 침략해 들어간 제국주의자로서 어두운 면모를 보였을지언정 프랑스 공교육의 역사에서 근대시민교육의 청사진을 제시한 창시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프랑스 <학교민주시민교육>은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와 라이시테를 핵심 가치로 추구한다. 그중에서도 평등과 라이시테는 프랑스 <학교민주시민교육>에서 가장 근간으로 작용한다. 평등을 기초로 자유와 정의, 그리고 연대의 가치를 배양시킬 수 있고 라이시테의 정신을 기초로 차별이 없는 세상과 타인에 대한 존중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프랑스 초-중-고 모든 학교에서 라이시테 헌장을 교과서 내용으로 수록하고 라이시테 정신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랑스 <학교민주시민교육>은 <도덕 시민교육>교과로 구현되고 있다. 이 교과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고 아울러 <도덕 시민교육>을 위한 교과서, 그리고 <도덕 시민교육> 교과가 학교현장에서 공통필수과목으로 가르치고 바칼로레아 대학입시에도 반영되는 현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프랑스 <학교민주시민교육>은 공화국의 근대시민 양성을 목표로 했던 <도덕 시민학습>에서 프랑스와 유럽연합의 일원으로서 ‘시민성’을 지향하는 <도덕 시민교육>으로 변화해 왔다. 몇 차례 교육과정 개혁 이후 2015년부터 초중고 모두 <도덕 시민교육>(enseignement morale et civique, 약칭 EMC)으로 명칭을 통일시켰다.

    프랑스 <학교민주시민교육>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교육부가 제공하는 공식적인 교육과정으로 공부한다. 고등학교는 <도덕 시민교육>이 교육부의 공식적인 교육과정으로 포함돼 있진 않지만 대학입학시험에 출제되는 관계로 고등학교에서도 <학교민주시민교육>을 공부한다. 2018년 개정된 프랑스 <학교민주시민교육>의 목표는 세 가지이다. <타인 존중하기>와 <공화국의 가치를 습득하고 공유하기>, 그리고 <시민문화 구성하기>이다.

    이를 좀 더 구체화하면 <타인 존중하기>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다. <공화국의 가치를 습득하고 공유하기>는 자유, 평등, 인류애, 그리고 라이시테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공유함이다. 마지막으로 <시민문화 구성하기>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비판적 사고능력과 함께 능동적으로 사회현안에 참여하는 시민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초중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같은 주제를 심화하여 공부하는 교육과정 연계성과 학습의 지속성을 특징으로 한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2-3학년 <도덕 시민교육>(이하 EMC) 교과서에는 「인종주의와 어떻게 싸울 것인가」란 주제가 나온다. 초등학교 3-4학년 EMC에선 ‘성희롱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남녀평등을 위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환경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먹거리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란 주제로 학습이 심화된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선 「아이가 된다는 것과 어른이 된다는 것」이란 학습주제 아래 ‘청소년 시의회에 참여하기’를 교육내용으로 학습한다.

    중학교 2-3학년이 되어선 평등의 상징적 인물인 「로자 파크스」를 주제로 학습하고 「여성의 투표권을 위한 투쟁」을 학습주제로 공부하며 「소수자를 위한 권리와 정의」란 주제를 공부한다. 나아가 중학교 4학년 시절엔 「프랑스 시민과 유럽 시민이 되는 것」을 학습주제로 공부한다. 더불어 「정치적 권리를 위한 여성들의 투쟁」과 「프랑스 공화국 라이시테 정신」,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하는 것」과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학습주제로 공부한다.

    이 모든 교육과정은 시각적으로 다양하게 제시되는 학습 자료를 통해 토론과 발표 등 능동적인 학생활동을 통해 이뤄진다. 프랑스 학교교육만큼 토론수업이 활성화된 국가는 드물다. 오늘날 프랑스 시민들이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자연스럽게 주장하고 토론하는 모습들은 프랑스 <학교민주시민교육>의 결과물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가까운 친척이나 가족끼리도 정치나 종교 이야기로 얼굴을 붉히는 경험 끝에 은연중 정치와 종교가 금기어로 돼버린 현실과 너무나 차이가 크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회에선 노동자 파업이나 시위가 발생했을 때 이러한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노동자의 투쟁에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현상들을 종종 목격한다. 이 모든 것이 프랑스 <학교민주시민교육>의 산물이다.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민주시민교육이 대부분 학교 내 교육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만큼 시민교육의 역사가 길다. 올해로 프랑스는 시민교육을 시작한 지 139주년 되는 해라고 한다. <민주시민>교과조차 없는 우리교육 현실을 성찰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2018년 10월 27일 <국민주권시대 학교민주시민교육의 현황과 과제> 학술대회에서 축사하는
    유은혜 교육부장관(출처 : 하성환)

    선택이나 교양과목 아닌 ‘공통필수과목’

    더욱 놀라운 사실은 프랑스 <학교민주시민교육>인 <도덕 시민교육>이 프랑스 중학교 졸업자격시험인 브르베(brevet)와 대학교 입학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eat)에서 공통 필수과목으로 치러진다는 사실이다. 모두 논술형 문제로 출제되고 절대평가 방식으로 학생의 학업정체성을 평가한다. 선택과목이나 교양과목으로 가르치고 끝나는 과목이 아니다. 프랑스 공교육의 목표가 ‘공화국 시민성’을 길러주는 것이기에 교육과정에서도 ‘공통필수과목’으로 그 위상이 높고 대학입시과목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학교교육의 기본방식이 ‘토론과 글쓰기’인 만큼 대학입시가 논술형으로 출제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교사의 자율성에 있다. 프랑스 교사들은 국가수준 교육과정에 기초하되 교육과정 구성에서는 놀라울 만치 자유롭다. 교과서 자체가 자유발행제이다. 다시 말해 교과서 출판과 교과서 선택에서 자유롭다. 나아가 교과서 없이 가르치는 것도 교사의 자율에 맡긴다. 프랑스 교사에게 교과서는 단지 하나의 교재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물론 프랑스는 다른 북서유럽국가와 달리 교육행정에서 국가주의가 관철되는 국가이다. 그럼에도 교육의 자주성과 교사의 자율성이 높은 수준으로 보호받고 보장된다. 심지어 교사가 신분을 유지한 채 국회의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 기간 경력이 인정되고 승진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당연히 정당 가입은 말할 것도 없고 공무 수행 이외에 정치활동도 자유롭게 보장된다.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이 철저히 보장되면서도 정치적 중립성이 지켜지는 현실이다. 프랑스 민주시민교육이 성공한 외적 장치이자 교육환경적 요소이다.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돼 있기에 우리나라 교사들은 기독교든 불교든 자신의 종교를 가질 수 있다. 나아가 종교를 갖지 아니할 자유도 있다. 다만 학교교육에서 특정 종교를 강요하거나 교사 자신이 관여한 종교를 선전 또는 타 종교를 비난해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자유도 헌법에 기본권으로 명문화된 만큼 교사에게도 보장해 주어야 한다. 특히 교사의 정당 가입은 정치적 기본권 가운데 가장 최소한의 것이다. 교사가 정당에 가입한다고 해서 학교교육에서 특정 정당을 찬양하거나 자신이 가입한 정당에 학생들이 가입하도록 권유하진 않는다. 그게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은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교사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가 철저히 무권리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헌법에 보장된 정치적 기본권조차 누리지 못하는 교사들이 어떻게 학교교육을 통해 건강한 민주시민을 길러낼 수 있겠는가! 교사에게 정치기본권은 거의 천민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이다. 바야흐로 <학교민주시민교육>을 앞두고 있는 우리 교육이 깊이 성찰할 지점이다.

    2020년 7월 22일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민주시민교육법 관련 토론회 포스터(출처 : 하성환)

    필자소개
    학교시민교육연구소 부소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