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랜드와 엠패스트,
    스스로 토막을 내는 회사
    [기고] 바른 길 가는 게 지름길이다
        2021년 01월 29일 10: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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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아는 언론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날, 그 언론사는 구성원들이 알지 못하는 이유로 회사를 쪼개기 시작했다. 정치부 부장에게 회사를 따로 차려, 정치부에 있는 기자들 모두를 데리고 나가라고 한다. 몇 년간은 그 언론사 이름을 써도 좋다고 하고, 그 기간 중 기자들의 임금도 자신이 당분간 책임지겠다고 한다. 그렇게 정치부 회사를, 경제부 회사를 따로 차리고, 사회부 회사를 따로 차리겠다는 계획이다. 심지어 어느 부서는 전체를 쪼갤 수 없어, 부서의 누군가는 계속 그 언론사 소속의 기자로,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 설립된 이름도 알 수 없는 회사 소속의 기자로 기사를 쓰라고 한다. 그렇게 당분간은 하나의 언론사인 것처럼 하나의 회사 이름으로 기사를 쓰게 되고, 독자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 언론사가 내보내는 기사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독자로서는 여전히 그 언론사만을 기억할 수밖에 없고, 기사를 접하면서 모든 기사들이 당연히 그 언론사 소속 기자들이 작성한 기사들이겠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회사가 달라졌으니, 쪼개진 회사 소속 기자들이 작성한 기사에 대한 책임은 잘게 쪼개진 소규모 회사가 원칙적으로 부담하게 된다. 언론노동자 역시 쪼개진 소규모 회사에서 회사의 눈치를 더 살필 수밖에 없고, 다른 회사 소속 기자와의 공동취재라거나 기자로서 폭넓은 경험을 쌓기 위한 다른 부문의 기자로서의 활동은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런 언론사가 있다면, 언론사로서의 사회적 책임은 차치하고 그 언론사를 종합일간지라 부르는 건 온당한 것일까? 언론사가 갖고 있어야 할 편집의 자유와 독립은 누구에게 있다고 보아야 하는 걸까?

    아마도 독자들은 이런 상상을 터무니없고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언론사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언론노동자들이 그러한 상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그것도 노동조합이 엄연히 존재하는 언론사라면…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민간 기업에서도 유효할까? 유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기대와 상식, 사회통념에 부합하는 말일까? 어쩌면 우리는 언론사는 그렇게 하면 안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일반 회사는 그렇게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를 나누는 기준은 어디에서부터 갈라진 걸까?

    2.

    이랜드리테일은 ‘2001 아울렛’을 비롯하여 백화점, 할인점 등 전국에 약 50여개 가까운 매장을 운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유통 회사로, 지난 19일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랜드리테일은 자사주 소각에 따라 이랜드월드라는 지배회사가 98.9%의 주식 지분율을 소유하여 사실상 이랜드월드의 100% 자회사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공시기업집단 지정현황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0. 5. 1. 기준 이랜드의 재계순위는 2019년 41위에서 2020년 36위로 올라섰다. 이랜드리테일 역시 2019년 영업이익은 2천 125억원, 당기순이익은 474억원으로, 비록 2018년에 비해 다소 주춤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건실한 회사임은 다르지 않다. 이 과정에서 400억원이 넘는 과도한 배당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이랜드리테일은 각종 패션 브랜드뿐만 아니라 킴스클럽이라는 식품과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중대형 할인매장 브랜드를 운영 중인데, 1995년 1호점인 강남점을 오픈한 이후 현재 전국에 총 35개의 매장이 운영 중이다. 킴스클럽은 대부분 이랜드리테일이 운영하는 할인점이나 백화점이 있는 건물을 함께 사용하고 있고, 극히 일부의 매장은 별도 운영 중이다.

    이랜드리테일 앞 노동자들 기자회견 모습

    3.

    이제 이랜드리테일이 킴스클럽을 중심으로 실제로 회사를 쪼개고 나누는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6월, 이랜드리테일은 상무였던 모 임원을 어느 부서의 본부장으로 인사발령을 하였다. 해야 할 일은 킴스클럽 매장 중 5개를 묶어 회사를 따로 차려 나가는 것이다. 7월에는 운영책임자와 재무담당까지를 경쟁회사가 될지도 모를 회사 설립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인사발령을 하였다. 그렇게 인사발령을 받을 당시 이랜드리테일 소속 관리자들은 이랜드리테일을 위한 근로제공을 하기보다, 새로운 회사를 차리는 업무에 매진하였다. 임금은 이랜드리테일로부터 받으면서 정작 하는 일은 경쟁회사가 될지도 모를 회사의 설립이었다. 그들은 버젓이 이랜드리테일 회사 내부에서 새로운 회사의 사업설명회를 개최하고, 이랜드리테일은 장소 제공뿐만 아니라 사업설명회 참여를 독려하고, 경쟁회사로의 이직을 묵인하거나 오히려 권유하였으며 이를 통해 2020. 10월 약 100여 명의 소속 노동자들이 새로운 회사로 옮겨 갔다. 그 과정에서 이랜드리테일은 새로운 회사로 옮기는 노동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거나 신설 회사에게 10년의 영업권을 보장했다며 퇴사를 유도하기까지 했다.

    법원은 경쟁업체의 설립 및 운영 등에 관여하는 행위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고사유로 그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고, 단순히 경쟁업의 설립에 명의를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는 등의 방법으로 참여하였음을 이유로 한 해고 역시 노동위원회에서 회사의 존망과 관련된 문제로서 이에 대하여 징계해고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랜드리테일은 회사 안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일들에 대해 징계를 하기보다 오히려 지시하고 독려하였다.

    이렇게 이랜드리테일에는 킴스클럽이라는 브랜드가 있지만, 최소한 5곳의 킴스클럽은 이랜드리테일과는 형식상 아무런 관계가 없는 별개의 회사인 엠패스트가 운영하고 있다. 다른 킴스클럽은 이랜드리테일이 운영하는 킴스클럽이지만, 5곳의 킴스클럽은 엠패스트라는 고객으로서는 낯선 이름의 회사가 운영하는 킴스클럽이 된 것이다. 어쩌면 이는 고객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킴스클럽을 운영하는 주체는 하나의 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4.

    이랜드리테일은 그렇게 약 100여 명의 노동자들을 엠패스트라는 회사로 떠나보냈다. 이랜드리테일이라는 회사를 지금까지 성장시키는데 이바지한 노동자들의 경험과 노하우까지 그대로 버렸다. 그 과정에서 퇴직위로금을 지급하고, 당분간은 킴스클럽이라는 상호를 그대로 사용하게 하고, 인사관리뿐만 아니라 물류 공급 등 엠패스트 회사의 운영을 위한 지원 노력도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심지어 매각하여 이미 다른 회사인 엠패스트가 인원 부족의 어려움을 겪자 자신의 회사 소속 노동자들로 하여금 엠패스트로 가서 엠패스트 회사의 업무를 지원하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마치 엠패스트의 성공이 이랜드리테일의 성공인 것처럼 말이다.

    그 과정에서 엠패스트로 이직한 노동자들의 선택기준을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엠패스트라는 회사 대표이사가 된 전 이랜드리테일 상무가 ‘대기업 유통의 규제를 피해 지역 식자재 마트에 진출하고 이 사업을 확장할 것’이라고 사업설명회에서 말했다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믿었을까? 그래서 대기업인 이랜드리테일을 떠나 엠패스트라고 하는 중소기업의 장기적 전망과 희망을 갖고 이직을 선택한 것일까? 이랜드리테일이라는 우산이 사라져 버려도, 엠패스트가 이랜드리테일보다 훨씬 자신의 미래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튼튼한 회사가 될 것이라 정말 믿었던 걸까? 어쩌면 이직을 하지 않으면 이랜드리테일이 운영하는 너무 먼 킴스클럽으로의 인사이동이 더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차라리 집 가까운 곳에서 몇 년이라도 더 다닐 수 있다면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이랜드리테일를 떠나게 된 것은 아닐까?

    엠패스트가 운영하는 킴스클럽 5개 매장의 2019년 기준 영업이익은 10억 원 적자라고 한다. 이랜드리테일이라는 대기업의 우산 안에 있던 매장들이 쪼개고 나뉘어져 더 이상 이랜드리테일이라는 회사와 관계없다면, 킴스클럽이라는 브랜드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면, 그럼에도 엠패스트라는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성장할 수 있다고 장밋빛 그림을 그리며 이직을 결정하게 되었노라고 주변 지인이 말한다면, 나는 그의 말에 쉽게 동의한다고 말하지 못할 듯하다.

    5.

    킴스클럽만이 아니다. 이랜드리테일은 킴스클럽을 몇 개의 회사로 더 잘게 쪼개려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브랜드 일부도 역시 이와 유사한 계획을 갖고 있고, 그 외에도 안내데스크를 없애거나 도급으로 전환하고, 매장 내 문화센터도 일부 폐쇄한다고 한다. 도대체 이랜드리테일은 몇 개의 회사로 쪼갤 생각인 걸까? 지금도 여전히 이랜드리테일 홈페이지에는 원스탑 쇼핑이 가능한 상품 구성과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다고, 원산지에서 직접 구매한 다양한 상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고 홍보한다. 모두 킴스클럽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이제 그 전부가 자신의 회사도 아니면서, 브랜드만으로 여전히 자신의 회사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이랜드리테일 홈페이지에서는 나눔과 바름, 자람과 섬김을 회사의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고, ‘자람’에서는 사람의 공동체를, 직장을 통해 완성된 인격을 갖춘 사회 지도자 배출을 강조하고, ‘바름’에서는 돌아가더라도 바른 길을 가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이익을 내는 과정이 정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회사를 쪼개어 이랜드리테일이 얻게 되는 이익은 누구를 위한 이익이며 과연 그 과정이 정직한 이익인가? 쪼개고 나누어 만들어지는 공동체는 무엇을 지향하고자 하는 걸까? 엠패스트의 설립과 운영을 통해 이랜드리테일의 구성원 중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걸까?

    이랜드리테일이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는 비전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돌아가더라도 바른 길을 가는 지름길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희망한다. 다행히 이랜드리테일 사업장을 조직대상으로 포함하고 있는 복수의 노동조합이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 처음으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활동 중이다. 그 활동들이 이랜드리테일과 엠패스트를 바른 길, 지름길의 자리로 다시 되돌려놓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응원한다.

    필자소개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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