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사퇴-비대위 없고
    보궐선거 무공천이 책임정치?
    정의당 지도부 정치적 책임 뭉개기
        2021년 01월 28일 07: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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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을 수습 중인 정의당 비상대책회의 내에서 당 지도부인 대표단의 ‘총사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대표가 속했던 대표단의 총사퇴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 전환 등을 통해 강력한 쇄신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대표단과 의원단 일부에선 대표단 총사퇴에 강하게 반대하면서 보궐선거 무공천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가해자 개인을 추방하는 방식의 ‘가해자 지우기’와 ‘보궐선거 무공천’으로 상황을 수습하겠다는 뜻인 셈이다. 당 대표 성비위 사건에 대해 당 전체가 책임질 문제라고 규정하면서도 당 지도부가 실질적인 정치적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28일 정의당 복수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날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소수의 부대표가 ‘대표단이 총사퇴하고 비대위를 꾸려야 한다’는 취지로 부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대표단 다수는 ‘대표단 총사퇴’에 강하게 반대하거나 유보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단은 선출된 대표와 부대표로 구성된 당의 지도부에 해당한다.

    비대위는 당 지도부의 총사퇴 후 비상한 상황을 타개할 임시지도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당 지도부가 정치적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직을 내려놓은 후, 당을 쇄신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 비대위 체제의 핵심이다.

    정의당의 비상대책회의는 당 지도부의 정치적 책임이 빠져 있다는 점에서 비대위와는 완전히 다른 기구다. 책임 단위로 규정돼야 할 대표단 또한 비상한 대책을 마련할 주체로 서게 된다. 결과적으로 가해자인 김 전 대표만 빠졌을 뿐, 의원단과 대표단이 모인 기존 전략협의회와 구성원이 동일하다. 기존의 전략협의회에 ‘비상’이라는 수식어만 붙인 회의체라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대표단은 ‘대표단 총사퇴’ 등 당 지도부의 정치적 책임 문제에 대해선 일단은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김 전 대표 직위해제로 당대표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김윤기 부대표는 이날 <레디앙>과 통화에서 대표단의 구체적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정해진 바가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비상대책회의 모습(정의당tv 캡처)

    기존 지도부로 구성된 비상대책회의가 쇄신 기구?
    ‘가해자 지우기’ 외에 지도부 책임은 전무…
    일부 전·현직 의원들 “당대표 성비위, 개인 일탈로 보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당 지도부 전원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 전무후무한 현직 당대표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가해자 직위해제가 당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쇄신 방안으로 평가 받을 수 있냐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젠더 이슈를 앞세웠던 정당이라면 가해자 개인을 조직에서 추방하는 데에 그치는 일반적이고 손쉬운 ‘가해자 지우기’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 총사퇴가 능사는 아니지만 당 쇄신의 출발점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도당위원장을 역임했던 당의 한 관계자는 이날 <레디앙>과 통화에서 “당대표의 성추행 사건에 당이 함께 사과하면서 당 조직을 쇄신하겠다고 했다. (가해자인) 당대표가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 정도를 가지고 정의당이 쇄신했고 혁신했다고 말하는 것은 곤란한 일”이라며 “비상대책회의는 새로운 기구도 아니고, 외부인사를 영입해 사건을 조사하는 등의 전형적인 모습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성평등 비대위를 꾸리고 비대위원은 과반이든 전원이든 여성으로 꾸려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 혁신 의지를 밝히는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정의당의 전·현직 의원들 사이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 지도부의 총사퇴라는 정치적 결단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당 전체가 당대표 성추행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전락시키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비상대책회의 구성원인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전날인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표단과 의원단을 포함한 비상대책회의 구성에 대해 “우리는 또 다시 과거의 경험치로 현 상황을 해결하겠다는 손쉬운 결정을 내렸다”며, 이는 “김종철 당 대표 개인의 성비위 문제로 다루는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당 대표단의 사퇴를 전제로 당 대표의 성비위 문제를 포함해 당이 시민들에게 다시 신뢰받을 수 있는 책임 있고 분명한 입장 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밝혔다.

    이은주 의원은 “그동안 다른 보수정당들이 이런 문제가 생기면 당사자를 눈앞에서 치움으로써 문제를 없앴다고 해왔고, 우리는 그런 그들을 비판했다. 우리가 그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처리)해서는 안 된다”며 “물론 김종철 전대표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서 당의 대응은 신속하고 적절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고 만다면 우리는 다른 정당과 다르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이 같은 의견을 이날 전략협의회에서 밝혔으며 자신의 의견은 소수의견이었다는 점도 전했다. 다수는 ‘대안이 없다’, ‘내부 혼란만 가중된다’, ‘사퇴가 아닌 책임지고 수습해야 한다’, ‘사퇴는 무책임하다’ 등의 의견을 냈다고도 밝혔다.

    그는 이러한 다수 의견에 대해 “혼란을 최소화한 빠른 수습 방안을 찾겠다고 했을 때 그 방안은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 앞에 제기된 문제는 도덕성을 기반으로 어렵게 버텨온 진보정당의 뿌리가 흔들릴 수 있는 엄중한 사건”이라며 “지금은 단호하게 변화해야 할 때다. 혼란과 고통을 감수하는 결정은 분명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안주하는 모습은 아닐 것”이라고 강조혔다.

    박원석 전 의원도 페이스북에 “현재의 당 지도부를 그대로 포함하는 비상대책회의 체제는 정치적 결정이기보다는 실무적 결정으로 보이며, 혹 개인의 일탈 이상으로 현 상황을 보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마저 든다”고 지적했다.

    박 전 의원은 “당헌 당규상의 규정, 일시적 당무 공백과 같은 절차적 엄밀성이나 실무적 걱정을 말하기에 앞서 정치하는 사람들로서 당원들 앞에, 국민들 앞에 무엇이 개인의 일탈이 아닌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와 한계를 성찰하고 변하려는 몸부림의 모습인지 다시 한 번 숙고해 줄 것을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보궐선거 무공천 검토 유력
    당 대표단, 보궐선거 후보들에게 책임 전가?

    당내에선 당대표 성추행 사건과 연계해 보궐선거 무공천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조사한 배복주 부대표는 2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이번 재보궐 사건이 민주당의 젠더 폭력 때문에 하는 선거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공천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배 부대표는 사견을 전제로 한 답변이라고는 했지만,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보궐선거 무공천은 당내 우세한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진다. 당의 요직을 맡고 있는 한 관계자는 정의당의 귀책사유로 치러지는 보궐선거가 아니더라도 성비위 문제로 민주당을 비판해놓고 공천을 하는 것은 후폭풍이 일 수 있다는 취지의 우려를 전했다.

    그러나 당의 책임 단위인 대표단의 정치적 책임은 전무한 상태에서, 보궐선거 무공천을 주장하는 것은 선후 관계가 맞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당 지도부 책임론도 논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궐선거 무공천부터 언급하는 것은 당 지도부의 책임 회피로도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당 전체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면 당 해산 주장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당을 해산할 게 아니라면 당의 어떤 단위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렇다면 책임 단위는 대표단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 당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선거에 무대응하는 방식을 되풀이할 건가”라며 “정의당이 무공천하면 고밀도 개발 프레임으로 경쟁하는 거대양당에 의해 이번 보궐선거에서 젠더 이슈가 지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우려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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