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정계개편을 겨냥한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계개편의 종착역이 ‘통합신당’이라는 데는 통합론자들 사이에 이견이 거의 없다. 문제는 누가 이 흐름을 주도하느냐다. 고건 전 국무총리가 먼저 치고 나왔다.
고 전 총리는 2일 "국민대통합신당 창당은 국민의 요구이고, 시대적 요청"이라며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께 창당작업을 본격화해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 전 총리는 이날 청주에서 열린 충북 미래희망포럼 창립기념식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중도 실용개혁세력을 하나로 모으는 국민통합신당 창당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자 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고 전 총리측 김덕봉 공보수석은 "창당작업에 3~4개월은 걸릴 것"이라며 "실제 창당은 내년 3월께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 고건 전 총리 (사진 = 연합뉴스) | ||
고 전 총리는 통합신당 창당방식에 대해 "뜻을 같이하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광장에서 만나서 연대하고, 협력하는 방식이 좋다고 본다. ‘헤쳐모여’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역의원 여러 명과 의견교환을 한 결과 대부분 국난을 타개하기 위한 신당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며 "국민대통합 신당의 문은 활짝 열려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동안은 비공식적으로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겠지만 적절한 시점에서는 `국민통합신당 원탁회의’ 같은 대화기구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합신당의 범위와 관련, 그는 "국가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 냉전 수구세력, 좌우 양극단 세력을 제외하고 합리적인 진보세력에서부터 개혁적 보수세력까지 아우른다"며 "중도개혁취지에 공감하는 인사들은 어느 정당에 속해있든지 함께 신당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 전 총리는 이날 통합신당에 대한 두 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먼저 열린우리당이 주도하는 형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 전 총리는 "특정정당, 열린우리당 중심의 재창당이라든지 그러한 정당에서 하는 오픈프라이머리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 배제다. 그는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지키겠다고 공언하신 바 있고, 저는 현재 정부여당의 잘못 때문에 나라가 어렵기 때문에 현재 여당이 아닌 대안으로서 새로운 국민통합신당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친노세력이 배제되는 가운데 자신의 지분이 일정하게 보장되는 형태의 통합신당에는 합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 전 총리가 12월께 창당작업을 본격화한다는 것은 이런 문제를 놓고 여당 내 통합론자들과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갈 것임을 의미한다. 고 전 총리는 이날 "(여당의 통합론자들과) 질은 다르지만 종착역에서 만날 수는 있다"고 했다.
고 전 총리가 이날 제시한 창당일정은 열린우리당이 그리는 정계개편의 시간표와도 맞아떨어진다. 열린우리당은 2일 의원총회를 열어 당의 진로 및 정계개편 방향에 대한 결론은 정기국회 이후에로 내리기로 했다.
노웅래 공보부대표는 의총 브리핑을 통해 "우리당은 남은 정기국회 기간 여당으로서 당면한 국정현안과 함께 국민생활과 관련된 법안,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 집중하기로 했다"며 "정계개편과 관련해서는 체계적이고 질서있고 심도있게 논의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노 부대표는 또 "창당정신을 발전시켜 나가고 국민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면서 "비대위는 향후 정치일정을 책임있게 논의하고 정기국회가 끝난 뒤 그 결과를 의총에 보고키로 했다"고 전했다.
비대위가 12월 의총에 제안하게 될 ‘정치일정’에는 정계개편의 방법과 대상, 시기와 절차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내용을 마련하기 위해 비대위는 당내의 여러 계파는 물론 당 외부의 통합 파트너들과도 협의와 조정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한다고 해도 여당 내 ‘통합론자’와 ‘리모델링론자’의 입장차를 좁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고 전 총리가 이날 여당의 주도권 포기와 노대통령 배제를 통합의 조건으로 제시함에 따라 당내 통합론자들은 ‘고건+민주당’과 노대통령 가운데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통합론자들의 생각이 ‘통합’에 기울 경우 여당은 통합신당파와 친노직계로의 분열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반면 노대통령과 함께 가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거나 통합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할 경우 고 전 총리와 여당이 당분간 각자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여당의 일부 강성 통합론자들은 당을 뛰쳐나와 개별적으로 고 전 총리의 통합신당에 몸을 실을 수도 있다.
물론 대선 패배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이들의 각개약진은 잠정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각자의 길을 걷다 대선을 앞두고 통합하는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모델의 재판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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