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와 '김본좌'
        2006년 11월 02일 05: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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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 현실 세계에서는 토마스 앤더슨, 가상 세계에서는 네오라 불리는 사나이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앤더슨 혹은 네오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속에서 작은 CD를 꺼내 건네주며 말한다. 만일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CD를 받은 이는 앤더슨 혹은 네오에게 당신은 나의 구세주이며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김본좌 신드롬은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리게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성을 가진 김 모씨(Mr. 앤더슨)가 가상 세계에서는 김본좌(네오)로 추앙받으며 한국에 유통되는 일본 성인물의 70%(매트릭스의 해킹)를 공급했단다.

       
     ▲ 영화 <매트릭스> 포스터
     

    스미스 요원이 네오를 결코 네오라 부르지 않고 Mr. 앤더슨으로 부르듯, 김본좌는 사법 당국에 의해 김 모씨로 호명되며 음란물 유통죄로 구속된다. 이후 네티즌들은 김본좌를 예수 그리스도(the one)에 비유하며 재기 발랄한 댓글 놀이를 펼친다. "너희 중 컴퓨터에 야동 하나 갖지 않은 이들만이 나에게 돌을 던져라."

    그러나 네오와 김본좌는 전혀 다른 존재다. 네오가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의 밝은 면을 보여준다면 김본좌는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란 캘리포니아로 상징되는 자유주의의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이념을 일컫는다.

    1차적으로 캘리포니아는 60년대 히피로 통칭되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와 함께 한다. 반전, 평화, 자유로운 성은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가 설파한 이념적/ 문화적 진보주의였다. 2차적으로 캘리포니아는 90년대 실리콘 밸리와 결합하며 IT를 통한 기술 혁명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러한 캘리포니아가 지니는 이중의 함축성은 전자 혁명을 통한 민주주의 실현 이상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와 함께 정치적 의미에서의 자유주의가 아닌, 경제적 의미에서만의 자유를 의미하고 있다.

    IT를 통한 개인의 해방이 아닌, IT를 통한 기업 통합의 가속화, 이윤 창출의 합리화, 전지구적 착취체계와 독점의 완성이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로 뒷받침 되고 있다. 개인의 자유주의적 이윤추구 욕망을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김본좌는 정확히 이러한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의 부정적 측면을 보여준다. 물론 김본좌가 행한 위선적인 한국 성 담론에 대한 해킹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가 지닌 부조리에 대한 폭로의 힘과 이율배반이 가져오는 소격효과의 힘을 필자는 긍정한다. 많은 네티즌들이 김본좌에 대해 연민의 감정을 갖는 것도 이러한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의 긍정적 가능성에 대한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김본좌는 네오가 아니었다.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가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자원이 되었듯, 그는 해킹을 통해 이윤 추구의 논리 속에 함몰되었다. 그가 행한 것은 가상을 통한 현실의 전복이 아니라, 가상을 통한 현실의 경제 논리의 재생산이었다.

    사실 필자는 김본좌에 필적하는 해커들을 알고 있다. 한국에 공급되는 일본 성인물의 최상위 공유자들은 김본좌의 행태에 대해 그 이전부터 우려의 눈길을 보냈었다. 김본좌는 무차별적으로 다른 이들의 자료를 훔쳐다가 자신의 것인 것 마냥 스스로를 포장했었다. 최상위 공유자들이 스스로를 성인 하위문화의 주체로, 위선적인 한국의 성 문화에 대한 전복자로 자기 규정했던 것에 반해 김본좌는 오로지 자신만의 이윤 추구욕에 휩싸인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네티즌들이 김본좌를 신격화하는 것은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의 잘못된 투영이다. 그는 결코 한국의 래리 플랜트도, 매트릭스를 해킹하는 네오도 아니었다. 김본좌는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를 오용하여 스스로의 이윤을 추구한 ‘사이퍼’에 다름 아닌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본좌 신드롬이 가져온 사회적 반향은 나름 의의가 있다. 적어도 우리는 김본좌를 통해 기만적인 한국의 성 담론에 대해 사유할 수 있지 않았는가. 의도적으로 보지 않으려 했던 가상현실의 실제적 효과에 대해 생각할 수 있지 않았는가.

    네티즌들이 보여준 “▶◀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는 오염된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것은 분명 <매트릭스>의 버그처럼 디지털로 일원화된 신자유주의의 균열을 가져올 버그의 잠재태일 것이다. <매트릭스> 1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system failure”는 우리가 일탈로 규정한 시뮬라시옹의 현실 효과로부터 생성될 것이다.

    * 이 글은 문화연대 웹진 <문화사회> 10월 27일자에 실린 글로, 문화연대와 필자의 허락을 받아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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