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놈들이 지배하는 세상
    [책소개] 『카키스토크라시』(김명훈(지은이)/ 비아북)
        2021년 01월 23일 12: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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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놈들이 판치는 세상

    “저급한 인격의 소유자들이 사회의 운전대를 잡고 있다면, 그들의 인격은 우리 모두의 운명이 된다.”(29쪽)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공정한 경쟁에서 기대하거나 수긍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많은 것을 차지하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문제는 이것을 행운이나 특혜라 생각하지 않고, 우월성의 징표로 여긴다는 점이다.

    저자는 “화려한 껍데기 속에 자리하고 있는 천박한 인간형은 직간접적으로 사회 전반의 기풍과 풍습에 잡스러운 영향을 미치고, 열심히 사는 서민들에게 패배감과 모멸감을 주며, 급기야는 공동체 의식을 파탄시킨다”(29쪽)고 묘사하며 이들을 ‘잡놈’이라고 부른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잡놈’이란 사회적 신분이나 계급을 떠나 내면의 품계를 기준으로 하여 “마음과 몸가짐이 천박한 사람”(171쪽)을 뜻한다.

    그렇다면 소수의 특출난 ‘잡놈’들이 불현듯이 나타나 우리 사회에 제동을 걸고, 서민들의 삶을 바닥으로 끌어내린 것일까? 사회 상부층의 부도덕과 탐욕은 익히 들어온 얘기다. 저자는 이 부도덕과 탐욕이 “너무도 정교하게 체계화되어” 있는 사회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카키스토크라시』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대통령이라는 자의 선동으로 무장 폭도들이 의회에까지 난입하는 지경에 오게 되었는지, 그 기저 질환을 파악하기 위한 작업의 결과물이다.”(5쪽) 즉 소위 ‘잡놈’들이 창궐하게 된 까닭에는 바탕이 되는 ‘기저 질환’이 있었으며, ‘잡놈’들의 창궐은 그에 따른 증상이라는 의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잡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간형이 유독 번창하는 사회가 어떤 형태인지 고찰한다. 그리고 나아가 건전한 시민들이 ‘잡놈’들의 지배에 저항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지배하는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비전과 논거를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내용을 크게 5부로 나누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부 약탈형 지배계층의 창궐에서는 자본이 군림하는 세상에서 극도로 자본 친화적인 탐욕형 인간들이 성공하고 지배하는 양상으로 시작해 비인간적 자본 중심 체제의 작동 방식을 탐구한다.

    2부 카키스토크라시 개관에서는 이 책의 제목을 설명하고 그 이해에 있어서 고찰되어야 할 개념과 함께 대표적인 역사 인물들을 살펴본다.

    3부 잡놈의 탄생에서는 최악의 인간에 의한 지배의 표본인 트럼프에 대한 인물 탐구와 그런 유형의 인간들을 움직이는 의식구조를 천착한다.

    4부 소수 권력과 이념의 품계에서는 질 나쁜 소수가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사회적, 정치적 양상과 이념의 역학 관계를 고찰한다.

    5부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에서는 형편없는 인간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상식적인 세계관을 영위하는 시민들이 견지해야 할 가치들과 자세는 어떤 것들인지, 그리고 그들의 지배에 저항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사고의 전환 이야기를 다룬다.

    바이든의 시대, 이제 세상은 안전한가

    지난 11월 3일 치러진 미 대선은 조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라고 하는 부패한 지도자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의 결과일까? 숫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때 얻었던 약 6300만 표를 1천만 표 가까이 뛰어넘는 7422만 표를 얻었다. 바이든 후보와의 득표율 차이는 조 바이든 51.3%, 트럼프 46.8%로 4.5%p 차이에 불과했다. 수치만 놓고 봤을 때 지난 4년간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 국민의 수는 오히려 더 불어난 것이다. 바이든 당선자는 다가오는 1월 20일 취임하지만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국민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트럼프를 기다리고 있다.

    저자는 서늘하게 장담한다. “영원한 제국이란 없고, 강대국은 언젠가 몰락하게 되어 있다. 트럼프가 재집권에 실패했고 ‘정상인’ 조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그가 취임한 후에 미국이 정상 국가의 모습을 쉽게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145쪽)

    또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은 “1980년대부터 본격 시행된 신자유주의 정책과 그것이 낳은 사회 기풍이 가져온 필연적 귀결”(8쪽)이라고 말하면서, 제2의 트럼프의 등장 혹은 트럼프 본인의 재선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임을 시사한다.

    분명 심상치 않은 징조들이 보인다.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들이 나서서 트럼프의 인품을 비판하고, 능력 부족과 비리 행적을 지적해도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모든 것이 ‘조작되었다’라고 맞받아친다. 다시 4년이 흐른 뒤에 이들 중 얼마가 마음을 바꿀까? 트럼프의 등장이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고 말하는 저자의 판단은 여기서 기인한다. “오바마에서 트럼프로 바뀌면서 정말 삽시간에 세상이 뒤집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는 병 자체가 아니라 병의 두드러진 증상일 뿐이다. 미국이 앓고 있는 병은 오랜 시간에 걸쳐 복합적으로 진행되고 심화된 것이다.”(150쪽) 질주하던 한 명의 ‘특출난 잡놈’을 치웠으니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란 생각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란 얘기다.

    우리가 만든 잡놈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카키스토크라시’라는 단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카키스토크라시란 가장 어리석고 자격 없고 부도덕한 지도자들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를 말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흔히 국가의 실정 양상을 말하는 도둑정치Kleptocracy나 바보들에 의한 정치를 뜻하는 이디오크라시idiocracy라는 표현이 다수 있지만, 카키스토크라시는 가장 악덕하고 비양심적인, 즉 최악의 인간들이 주도권을 잡은 정치라는 뜻으로 무능함과 부정부패, 심지어 통치자의 품격까지를 총망라하는 표현이다.”(89쪽)

    여기서 유의해야 하는 지점은 ‘카키스토크라시’의 기본 전제가 ‘민주주의’에 있다는 점이다. 즉 “가장 어리석고 자격 없고 부도덕한 지도자”들을 뽑은 것은 다름 아닌 유권자들의 손이다. 『워싱턴포스트』의 제니퍼 루빈은 “괴물 같은 인간은 온 마을이 키운다”라고 말했다. 어떤 악덕한 인물이 우리 사회를 이끄는 자리에 섰다는 것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크고 작은 악에 침묵하고, 체념하고, 때로는 동참하고 심지어 동경하면서 그럴 만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한몫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만연한 ‘트럼피즘’의 저변에는 바로 “의식이 잠든, 책임감도 공동체 의식도 없이 자아도취의 진공 속에서 떠다니는 ‘잡놈화’된 대중”(200쪽)이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부를 향한 욕망이 우리 모두를 지배하는 가운데 기업들은 구매력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고, 젊은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스스로의 ‘몸값’을 고민한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의 흐름에 제동을 거는 이들은 놀랄 정도로 적다. 벨기에의 임상심리학자 파울 페르하에허는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에서 신자유주의가 사회 전반의 윤리와 가치 체계, 그리고 구성원들의 성품까지 괴물로 만들어버린다고 진단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관에서 공익이란 허울 좋은 불합리일 뿐이며, 가난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 된다. 이 세계관에 순응하는 이들은 자신들 모두가 선택권을 가지고 있으며 자유롭고 공평하게 경쟁한다고 믿지만 “그들이 말하는 자유란 사실 사회 구성원의 책임을 부정하는 유아적 권리의 주장”(227쪽)에 지나지 않는다. 실시간으로 악화되어 가는 경제와 절망적인 빈부 격차를 직접 체험하면서 저자는 인생의 팔 할을 보낸 미국이란 나라가 쇠망의 길을 걷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밝힌다. 또, 뿌리 깊은 인종주의, 진보와 보수 간의 골 깊은 불화, 자본주의가 낳은 절망적인 빈부 격차 등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 몰락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 예견한다.

    미국은 한국의 미래여야 하는가

    저자는 이런 비관적인 전망이 비단 미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경고한다. “지금 한국이 그 어느 때보다 걱정되는 것은 한국의 운명에 가히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국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 한국은 미국의 물질주의와 피상적 풍요, 겉멋, 그것의 토양을 제공하는 이른바 하이퍼 자본주의(hyper-capitalism), 다시 말해 미국이 지금 사양길에 접어들게 된 가장 큰 원인들만 가져갔다.”(350쪽)

    저자는 현재 미국이 존망의 기로에 서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러면서 지금이 바로 “한국의 마지막 기회”(352쪽)라고 말한다. 많은 면에서 한국은 미국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듯한 양상을 보인다. 기업들의 독주는 “지위 불안증을 조장하고 정서적으로 망가진 소비지상주의를 정착”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으며, 미국과 마찬가지로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능력주의 사회는 현대인들을 낮은 자존감, 경멸과 분노, 조바심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무한 경쟁과 소비의 전쟁터로 내몰”(352쪽)고 있다. 이런 풍조를 방치하고 치켜세운 끝에 작금의 위기로 내몰린 미국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 나라에 남은 시간 역시 길지 않다고 말하면서, 저자는 강력한 어조로 지금이 바로 “질 나쁜 지배층이 사회를 낭떠러지로 몰아가기 전에 다수의 상식 있는 국민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352쪽)할 때라고 말한다.

    잡놈들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시장은 현대인에게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가치관을 주입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의 품성과 인격은 가치를 잃고, 교육 기관들은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인적 자본’을 양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런 세태야말로 ‘카키스토크라시’가 모습을 드러낸 근본적인 이유다. 저자는 기본적으로는 이런 풍조가 문제를 안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나라에서 매일 수백만, 수천만 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 결정권은 국민의 웰빙과 공동선이 목표인 민주주의적이 절차가 아니라 오로지 이윤만을 생각하는,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은 모리배들의 손 안에 있다.”(281쪽) 자본주의가 곧 민주주의라는 등식이 허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인간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혼동하는 인식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간 사회의 본질적 문제를 고민하는 학문은 갈수록 희귀해지고, 책임감, 연대감, 공익, 희생과 헌신을 배우는 학문은 주변화되어 힘을 잃고 있다. 낭떠러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꺾기 위해서는 혁신적으로 사고방식을 바꾸고, 저항할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 저자는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경제지상주의가 주창하는 ‘실용적 가치’에 상관없이 견고한 지식을 기반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이끌어내 현명한 시민을 만드는”(326쪽) 인문학 교육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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