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빈 이후의 코빈주의③
    비관주의와 현실추수주의를 넘어서자
    [적녹칼럼] 영국 문제만이 아닌 우리의 과제이기도
        2021년 01월 22일 11: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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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빈 이후의 코빈주의② 신노동당의 퇴행과 좌파의 새 흐름

    반코빈 연합과 언론의 집중포화

    코빈의 권력이 최소한 노동당 내부에서는 강력한 토대를 갖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자 1980년대 벤-리빙스턴-스카길에 가해졌던 언론의 집중포화가 재개되었다. 제레미 코빈의 평화주의(특히 핵무기 반대)는 외교적 무능이었고,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한 연대 표현은 반대유대주의(팔레스타인 지지=무슬림=테러리스트=반유대주의)였다. 1980년 ‘정신나간 좌파’의 악몽이 소환되었다. 명확한 근거 제시 없는 비난이 난무했다. 언론이 코빈에 대해서 얼마나 편파적인지를 분석하는 학술논문이 나올 정도였다.

    브렉시트를 선택한 선거결과에 떠밀려 사퇴한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의 뒤를 이은 보수당 총리 테레사 메이(Theresa May)는 웨스트민스트의 의원들을 만족시킬 만한 브렉시트 협상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노동당은 잔류와 탈퇴로 분열되어 있었고 자유민주당은 다시 국민투표를 쟈추진할 정도로 잔류의 입장이 강했다. 스코틀랜트민족당은 중도사민주의 노선을 견지하면서 브렉시트에 반대하고 있었다. 보수당도 분열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메이의 최후 선택은 의회해산과 조기총선이었다.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보수당과 노동당 지지의 격차가 컸기 때문이었다. 메이는 압승을 자신했다.

    선거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노동당이 30석을 더하며 보수당의 과반의석을 저지한 것이다. 노동당의 강령집 제목은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하여’(For the Many, not the Few)였다. 브렉시트라 민감한 사안에 거리를 두면서 긴축 반대와 공적 소유 확대를 전면에 내세웠다. 20-30대 젊은 층의 지지는 압도적이었다.

    선거결과에 당황한 것은 보수당과 보수당의 승리를 예상했던 언론과 전문가뿐이 아니었다. 노동당 주류는 패닉상태에 빠졌다. 이제 코빈은 당내의 지지기반을 당 바깥으로 확장시켰고 당의 좌파적 전환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꼴이 되어 버렸다. 코빈을 몰아내는 것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더구나 새로 웨스트민스터에 들어온 젊은 신예 정치인들 중 당상수가 사회주의적 지향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보수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구에서 출마함으로써 당권파의 견제를 덜 받을 수 있었다. 정체되어 있었던 당내 사회주의 분파인 ‘사회주의 캠페인 그룹’(Socialist Campaign Group)에 레베카 롱-베일리(Rebecca Long-Bailey) 같은 새로운 피가 수혈되었다.

    불안정한 승리와 정치적 도전

    그러나 코빈의 승리는 불안정했다. 코빈에게 브렉시트는 다루기 어려운 시한폭탄이었고 그동안 만만한 상대로 언제든 제거할 수 있다고 과소평가했던 코빈의 저력을 확인한 언론과 기성정치권은 이전보다 치밀하고 강도 높은 ‘코빈 죽이기’ 캠페인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코빈을 반유대주의로 몰아가는 조직적 캠페인이 가장 강력했다. 노동당 내 좌파 유대인 인사들의 반론(코빈의 정치적 입장은 일관되게 평화주의와 반인종주의였다.)에도 불구하고 극우적 랍비(rabbi)들을 중심으로 근거 없는 중상모략이 노골적으로 전개되었다. 메이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되는 보리스 존슨의 훨씬 더 심각한 이슬람 혐오 발언은 정치적 쟁점이 되지 않았지만 코빈은 ‘하지 않은 말’과 ‘하지 않은 일’ 때문에 인신공격을 받아야 했다.

    테레사 메이는 브렉시트를 해결하지 못하고 총리직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차기 총리는 이미 극우적인 방향으로 선회한 보수당의 당원 투표로 선출된다. 형식적으로 보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민주주의 제도가 얼마나 비민주적인지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그렇게 극우 인종주의자 존슨은 총리가 된다. 존슨은 협상 없는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파였다. 소란스러운 2019년의 여름을 지나 웨스트민스터는 또다시 의회해산과 조기총선을 선택한다. 운명의 날은 그해 12월 12일로 정해졌다.

    코빈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정치적 입지를 넓힐 수 있었던 2017년 선거와는 완전히 다른 판이 만들어졌다. 사회경제적 조건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적 지형과 반코빈 캠페인의 양상은 달라져 있었다.

    2017년 노동당은 국민투표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영국노동계급의 이해를 최대한 대변하는 협상을 목표로 내세웠다. 브렉시트를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지 않고 국내 경제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19년에는 노동당 당권파, 심지어는 코빈의 정치적 동지인 존 맥도넬(John McDonnell)조차도 흔들렸다. 브렉시트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는 자유민주당에게 표를 잠식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제2국민투표가 당론으로 정해졌다. 그림자내각의 브렉시트 담당 장관이었던 케어 스태머(Keir Starmer)와 당부대표였던 톰 왓슨(Tom Watson)이 이런 입장을 대변했다. 브렉시트는 노동당이 내세운 녹색산업혁명(green industrial revolution)을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었다.

    노동당의 텃밭인 예전 산업지역의 지역구 대다수가 국민투표에서 탈퇴를 선택했다. 2017년 선거에서는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으로 이들의 마음을 잡았지만 이제 노동당은 자신들의 선택과 상반되는 런던과 남부의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집단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노동당 (브렉시트) 탈퇴파에게 잔류파는 그런 존재였다. 한편으로 코빈에 대한 대대적인 인식공격은 그가 가지는 정치적 진실성에 흠집을 냈고, 노동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국민투표의 결과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정치인이 공약은 지킬 수 있겠냐는 회의감이 커졌다.

    스태머의 ‘코빈’ 지우기

    2019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60석을 잃었다. 노동당 당권파들의 조직적 캠페인의 1단계가 완성된 것이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코빈이 쉽게 제거될 수 있는 대상이었다면 이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코빈주의는 사회적 토대를 가지고 있었고 노동당 내에 기반도 강력했다. 거대노조인 Unite, 코빈 지지 조직인 모멘텀(Momentum)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었다. 노동당 당권파들이 ‘정상’으로 생각하는 헌정주의를 신봉하는 수권정당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이 토대마저도 잘라버려야 했다. 키녹-스미스-블레어가 그랬던 것처럼 ‘좌파 죽이기’ 캠페인을 전개해야만 했다.

    코빈 죽이기의 1단계에서 2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했다. 2020년 10월 블레어 정권에서 만든 공적 기관인 ‘평등과 인권 위원회’(Equality and Human Rights Commission, EHRC)가 코빈과 대표 주변의 인사들이 부적절한 반유대주의 사건들에 연루되었으며 이에 대한 사후 처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당은 이를 근거로 코빈의 당원권을 정지시켰다. 새로운 당대표인 케어 스태머는 이런 결정을 즉각 승인했다. 코빈은 바로 혐의를 부인하고 EHRC가 사태를 과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EHRC는 무슬림단체에서 제기한 극우 정치인들의 혐오발언에 대해서는 혐의없음을 확인했었다.)

    스태머는 당의 공식기구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논의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 당원권 정지 등의 강경조치를 취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노조와 당원들은 스태머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지구당 차원에서 비상회의가 소집되었고 당의 결정에 반대하는 결의가 속속 채택되었다. 그리고 노동당의 공식기구인 전국집행위원회(National Executive Committee, NEC)에서 스태머의 결정을 뒤집었다. 강력한 당권 도전자였던 레베카 롱-베일리를 동석했던 한 언론인의 시오니즘 비판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반유대주의라는 혐의로)로 그림자 내각에서 쫓아낸 스태머였다. 당권파들은 아직도 코빈주의를 출현시켰던 사회적 조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코빈(왼쪽)과 스태머

    코빈 이후의 코빈주의?

    노동당 좌파 노선에 대한 사회적 지지는 총선의 패배로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20-30대 청년층의 정치적 지향은 분명 ‘좌파적’이다. 50대 이상은 대처에서 블레어를 거쳐 현재의 보수당 정부에 이르기까지 추진된 공적 복지 축소를 자산-금융소득으로 대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가졌던 세대다. 부동산 가격의 유지와 금융시장의 활성화는 이들의 경제적 이해와 일치한다. 하지만 20-30대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없다. 금융화된 자본주의에서 그들이 기대할 것은 끝없는 노동과 좌절일 뿐이다. 세대 간의 정치적 격차는 세대 문제가 아닌 경제적-계급적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2019년 총선 후에도 노동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물, 전기, 에너지, 철도에 대한 국유화와 공적 소유는 여전히 높은 지지를 받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존슨은 뻔뻔하게 ‘녹색산업혁명’이라는 2019년 노동당 선거강령의 핵심을 도용하고 있다. 공적 지원을 확장하고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환풍기를 대량으로 제작하도록 하는 개입까지 불사하고 있다. 공적 개입의 확대와 민주적 계획이 실현 가능한 정치적 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2019년 총선 이전보다 더 절실하게 코빈주의적 사회주의 노선이 요구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런데 노동당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역행해서 코빈 이전의 노동당으로 회귀하려 하고 있다. 아마도 코빈의 출당에 반기를 드는 지구당과 노조를 분열을 획책한다고 비난하고 좌파에게 그 책임을 돌리려 할 것이다. 아주 구태의연한 시나리오다.

    이런 조건에서 노동당은 팬데믹 이후의 강화된 공적 소유와 급진화된 민주주의를 구현할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팬데믹 이후는 또 다시 긴축이라는 이름의 책임전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를 부양한다는 이름으로 자본에 대한 금융적 지원은 확대되겠지만 그 비용은 대중에게 전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길은 경기회복-성장추구를 정책의 맨 꼭대기에 위치시킬 것이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기후변화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대한 대응은 계속 늦춰질 수밖에 없다.

    좌파이론가들은 입을 모아 노조의 재건, 사회운동의 네트워크 구축, 청년층의 정치적 조직화를 주문한다.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통해 체험된 현 체제의 한계들에서 발생하는 저항을 정치적 힘으로 모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미래는 열려 있다고.

    코빈 이후의 코빈주의는 영국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코빈주의는 기후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팬데믹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결정적 역사국면의 상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불만은 쌓이고 있다.

    금융위기와 팬데믹 위기가 10년을 사이에 두고 발생함으로써 대중은 자본과 국가의 계급적으로 편향된 개입에 대해 학습할 기회를 가졌다.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라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점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팬데믹은 시장의 원리는 재난에 대처하기는커녕 또 다른 팬데믹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을 극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사회는 경쟁력 있는 개인들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시민들의 공동체가 있을 때에만 지탱될 수 있다는 것도 체험으로 입증되고 있다. 경제의 목적은 이윤의 확장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의 충족에 맞추어져야 한다는 당위도 확인되었다. 오직 기존의 사회질서 안에서 기득권을 가진 자들, 자기들이 정치를 책임지고 경제를 운영하는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만이 엄연한 사실을 애써 부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전문지식은 ‘현재’를 관리하는데 맞추어 있을 뿐 그 미래를 기획하고 상상하는 데는 무능하다.

    이제 코빈 이후의 코빈주의는 노동당을 넘어선 정치운동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코빈’이라는 이름을 떼고 ‘민주적인 사회주의’에 걸맞는 새로운 이름을 찾는 운동으로 발전해야 하지 않을까?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비관주의와 현실에 순응하는 현실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코빈주의는 비관주의와 현실주의를 넘어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천으로 예시하는 운동과 실험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연대의 이름이 되어야 한다.<끝>

    필자소개
    교수. 제주대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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