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진보정당에게 북한은 무엇인가
    By
        2006년 11월 02일 06:19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한동안 이 땅의 진보세력에게 북한은 우리가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현존하는 대안사회 중의 하나였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자본주의국가들은 국내외 자본 분파간의 경쟁과 갈등 그리고 노자모순으로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불황에 빠져 노동자와 빈민의 삶은 어려웠고 미래도 불확실했다.

    특히 한국의 자본주의는 전형적인 종속자본주의의 한 유형으로 노자모순과 민족모순이 중첩되어 나타남에 따라 노동자와 빈민의 삶은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보다 더욱 고통스러웠고 미래는 더욱 없어 보였다.

    한때 모델처럼 보였던 북한

       
     ▲ 생전의 김일성 주석 (사진=연합뉴스)
     

    반면 소련과 중,동유럽 그리고 북한을 포함한 사회주의국가들도 1970년대 후반부터 저성장단계에 돌입하기는 했으나 198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그리고 노동자와 빈민의 삶은 자본주의사회에서처럼 그렇게 비참하지도 않았고 미래가 어두운 것도 아니었다.

    이 뿐만 아니다. 북한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상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은 각종 외교전술을 통해 대부분 얻어내는,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약소국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진보진영에게 있어서 북한은 부담이 아니라 오히려 지향할만한 가치가 있는 살아 있는 모델 중의 하나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고, 설령 북한체제와 관련한 발언이나 행동 때문에 육체는 고통을 당해도 마음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또한 북한에 대해서 비판적인 진보인사라 할지라도 사회주의라는 큰 틀 내에서의 비판이었고, 더구나 북한의 ‘민족주의적인’ 외교전술에 대해서는 지지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는 진보진영에게 있어서 북한은 이전과 같은 의미와 위상을 갖지도 않고 가질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지형이 급변했고 북한의 내부사정도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 허물기를 계기로 소련과 중,동유럽의 사회주의가 일시에 붕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같이 모두 진보진영에서 강력히 배격했던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시장경제체로 전환하여 지금 이 시점에서는 완벽한 서구식 자본주의사회로 변모했다.

    협소한 우리 사회의 이념지형

    소련이나 중,동유럽과는 다른 유형의 사회주의노선을 취하고 있던 중국도 1970년대 말부터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하고 외국자본까지 받아들이기 시작하여 지금 이 시점에는 정치분야를 제외한 모든 분야는 서구식 체제로 바뀌었다.

    이와 같은 사회주의권의 격변으로 말미암아 지금 이 시점 우리 사회에서는 한때 진보진영에 의해 ‘외형상으로는 민주주의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부르조아 독재지배체제’로 간주되었던 자유민주주의와 ‘가진 자의 지배와 착취에 봉사하는’ 사적 소유권과 자유시장에 기반을 자본주의가 유일한 또는 적어도 지배적인 제도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사회주의는 단어조차 사용하기 어렵게 되었고, 심지어는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는 물론 미국 민주당 루즈벨트 대통령 시기의 뉴딜정책과 유사한 정책조차도 보수진영으로부터 좌파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 지금 이 시대의 우리 사회 이념지형이다.

    주5일근무제 입법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 벌어졌을 때, ‘공당’인 한나라당에서조차 사회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공공연히 비난한 것을 기억해 보면, 지금 우리 사회의 이념지형이 얼마나 협소한지를 잘 알 수 있다.

    진보진영에서 대안경제체제로서의 북한모델을 두둔하거나 추구할 수 없게 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잘 알고 있듯이, 북한의 경우, 중국보다 조금 늦은 시기인 1980년대 초반부터 자본주의적 요소와 외국자본을 도입하려고 했으나 이러한 노력이 아직까지는 별로 성공하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금까지 기본골격은 전통적인 북한식인 사회주의모델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 대안에서 완전히 제외됐다

    일부 지역이나 산업부문에 한국자본과 일부 외국자본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중요 산업은 여전히 국가의 소유와 통제 하에 놓여 있다. (중국과는 달리 북한은 소국이기 때문에 중요 산업에 대한 통제권을 외국자본에게 넘겨주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은 ‘자주’와 ‘주체’를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전통적인 동맹국들이 모두 개방형 자본주의로 전환한 이후 무역조차 여의치 않은데다가 때때로 덮치는 가뭄이나 홍수 등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민생경제는 최악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이것이 개방형 자본주의국가들로 뒤덮인 지구촌에서 ‘소국 자립경제 모델’을 10년 이상 유지해 온 북한의 지금 경제상황이다.

    이제는 진보진영에게 있어서 북한의 경제모델은 대안에서 완전히 제외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대안경제체제로서의 북한이기 때문에 북한의 정책이나 행동을 지지하거나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이처럼, 1980년대 말까지 북한이 진보진영에게 가졌던 의미 중에서 대안의 사회경제체제라는 의미는 사라졌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진보진영에게 남아 있는 북한의 위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백 년의 역사와 같은 언어, 혈육을 나눈 한민족의 반이 살고 있는 곳이며, 언젠가는 다시 하나로 합쳐야 하는 반쪽이라는 의미 즉 민족주의의 실현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있어서는 어쩌면 보수나 진보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보수진영에서는 북한정권의 (사실상) 무조건 항복에 의한 통합과 한국식 자본주의에 입각한 그러나 미국의 후견에 의존하는 통일한국의 건설을 주장하는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남북협의에 의한 통합과 한국식 자본주의도 아니고 북한식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사회경제체제’에 입각한 따라서 미국 등 강대국의 간섭을 배격하는 통일한국의 건설을 주장한다는 점일 것이다.

    북한 자주외교노선 참고는 할만 하지만

       
      ▲ 지난 부산 아시아드 대회 당시 응원단으로 방문한 만경봉호의 북측 응원단과 환영하는 남측 시민들  
     

    따라서 진보진영에게 있어서 북한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로 통합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서로 협의하고 협력해야할 대상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단순한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도 한국정부를 통하지 않은 북한과의 어떠한 교류나 협의 또는 협력도 국가보안법의 처벌대상이기 때문이다.

    진보진영과 북한의 합법적인 협의와 협력은 진보진영이 한국정부를 담당하게 될 때까지 미룰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진보진영과 북한이 이심전심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 행동한다고 기대할 수도 없고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을 무조건 추종할 수도 없다. 여기에 진보진영의 어려움이 있다.

    북한의 경제모델이 더 이상 대안으로서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지금의 시점에서도 진보진영이 북한정권에게서 ‘배우거나 기대할’ 만한 것은 있다. 그것은 아마도 자주외교노선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아무리 자주외교노선에 능하고 이에 입각해서 특정의 정책이나 행동을 한다 하더라도 진보진영이 그것을 무조건 지지하거나 추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이 함께 나누고 있는 공감대가 있고, 국민의 지배적인 의사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고, 또한 그럴 때만이 우리 사회에서 진보적인 국가권력이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핵문제에 대한 태도나 대응방식을 둘러싸고 진보진영의 다양한 그룹 간에 그리고 대표적인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내부 정파 간에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보수언론에서는 이러한 갈등을 전통적인 운동권 노선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하지만, 그 기저에는 진보진영과 북한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그럴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만든 책임이 주변 강대국 특히 미국에게도 분명히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는 이유도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다음 세 가지 점만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무력 의존 배제, 비핵화 등 반드시 지켜져야

    하나는 자칫 우리 민족 전체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을 방식은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악을 물리치기 위해 악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냉혹한 국제사회에서는 불가피하다고 할 수도 있고 더구나 상대방이나 다른 나라들이 ‘불법’으로 악을 행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고통이나 피해를 가져다 줄 수도 있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도 현명하지도 않다고 본다. 약자가 잘못된 방식으로 대응하면 명분마저 상실하는 법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 내 다양한 집단이 존재하고 또한 그들 간에 입장차가 많기도 하고 크기도 하지만, 모두가 합의하는 것 중의 하나는 한반도의 비핵화일 것이다.

    일부 극단적인 보수집단을 제외한 보수진영에서도 핵문제에 관한 한 신중한데, 진보진영이 모두 합의하는 문제에서 벗어나는 행동과 입장을 취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진보적인 국가권력의 건설 없이는 한반도 평화체제구축과 궁극적인 통합은 어렵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듯, 진보진영은 우리 사회의 여건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방금 지적했듯이, 진보진영을 국가권력으로 밀어주는 힘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의 국민, 좁게는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와 다른 진보정당으로부터 나온다.

    같은 논리에서 북한정권의 정책과 그 추진력은 북한주민 또는 지배집단으로부터 나올 것이다. 따라서 북한정권은 지금까지 우리 진보진영이 어떤 태도를 취하든 자기 식대로 밀고 나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것에 공감한다면,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이 취해야할 행동지침은 과거에 형성된 (그래서 그 당시에는 충분히 설득력을 가졌으나 지금은 도그마로 형해화 되어버린) 이념이나 노선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내부에서 작동하는 논리와 국민의 마음속에 담겨 있는 진보적 욕구에 보다 충실히 천착하면서 국내외 정세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공감하리라 믿는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