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재해법 본회의 통과
    정의당 "크게 후퇴", 기권
    5인미만 사업장 적용제외는 민주당 내부도 비판...곳곳에 허점과 구멍
        2021년 01월 08일 03: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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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는 8일 본회의를 열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 제정안을 재석 266명 중 찬성 187표, 반대 44표, 기권 58표로 의결했다.

    이 법안을 제정하기 위해 산재 유가족들, 노동계와 함께 단식농성 등 끝까지 노력했던 정의당은 법안 내용이 애초 취지에서 크게 후퇴했다며 표결에서 기권했다.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는 토론에 나와 “양당 합의라는 미명 아래 허점 투성이인 법안이 제출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5인 미만 사업장 적용제외, 50인 미만 적용유예 등 최종적으로 통과된 법안이 애초의 취지에서 크게 후퇴했고, 거대 양당의 조정과정에서 산업안전의무에 경영자의 책임 문제의 허술함, 발주자의 적용 제외 등 허점들이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국회가 중대재해에 관한 사각지대를 확대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법사위는 7일 소위를 거쳐 8일 전체회의를 열고 전날 법안심사소위가 의결한 중대재해법을 통과시켰다.

    이날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 문턱을 넘은 중대재해법은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50인 미만 사업장 2년 유예 ▲10인 이하 소상공인과 1000㎡ 미만 다중이용업소 적용 제외(중대시민재해) ▲처벌 수위 하향 조정 및 벌금 하한선 삭제 ▲발주처·공무원 처벌 삭제 ▲처벌대상에 안전보건업무 담당 이사 신설 ▲인과관계 추정조항 삭제 ▲일터괴롭힘 삭제 등 국회국민청원에서 10만인 동의를 얻은 청원안과 정의당 안에서 크게 후퇴한 내용이 담겼다.

    이 중 5인 미만 사업장 적용제외는 노동계와 유족은 물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크게 반발하는 조항 중 하나다. 산업재해 사망자 2천여명 중 약 400명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다. 전체 사업장 중 5인 미만 사업장은 40%에 달한다. 특히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중대재해에 대한 법적 보호에서까지 배제되는 것이라 ‘사각지대 확대’, ‘이중 차별’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소위 위원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5인 미만 사업장의 열악한 현실을 정말 감안한다고 치더라도 업종과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모두으로 배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대통령령에 위임이라도 해서 일부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는 빼더라도 적용이 필요한 사업장은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동근 민주당 의원도 “유예기간을 두는 것도 아니고 (법 적용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해버리는 것은 대단히 문제”라며 “결과적으로 (법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축소가 돼서 입법 효과가 제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급여와 고용안정성을 비교해도 대기업 노동자에 비해 좋지 않은데 위험까지도 양극화하는 것은 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특히 (5인 미만 사업장 적용제외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험이 집중되거나 사업장 쪼개기 악용 등에 대해서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 또한 “산안법 적용 실태가 미흡해서 중대재해법이 논의되는 것인데, 근로기준법에서 배제되는 5인 미만 사업장을 중대재해법에서도 배제하면 입법 정책상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5인 미만 사업장 적용제외를 제안한 정부를 비판했다.

    일부 의원들이 5인 미만 사업장 적용제외 조항에 대해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양당의 간사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동·시민사회·학계 등은 5인 미만 사업장 적용제외를 비롯해 크게 후퇴한 중대재해법을 재논의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사업장 쪼개기 등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권리찾기 유니온은 “서류상으로 사업장을 쪼개어 위장하는 수법 외에도 5인이 넘으면 4대보험을 미신고해 5인미만으로 행세하는 사업장 수는 통계조차 없다. 거의 모든 업종으로 퍼지고 있는 중에 최근에는 대기업들까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고발당한다”며 “사업주들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하는 못된 관행을 국회가 나서 대놓고 확대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는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으로 비로소 국회 문턱을 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을 ‘가짜 5인미만 사업장 확산법’으로 변질시키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금속노조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처벌 조항은 죄다 낮추고, 완화하고, 제외하다 보니 이 법으로 과연 처벌받는 기업주가 나오기나 할지 의문”이라며 “이런 법으로는 일터가 전쟁터고 노동이 죽음이 되는 참담한 현실을 바꿀 수 없다. 지금 당장 법사위 논의안을 폐기하고 재심의하라”고 밝혔다.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도 성명을 내고 “법사위가 만들어냈다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결코 수용할 수 없는 법안”이라며 “노동자와 시민 10만이 더 이상의 산업재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한, 그 취지가 온전히 담긴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며 “누더기가 되어버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을 즉각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본회의를 통과도 하기 전에 ‘보완 입법’ 등을 거론하고 있다. 정치권 안팎의 법안 후퇴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법사위를 통과한 중대재해법이) 노동계, 경제계 양측의 반발을 받고 있고, 당내·외로 의견도 분분하다”며 “부족하지만 중대재해를 예방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새로운 출발로 삼고 앞으로 보완개선해가길 바란다. 어려운 법안을 여야 합의로 마련했다는데 일단 의미두고 싶다”고 말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5인 미만 사업장 사업주를 중대재해법 적용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현행 산안법으로도 5인 미만 사업장은 사업주가 직접 처벌대상이 되는 현실을 고려했다”고 법안의 후퇴 논란에 대해 해명하면서 “중대재해법 제정이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끝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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