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우병 공포, 양지머리를 조심하라
    미국사람들 다먹는데 왜 그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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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31일 04: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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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끔 우리나라 공무원들을 보면 이 사람들의 월급이 과연 내 얄량한 소득에서도 꼬박꼬박 떼어간 세금에서 나오는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원칙적으로 시장형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 나라의 최대의 스테이크홀더(stakeholder)라고 부르는 이해당사자는 바로 국민이고, 국민들의 주권은 사실상 세금에서 나온다.

    주주민주주의라고 우파들이 받들어 모시는 최근의 흐름에 따르면 국민들이 바로 정부의 주주들인 셈이다. 투표권은 성인에 대해서 1인 1표주의에 의해서 움직인다. 우파들은 가끔 이런 것에 대해서 불만을 표한다. 돈 가진 대로 투표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울분을 토하기도 한다.

    난 재산권에 따른, 그러니까 완전한 주주회사식 투표운용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는다. 단, 벌어들인 돈에 대해서 그만큼 더 많은 세금을 내면 오히려 나은 균형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세금이 없어서 뭘 못한다고 하는 상황에서 한 번 해보는 생각이다.

    앞으로 벌어질 쇠고기 파동은 대한민국이라는 ‘날치기’ 주식회사가 사실상의 주주들에게 ‘엿 먹으라’고 한 행동이 그 본질이다.

    어차피 대다수의 주주들은 FTA를 통해서 힘들어지면 힘들어지지 나아질 것이 없는 상황에서 일부 ‘고액 주주’들을 위해서 대부분의 주주들에게 광우병 소고기를 먹으면서 고통을 분담해달라고 하는 건데, 그러니까 이건 정부가 국민들에게 ‘엿 먹어라’하는 사건이다.

    한우가 충분히 싸거나 호주산 소고기의 공급이 충분하다면 현명한 국민들에게도 대안이 있기 때문에 “무식한 국민들 엿먹어라”하는 사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일반 소비자들이 현 상황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사다가 밥상에 올릴 일은 없으므로 결국에는 시중에서 한 달 이상을 떠돌다가 미국산 쌀이 그런 것처럼 도매로 넘어가 식당으로 팔려갈 것이다. 국민들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한 달 후 갈비살이나 냉면에 고명으로 올라온 한 점의 고기를 음미하면서 미국산 소고기를 간만에 다시 접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식품유통 시장은 대개 그렇게 움직인다.

    2. 공무원들의 안전 의식, 해도 너무한다

    가끔 고위직 인사들이나 아니면 정부 언저리에서 매우 고급 정보를 다루면서 직접 개입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소위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광우병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미국 국민들도 다 그거 먹는데, 왜 한국만 난리냐!”

    두 가지 점에서 이 인식은 좀 이상한데, 첫째는 미국의 식품시장은 ‘하이엔드 마켓’이라고 하는 시장의 분화가 종료된 시장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뭣도 모르고 ‘웰빙’이라고 들고 들어온 개념이 사실상 미국의 하이엔드 마켓의 상징 음어 같은 것이다.

    먹는 음식에 ‘정크 푸드’라는 말을 붙여준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겠는가? 다 미국 사람들이고, 미국은 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정크 푸드 시장과 하이엔드 마켓이 완전히 분화했다. 그래서 모든 미국 국민들이 다 광우병 소고기를 먹는 건 아니다.

    식품안전만 놓고 이야기하면 우리나라의 평균적 국민들이 접하는 음식이 미국의 하위층이 먹는 음식 보다는 훨씬 안전하다.

    ‘탱가루’라고 부르는 오렌지 쥬스향 가루가 예전에는 우리나라에도 있었는데,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소비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하이엔드와 로우엔드 마켓이 심각하게 분화되지 않아서, 고급 식품이라도 별로 안전하지는 않은 대신에 불안한 식품이라고 해도 미국처럼 완전히 로우엔드로 꼰두박질하지는 않은 상태이다.

    이런 우리나라에서 탱가루는 거의 소비되지 않지만 미국은 여전히 yellow 5, yellow 6가 식용색소로 들어가 있고, BHA라고 하는 보존료가 들어간 탱가루를 소비한다. 황색5호와 황색6호에 방부제를 넣은 것을 물에 타서 시원하다고 마시게 되는 나라가 미국이다. 아이들에게 이 정도로 험악한 음식을 먹이지는 않을 정도까지는 온 게 우리나라의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하이엔드와 로우엔드가 아직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 소고기가 들어오면 결국 전 국민이 먹게 된다. 가난해도 먹고, 부자라도 먹고, 어른들도 먹고, 아이들도 먹게 된다. 그게 우리나라 식품 산업의 특징이기는 하다. 설렁탕 안 먹는 국민 있나?

    두 번째 문제는… 더 심각하다.

    3. 식습관이 다르다

    생산방식의 차이는 차치하고라도, 우리나라는 미국과 소고기를 먹는 조리법과 식습관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의 요리문화상 소고기를 직접 먹기 보다는 소위 ‘소고기 베이스’라고 부르는 육수를 우려내는 것이 소고기 요리의 기본이다. 가깝게는 설렁탕, 냉면 같은 것에서부터 고속도로 휴게소의 고급식품인 무슨무슨 국밥 같은 것들이 다 이렇게 만드는 음식이다.

    그래서 뼈와 고기를 우려내서 먹는 게 일반적인 우리나라의 소고기 소비 패턴이다. 광우병 원인물질은 단백질의 형태이기 때문에 익혀도 파괴되지 않고, 아주 약간만 소비해도 몸에 전이되고, 일단 전이되면 잠복 기간이 10년에서 20년 된다. 한 숟가락만 먹어도 치명적인 위험이 있다는 말이고, 일단 발병하면 현재로서는 사망하는 수밖에 없다.

    뼈와 고기를 삶아서 국물을 내는 우리나라의 식습관과 고기를 나이프로 잘라 먹는 미국의 식습관은 분명히 다르다. 물론 미국에도 고기를 온통 갈아서 먹는 음식이 있기는 하다. 바로 햄버거가 그렇다. 미국 광우병 논쟁에서 햄버거가 도마에 오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면서 인간승리를 보여준 오프라 윈프리가 어느 방송에서 자신은 이제 햄버거를 먹지 않겠다고 했다가, 텍사스 목장주협회로부터 1,200만달러 소송에 걸려 있다. 물경 120억원짜리 소송이다. 말 한 마디의 댓가가 너무 크다. 그만큼 예민한 사건이다.

    우리의 식습관은 햄버거보다 더 소고기를 복합적으로 소비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 보다 광우병의 위험은 수 십배 높다. 광우병을 끓이면 죽는 대장균과 비슷한 걸로 생각하는 우리나라 오피니언 리더들의 세상 인식이 답답하기만 하다.

    3. 연골과 골격근육

    미국과 우리나라 사이에서 지금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는 문제는 소위 ‘뼈조각’이란 것이 무엇이냐는 말인데, 이게 생각보다는 어려운 얘기이다. 요번에 수입되는 물량에 포함된 갈비살은 ‘뼈를 제거한 살코기’라는 범주에 들어가 있는데, 손으로 고기를 써는 것이 아니라 전기톱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뼈를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카길 같은 곳에서 약간의 뼈가 묻어가는 것은 봐달라고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연골과 골격근육이라는 것에서 나온다. 

       
      ▲ 영국 정부의 SRM 제거 지침서 중 허리부위 등뼈(요추) 부분. 횡돌기의 일부와 극돌기의 일부가 남아 있다. 그러나 158명의 인간광우병 사망자가 발생한 영국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 제거 정책이 반드시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 (출처 : http://www.food.gov.uk)  
    (자료제공 :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소고기의 다양한 부위에는 연골과 골격근육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런 건 손으로 일일이 제거하지 않으면 제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뼈를 제거한 살코기”라고 하더라도 어떤 기준으로 어떤 처리방법으로 만족시킬 것인가라는 미국의 대량생산 시스템에서 기계톱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안전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 양지머리(brisket). 양지머리나 흉골은 연골과 뼈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뼈를 제거한 살코기라고 할 수 없다.  

    그럼 우리나라의 국거리용 살코기 중에서 가장 고급에 속하는 양지머리는 어떨까? 물론 당연히 안전하지 않다. 양지머리를 고아서 만드는 음식은 냉면을 비롯해서 설날 먹는 떡국, 추석날 먹는 토란국까지, 상당히 고급 식품에 해당한다. 고명으로 올라가는 손으로 쭉 찟은 소고기가 바로 양지머리이다.

    정부의 해석으로는 양지머리는 살코기에 해당하는데, 이게 영국의 기준으로는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데에 사태의 어려움이 있다.

    4. 도대체 이게 정부냐?

    정부측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 대해서 ‘관리 가능한 위험’이라는 표현을 종종 쓴다. 사실 식품관리에서 ‘제로 리스크’는 환경관리에서 ‘제로 에미션(zero emission)’만큼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는 어차피 ‘무위험’이 불가능하므로 ‘일정한 위험’을 받아들이자는 것은 애당초 말이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드문 광우병 미발생국가이기 때문이다. 아니, 아무런 위험이 없는 소위 ‘제로 리스크’인 상태에서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무작위로 떨어지는 위험을 던져놓고도 ‘관리 가능한 위험’이라는 말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원래 관리 가능한 위험이라는 말은 워낙 지금 문제가 심각한데 제어불가능한 상태를 그나마 제어라도 가능한 상태로 전환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런데 무위험을 ‘관리 가능한 위험’으로 바꾸자는 기가 막히고도 엄청난 말을 하면서, 마치 “이 정도는 우리가 다 대비를 했어요”라는 식으로 앙징맞고 귀엽게 얘기하는 정부측 전문가들 보면서 정말 깜찍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광우병이 얼마나 위험하고 그 특징은 어떤 것인지를 총리도 모르고, 농림부 장관도 제대로 모른다. 자신들도 떡국도 먹고, 설렁탕도 먹는 사람들인데, 알고도 이러기는 어렵다. 물론 이 사람들은 한우, 아니지 ‘브랜드 한우’만을 사용하는 한정식집에서만 식사를 해서 이렇게 둔하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제로 위험’을 ‘관리가능한 위험’으로 바꾸어 놓고도 “국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이 정부를 보면서 “이게 도대체 정부야, 깡패야?”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나? 누나야, 누나!)

    5.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불특정 위험의 공격

    미안한 얘기지만 미국산 소고기가 특정 집으로 판매되어서 어느 집 식탁에 올라가면 그게 ‘관리 가능한 위험’에 해당한다. 안된 이야기지만, 사실 광우병에 걸린 소가 1% 미만일 것이기 때문에 위험노출확률은 몇 가구로 축소된다. 원래 그게 관리 가능한 위험의 개념이다. 없앨 수 없다면 위험 확산을 최소화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게 민간 소비가 안 되어서 식당으로 팔려나가면 이제 확률은 떨어지지만, 커버리지(coverage)라고 불리는 확산 범위는 ‘소고기 베이스’로 된 음식을 먹었던 모든 사람으로 확 커진다.

    만약 현재 수입된 미국산 소고기가 민간 시장에서 유통에 실패해서 정부 조달망으로 들어가면 이 경우에는 공무원과 정부 조달시장에서 급식을 먹는 사람들로 확산 범위가 좁혀진다. 그 대신 발병 확률은 민간 확산의 경우보다는 높아진다.

    6개월 이상 민간소비도 어렵고, 정부 조달도 안해서 생산된 제품에 아주 조금 소고기를 첨가하는, 그야말로 2차 가공식품인 대량생산의 원료로 공장으로 납품되면 사태는 아주 머리 아파진다. 소고기 라면을 비롯해서 가난하거나 청소년들이 주로 먹는 식품의 공업원료로 처리되는 경우의 일이다.

    황당한가? 물론 이건 ‘관리 가능한 위험’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모두 광우병에 걸린다는 말은 아니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평균을 내어보면 발병률과 사망률은 의료보험 관리대상인 어느 질병보다 낮은 수준이 유지될 것이다.

    6. 나의 관찰

    이 과정을 1년 정도 관찰하면서 내가 느낀 점은 한 가지이다. 사람들은 일본은 극우파 정부라고 욕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래도 정부와 비슷했고, 일본 국민들은 우리나라 국민보다 3배 이상의 세금을 부담해서 그런지 일본 국민들을 소액주주와 비슷한 사람들로 대하는 것 같다. 세 살 미만의 살코기도 안전하지 않다고 의혹을 제기한 것은 일본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국민을 삼성 주주총회장에서 끌려나간 김상조 교수가 대변하는 소액주주처럼 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면 자신에게 절대로 표를 주지 않는 국민들에게 상당히 화가 나 있는 사람인 것 같아 보였다. 이해할 수는 있다. 그도 사람이기 때문에 화가 나있는데 “국민을 모신다”고 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모시라고 하는게 아니라 그저 세금 내는 정도 그리고 투표하는 정도의 스테이크홀더 정도라도 일반 국민 혹은 대중 소비자들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놀부가 흥부의 화초장을 들쳐업고 가져가는 심정이라면 이 상황이 이해가 된다. 이성을 가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미국산 소고기나 쳐드샘” 해서는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수입한 미국산 소고기까지는 힘들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해법은 딱 두 가지이다.

    정부가 세금으로 구매하고 폐기하는 게 제일 좋다. 물론 이건 일본 정부쯤 되는 ‘국민의 정부’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두 번째는 별 수 없이, 소비자들이 돈을 모아 이걸 구매해서 폐기하는 경우이다.

    일단 소비시장으로 풀리기 시작하면 소비자들이 미국산 소고기로 만든 ‘소고기 베이스’를 눈으로 알아볼 방법은 없기 때문에, 전국이 해법을 찾을 때까지 수 년간 공포 특집이 된다. 설렁탕과 냉면이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면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1년 365일 납량 스페셜의 국가이다.

    민주노동당이 도대체 어디에 썼는지 모르면서도 매달 뽑아가는 내 당비를 모아서 1차 소고기 수입분을 구매, 폐기한다고 하면 난 정부에 낸 세금만큼 얄량한 내 주머니에서 갹출할 생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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