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운동은 공공 확대 운동이다
        2006년 10월 31일 03: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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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년 전 이건희 회장이 북경에서 한 “한국의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말은 옳다. 한국의 공공 분야는 양과 질에서 주요 국가 중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욱일승천한 한국에서 유독 공공 분야만이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공공을 키워 자본의 돈벌이로 내주는 국가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매출 최상위 대기업 – 에스케이 텔레콤, 포항제철, 두산중공업,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은 애초 잘 나가던 국영기업을 민간자본에 헐값으로 넘겨준 것이다. 이는 영국․프랑스․독일 등이 일반 산업 분야에서조차도 상당수의 공기업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공공 분야도 국민서비스 성격보다는 재벌 중심 성장주의 경제모델의 부속물로서 확립된 것이다. 1970년대에 만들어진 사회간접자본과 중학교까지의 공교육시스템은 재벌들에게 생산․유통 시스템과 저임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서였고, 1990년대 말부터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는 사회복지비는 재벌의 노동유연화 전략을 공공 지출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사회공공성이 확립되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노조운동이나 시민운동과 같은 대중운동이 외국과는 달리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종속적 파트너로 기능하는 데 많은 힘을 소모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힘을 얻은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자유화 정책은 경제사회 영역으로까지 침투하고 있고, 노동자와 시민의 사회권은 발전 지체 상태에 빠져 있다.

       
    ▲ 무상의료 서명운동 중인 민주노동당 당원들
     

    때때로 노조운동과 시민운동이 공공을 위협하는 위치에 서기도 한다. 자사에의 국유지 불하나 규제 완화를 요구하거나, 자사와 경쟁 중인 공공 분야의 억제를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주장이 ‘고용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내걸리는 경우가 그러하다. 거시적 총론에 있어서의 시민운동은 노동조합운동보다 훨씬 건강하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시민단체들이 공공사업의 외주화나 민영화를 통해 수익을 올리며, ‘사회적 기업’ 등으로 포장하는 행태는 대단히 옳지 않다.

    국민여론조사 때마다 수위를 차지하는 ‘민생’에는 두 가지 욕구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고성장을 통한 성장 과실에 대한 욕구이고, 또 하나는 보편적 공공서비스의 부족에 의한 갈구다. 앞에 방법이 바람직하거나 가능하지 않고, 잠시의 성장세 역시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사실은 이미 입증되었다.

    그렇다면 보편적 공공서비스와 그를 위한 공공영역의 확대가 우리 시대 최고의 과제라 할 수 있고, ‘민생’을 앞세우는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의 사업 역시 그곳으로 집중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부패 방지와 투명성 제고가 선행되어야 한다. 공공서비스를 원하는 한편 납세자로서 공공영역의 운영이 미덥지 않은 것이 일반적인 국민 인식이다. 공공성이 가장 발전해 있다는 핀란드 등의 북유럽 나라들과 아시아 국가 중 예외적으로 공공적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싱가폴이 투명성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을 차지하는 것은 투명성이 공공성의 전제임을 보여준다.

    둘째, 국민들에게 좋은 경험을 주며 공공서비스 지지세력을 모아야 한다. 삼성의료원과 보건소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어느 누구도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공공서비스 = 질 나쁘고 조악한 것’이라는 공식이 경험을 통해 증명돼온 탓이다. 어느 정도 발전해 있고 많은 수혜계층을 가지고 있는 것이 건강보험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여, 공공 사회서비스를 지지하는 초동세력을 형성해야 한다.

    셋째, 국민 욕구가 큰 미래의제를 선점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추세와 정책 집행자들의 계획에 입각해 보면, 앞으로 사회적 논란이 끊이지 않을 의제는 국민연금이다. 한편으로는 국민연금 개악 시도에, 또 한편으로는 아예 국민연금을 없애자는 여론에 맞서려면 어지간한 정책 논리로는 어림도 없다.

    대학교육비의 공공 기여도 폭발력이 큰 의제다. 1인당 국민소득과 지원제도 미비를 감안하면 한국의 대학등록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게다가 80%나 되는 대학진학률로 인해 지불능력 없는 저소득층에게까지 대학교육비 부담이 지워지고 있는 현실은 불 옆의 화약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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