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한 리더십 없이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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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31일 01: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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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정당의 실존적 위기 상황

    민주노동당 안팎에서 위기를 말하고 대안을 촉구하는 소리가 크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란은 뭔가 새로운 출발의 계기로 작용하기보다, 그간 보이지 않게 심화된 패배의식의 확산을 더 자극하는 것으로 보인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분당하자”는 주장은 이제 공공연해졌다. 사회운동 중심의 보다 폭넓은 “통일전선운동으로 회귀”를 말하는 논리도 확대되고 있다. 이런 민주노동당의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대체 이들에게 정당이란 무엇이었나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왜 정당을 만들려 했을까?

    사적 이익보다 진보적 대의를 추구하고, 그러니 파벌끼리 나눠먹기 할 리 없고, 민중적 대의에 헌신하고자 하니 권력정치 역시 있을 수 없다는 식으로 기성 정당들과의 차이를 강조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 이런 주장을 계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진보가 정당이 되면 얼마나 다를 것으로 생각했을까? 진보가 정당이 되고, 진보가 집권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진보니 개혁이니 하는 것은 둘째 문제이고, 2012년 집권프로젝트니 하는 것은 아마도 더 나중 문제일 것이다. 우선 진보정당의 실존적 의미부터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당면한 위기의 성격부터가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정파로 인한 문제 때문인가? 이원화된 대표체제를 제도화한 것이 잘못인가? 지도부의 무능 때문에 문제인가? 아니면 애초부터 함께 하기 어려운 NL과 PD의 세계관 차이 때문인가?

    이런 문제들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면 “문제가 아닌 문제” 즉 잘못된 문제 설정 때문에 기인하는 혼란도 큰 것 같다.

    정당과 정치의 현실

    진보정당도 정당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에 들어오는 순간 피할 수 없는 제약과 딜레마를 갖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당은 여러 형태의 대표의 원리로 조직된다. 하지만 조직의 규모와 활용할 수 있는 권력자원이 커질수록 대표와 대표되는 자 사이의 불평등 관계는 증가한다. 활동가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인센티브의 제공 없이 무작정 확대될 수 없게 되며, 지위와 영향력을 추구하려는 욕구의 증가 역시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권력자원을 제도화하려 하지만, 제도화는 불가피하게 조직의 일상화, 형식화, 관료화를 동반하게 된다.

    당이 당원에 대해 책임지는 것과 지지자에 대해 책임지는 것 사이의 긴장과 충돌이 커지는 것도 불가피하다. 당원의 이익조차 동질적인 하나가 아니라 복수로 존재하며, 다수결의 원리는 늘 소수파의 불만과 반발을 낳고 정파적 세계관 사이의 격차는 줄어들기보다는 커진다. 파벌과 정파 사이의 갈등은 일상적이 되며, 이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권력정치와 타협, 거래의 필요성 역시 불가피하게 증가한다.

    현재의 이익과 미래의 이익 사이의 갈등도 크다.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의 바람직함과 현실에서의 자원 제약 사이의 격차는 언제나 존재하고, 이로 인해 당과 지도부의 불완전한 결정은 자주 논란에 휩싸이고 이로 인해 당원과 지지자는 미래에 대한 심리적 불안의 문제를 안게 된다.

    신화적 정치관을 넘어서

    그러나 이런 것들 때문에 정당으로는 안 된다고 말한다면 사실 진보정당의 미래는 없다.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들은 모두 정치의 세계가 본질로 하는 특징들이다. 따라서 정당이라는 조직을 통해 제도정치의 영역에 개입하는 순간 진보세력 역시 이러한 문제들은 피할 수 없다.

    정당은 그 조직적 딜레마 때문에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딜레마 때문에 다른 어떤 조직형태보다도 인간사회의 현실과 대면할 수 있었고, 여러 불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체제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정치조직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만큼 정당은 인간의 정치적 본성에 가까운 존재이며, 당연히 인간의 창조적 실천에 의해 나라마다 나름의 대안적 모델들을 발전시켜왔다. 진보정당이라 해서 이런 문제와 무관하게 진보적 이념과 가치만 강조해서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현실이 아니다.

    민주노동당 안팎의 논란들을 접하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보정당에 대한 규범적 평가 기준을 비현실적일 정도로 높게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정파도 없고, 권력정치도 없고, 음모도 없고, 거래도 없이 모든 사람이 한 마음으로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유사 종교적 정당조직을 꿈꾸는 사람도 많고, 뭔가 합리적으로 잘 짜여진 제도와 절차를 확립해 체계적이고 일사분란하게 일이 조직되는 정당조직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근본적으로 이런 정당은 실현될 수 없는 것이거니와 위험하기조차 하다. 현실 정당에 대한 이런 불만을 가장 효과적으로 조직해 성공한 것은 잘 알다시피 독일의 나찌당이었다.

    진보정당의 진정한 의미는 진보적 가치와 이념의 실현을 위해 정치와 권력을 선용하는 데 있는 것이지 권력 없는 정치의 환상을 사회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의 경험과 선진 이론 역시 참고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따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념과 현실을 양립시킬 수 있는 정당 모델의 형성에는 그에 상응하는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어떤 이상적 정당 모습을 염두에 두고 현실과의 격차 때문에 괴로워하기보다는, 문제를 보다 현실적으로 재정의 하는 것으로부터 사태를 개선해가는 것이 필요한 일이 아닌가 한다.

    정당을 ‘현대의 군주’라 칭했던 그람시는 진보정당이라면 “자신의 세계관에 따라 나름의 정치학과 윤리학”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2004년 4월 이후 적지 않은 기간의 경험을 통해 민주노동당이 정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어떤 진보가 있었는지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조직적 단결과 질서 있는 의사소통을 위해 어떤 실효성 있는 규율을 발전시켰는지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1세기 전 독일 사민당 지도자 빌헬름 리프크네히트는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를 당의 모토로 삼고 실천하고자 했다. 하지만 지난 기간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실천에서 이런 역동적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경험과 실천을 통해 진보하는 바가 적었던 것이 문제였지, 있어서는 안 되는 문제들이 갑자기 생겨서 위기를 맞은 것이 아니다.

       
     ▲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
     

    책임지는 지도부가 없다

    현상유지를 바라는 집단이야 현실을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족하지만 현실의 변화를 지향하는 진보세력의 눈은 불가피하게 미래에 두어지게 된다. 따라서 불확실한 미래를 말하며 대규모 집합행동을 이끌어야 하는데, 이로부터 파생되는 ‘확신의 딜레마’는 진보정당이 직면하는 가장 큰 도전이 된다. 거대한 정치의 세계에서 어떻게 미래와 진보를 위한 행동을 조직할 것인가?

    가장 모범적인 답안은 세계관 즉 이념의 조직화이지만,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누가 이념을 조직하고 그 책임을 질 것인가? 대중의 합리적 선택은 자신이 신뢰하는 정당과 지도자를 통해 세계와 정치를 이해하고 그 대안을 추구하는 것이지, 스스로 모든 정보와 이론을 습득하여 판단을 얻는 데 있지 않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당은 곧 국가의 통치권을 두고 경합하는 정치적 리더십의 조직적 표현과 같은 것이다. 응당 조직으로서의 정당 리더십의 발전은 곧 집합행동의 딜레마를 완화시키는 이념의 발전을 필요로 하고 자연스럽게 조직적 권위와 규율의 체계화가 발전해야 한다.

    그러나 그간 민주노동당은 활동가와 대중의 집단적 헌신을 이끌어갈 리더십의 조직적 체계를 발전시키기보다, 오히려 이를 억제하려는 경향이 강하지 않았다 싶다. 말로는 정치엘리트 개인보다 조직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는 개인도 조직도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것이 허용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정치에서 조직이란 폭군의 출현가능성을 감수하고도 인간이 사회를 조직하고 통합하기 위해 불가피한 방식으로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정치조직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작동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 핵심은 좋은 리더십을 구축하는 문제이다. 리더십의 체계가 가능해야 조직이 작동할 수 있으며, 그래야 민주적 통제라는 것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지금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물을 리더십이 애매한 데 있다. 정파의 문제가 두드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과 지도, 조직화의 유일한 채널이 정파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인 것이지, 정파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누가 지도부인가?

    만약 정파가 현실적으로 지도부로 기능한다면, 책임질 수 있는 위치로 나서야 할 것이다. 어떤 조직이든 민주적 원리를 위협하는 가장 큰 힘은 보이지 않는 권력이다. 그것은 대표와 책임이라는 민주적 통제의 그물에서 벗어나 있음에도 실제는 힘을 갖는 존재이다.

    바로 이러한 정당성의 취약함 때문에 정파는 늘 장막 뒤에서 움직이면서도 묘한 야합의 구조로 당의 공식기구를 약화시킨다.

    이원구조이든 3원구조이든, 누구든 공식적 차원의 당 지도부를 자임하고자 한다면 현재의 당내 결정구조가 갖는 ‘실제 문제’를 있는 그대로 문제로 제기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최소한 지도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체제로의 변화를 위한 논의를 조직해야 할 것이다. 합의가 어렵다면, 일부라도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 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현실에 맞는 대안적 정당모델을 앞장 서 추진하면서, 활동가와 당원 대중 그리고 지지자들의 헌신과 참여를 이끌어갈 수 있는 강한 리더십의 형성 없이, 현재의 민주노동당이 미래를 개척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상적인 결론이다.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아무도 책임 있는 논의를 조직하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민주노동당은 위기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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