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항공모함’ 논란,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②
    [국방칼럼] 해군 '몸집 불리기' 우려
        2020년 12월 28일 11: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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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 요약(링크) – 한국해군은 ‘경항공모함’ 도입의 표면적인 이유로 ‘북한의 위협’과 ‘해상교통로의 안전한 확보’를 내세우고 있으나 냉전 체제의 약화 이후 해군의 전력 증강은 ‘일본과의 갈등’에 영향을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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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군은 ‘한일간의 갈등’이라는 상황에 편승해 자군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해왔다. 실제로 해군은 1999년 주관한 학술회의 개최를 언론에 홍보하는 과정에서 해군력 증강을 위해 일본의 위협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려 한다는 의혹을 받은 전력이 있다. 우리 언론이 독도를 무대로 한 한일간의 가상해전을 다룰 경우에는 종종 우리측 7기동전단의 전력을 제외한 채 단순하게 한국의 1함대가 일본의 ‘3호위대군’에 전멸을 당할 것이라는 식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전력 증강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마무리짓기도 한다.

    군사전문매체 밀리터리워치매거진은 2019년 8월 한국의 LPX-II 건조 계획은 일본 겨냥한 것이라고 보도

    대양해군론의 두 번째 불쏘시개가 된 것은 ‘제주해군기지‘이다. 이 기지는 현재 7기동전단이 주둔하고 있고 최대 20여 척의 군함이 계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향후에 만들어질 기동함대의 모항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진해해군기지’는 ‘항공모함’이 정박할 수 없는 군항이지만 ‘제주해군기지’는 ‘부산해군기지’와 더불어 ‘핵추진항공모함’과 ‘핵추진잠수함’ 같은 초대형전투함의 정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략적 성격을 가진 기지이기도 하다.

    제주도는 서해와 남해를 가르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동중국해와 서태평양이 이어진다. 동쪽으로는 나가사키현 사세보에 위치한 일본의 ‘2호위대군’과 서북쪽으로는 산동성 청도에 주둔한 중국의 ‘북해함대’ 그리고 서남쪽 저장성 닝보(영파)에 있는 ‘동해함대’까지도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특히 제주도는 중국 군함의 태평양 진출로인 남방의 ‘이어도 해역’과 가까이 인접해 있기 때문에 만일 해군기지가 만들어진다면 1차적인 작전지역은 아무래도 이 해역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제주해군기지의 본격 추진을 기점으로 해서 이어도 인근에는 중국의 관공선과 군함의 출현이 대폭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자원의 보고이자 남방교통로상의 중요 길목인 이어도 수역을 중국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제주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도’는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던 제주 ‘강정해군기지’ 건설 추진에 귀중한 동력이 되었다. 2012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이어도’ 문제가 한중간의 ‘영토 문제’가 아니라 ‘해양 경계 미획정’에서 비롯된 사실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중국도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이를 재차 확인하며 논란을 가라앉히려 하였으나 국내 보수세력과 이에 편승한 정치권은 ‘이어도’에 대한 중국의 움직임을 ‘도발, 분쟁 유도’ 등의 영토주권 침해로 확대해석하며 ‘제주해군기지’건설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한국은 센카쿠열도(尖閣列島)에서의 갈등이 이어도(離於島)로 북상할 가능성을 경계해야만 한다.(조선일보 일본판)

    2002년 12월 해양수산부 중앙항만정책심의회에서 유보되었던 제주해군기지건설안이 2005년 4월 재추진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해군의 강한 의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군은 제주해군기지 대상지역을 화순항에서 위미리로, 그후에는 강정마을로 여러 차례 변경하였고 처음에는 기지가 아니라 단순한 부두에 불과할 뿐이라고 그 규모를 의도적으로 축소하려고 하는 등의 무리수를 둠으로써 추진과정에서 수많은 갈등과 불신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해군은 왜 이렇게 기지 건설에 절박하게 매달렸을까? 과연 국가안보 이외에 다른 이유는 없었던 것일까?

    평상시 한국해군은 NLL 경계, 어선 보호, 북한공작선 침투 저지 등의 방어적인 임무에 주력하고 있다. 유사시에도 주요보급로가 될 한일항로를 보호하고 해병대의 상륙작전을 지원하며 북한해군의 침투를 차단하는 등의 공세적이기보다는 간접지원의 성격을 띠는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해군은 이렇게 북한에 국한된 임무 수행만으로는 해군의 발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다. 잠수함사령부가 북한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순항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군이 미국이 포기한 ‘아스널쉽(Arsenal Ship)’을 참고하여 함대지미사일로 중무장한 ‘합동화력함’을 건조하려는 것도 바로 한국군의 역학관계 속에서 해군의 존재감을 드러내야만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군이 ‘방어형 구조’에서 ‘공세적 구조’로 전환해야만 조직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은 ‘대양해군’과 ‘제주해군기지’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로 꼽을 수 있다. 3개 해역사령부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참수리고속정’을 ‘검독수리고속정’으로, ‘울산급 호위함’과 ‘포항급 초계함’을 ‘신형호위함’으로 대체하여 전력이 증가한다 하더라도 이것으로 인해 해군의 조직체계에 큰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항공모함’, ‘이지스구축함’, ‘한국형 구축함(KDDX)’를 건조하면 차원이 달라진다. 이들 전투함들은 기존 전력의 대체가 아니라 신규 ‘전력소요’이기 때문에 새로운 부대의 창설이 불가피하다.

    ‘국방개혁2.0’에는 ‘이지스구축함 전력화와 연계하여 제7기동전단을 기동함대사령부로 확대개편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2018년 해군본부 국정감사에서 해군 관계자는 전투임무 수행을 중심으로 한 부대구조 개편을 위해 제1, 제2작전사령부 창설을 추진하겠다는 업무 보고를 하기도 했다. 기동함대사령부(추후 개편)과 항공사령부(추후 개편), 잠수함사령부를 별도로 관할하는 제2작전사령부를 창설한다면 중장급 1명(사령관), 소장급 3명(부사령관, 기동함대사령관, 항공사령관) 등의 장성T/O를 신규 확보할 수 있다. 해군이 새로운 함대를 바라는 또다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해군이 꿈꾸는 미래의 기동부대 모습은 항공모함전단임을 알 수 있다 (출처: 국방일보)

    2010년 ‘천안함 사건’이 터지면서 ‘대양해군론’의 한계가 드러났다. 이 사건은 남북관계가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해상교통로 확보’나 ‘해양자원 보호’와 같은 ‘전방위 국가이익’을 관철하고 ‘잠재적인 위협’에 대비하는 방향으로 해군의 전력구조를 전환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과제임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이명박 행정부 당시 논의되었던 기동함대는 ‘독도이어도함대’로 불렸는데 이는 기동함대의 작전범위를 한반도 주변의 ‘배타적 경제수역(Exclusive Economic Zone, EEZ)’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2017년 대선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독도이어도함대’를 창설하겠다는 국방공약도 이런 시각의 연장이다.

    그러나 ‘경항공모함’을 보유하겠다는 것은 결국 해군이 ‘배타적 경제수역(EEZ)’뿐만 아니라 ‘한국방공식별구역(Korea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KADIZ)’ 범위를 벗어난 지역에서 공군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자유롭게 작전을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해군과 같은 형태의 ‘Blue Water Navy(대양해군)’을 지향하는 것이다.

    국정감사가 끝난 후인 10월 28일 해군이 공동개최한 제19차 함상토론회의 발표내용을 보면 ‘경항공모함’ 건조를 지지하는 대양해군론자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국가정책으로서의 해양력 강화 방안’을 발표한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여러 차례에 걸쳐 한국해군이 베트남에 전략적 거점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창했던 인물이다. 그는 문재인 행정부의 ‘신남방정책’은 경제교류를 넘어서는 발언권을 가져야 하며 그런 측면에서 대양해군 육성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5월에 열린 ‘신남방정책 평가와 발전 방향’이라는 학술회의에서 나온 내용들은 한국정부의 ‘신남방정책’에 대해서 아세안은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고(김기주) 한국을 단순히 경제협력을 위한 파트너로서만 인식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조원득). 한편으로 여러 아세안 국가들이 한국의 신남방정책은 베트남 위주의 정책이라는 불만을 갖고 있음에도(이무철) 정작 베트남 엘리트들은 ‘미중 경쟁 하에서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아세안이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할 제3국’을 묻는 설문에서는 아세안국가 평균인 3%를 하회하는 1.3%만이 한국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구 교수의 주장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미-중 갈등 시대 한반도 주변 해양안보 상황과 한국 해군의 대응’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박사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전략’의 실행을 위해 만들어진 ‘쿼드(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QUAD)’에 한국이 적극 참여할 것과 한국해군이 이에 맞는 전략을 수립할 것을 주문했다. 이춘근 박사는 한미동맹의 바탕 위에서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대표적인 ‘친미반중론’자로 ‘쿼드플러스’ 참여에 부정적이며 ‘전략적 모호성( strategic ambiguity)’ 기조를 견지하려는 문재인 행정부와는 상반되는 견해를 갖고 있다.

    쿼드는 인도, 일본, 호주, 미국의 반중협의체로
    미국은 한국, 뉴질랜드, 베트남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한편 황희 국회 국방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는 국방위 소위원회에서 일본이 미일동맹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경항공모함’을 보유하는 만큼 우리도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보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는데 이는 우리의 국방력이 강해지면 미국의 우리 측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지고 그것이 한미동맹이 강화되는 것이라는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의 작년 발언과 그 맥을 같이한다. ‘한일간의 갈등’ 심화가 ‘한미동맹’의 강화라는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형국이다. 그러나 ‘경항공모함’과 같이 북한에 대응하는 수준을 과도하게 뛰어넘는 전력은 반드시 미국의 세계전략의 도구로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신원식 의원(국민의힘)의 예단은 문재인 행정부가 경청해 볼 가치가 있다.

    문재인 행정부의 잔여임기가 이제 1년 5개월에 불과한 만큼 막대한 금액의 국방예산이 투입될 이 사업에 대한 추진 여부는 차기 행정부로 넘겨야 하며 해군은 전력 증강을 ‘몸집 불리기’ 차원이 아니라 실재하는 위협요인을 해소하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정책당국자들은 한반도에 파견되는 미국 항공모함의 역할을 우리의 항공모함이 대신한다고 해서 군사주권이 확립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경항공모함’은 우리가 지금껏 사용하지 않았던 무기체계이므로 ‘과연 이것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는 한 무리한 사업 추진은 결국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끝)

    필자소개
    국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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