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잠을 깨우지 마라
    [기고] '생명을 살리고 해고를 멈추는 240 희망차량 행진' 진행
        2020년 12월 27일 08: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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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6일 오후 2시, 전국에서 ‘생명을 살리고 해고를 멈추는 240 희망차량 행진’이 있었습니다. 이날 오후 2시 희망차량 행진 참가자들이 대림동과 서강대 예수회 센터 그리고 효창공원 백범기념관에 집결하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지도위원 복직을 촉구하며 드라이브스루 행진을 했습니다.

    그러나 민의의 상징인 국회 앞은 행진을 막는 경찰병력에 의해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서울시와 경찰은 이날 집회를 금지 통보한 바 있었지만, 차량들이 무리 없이 지나가도록 하지 않고, 국회 방향으로 이동하는 차량들을 강제로 저지하면서 교통혼잡이 극에 달했습니다.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지도위원 복직을 촉구하는 희망차량들의 드라이브스루 행진이 경찰병력에 의해 제지 당하고 있다.

    희망차량들은 경찰병력의 저지에 경적을 울리며 항의하다가 국회 앞의 고 김용균 열사 어머니를 만나지도 못하고, 여의도를 우회해서 남영동 한진중공업 본사를 거쳐 서울고용노동청과 광화문을 지나 청와대를 향했습니다. 그러나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도 경찰병력들은 희망차량들을 저지해서 이 일대는 교통 정체 등으로 큰 혼잡이 있었습니다. 경찰병력은 차량에 부착한 스티커를 철거하지 않는 차량들을 견인차로 견인하기도 했습니다.

    서울고용노동청을 지난 희망차량들은 광화문을 지나 청와대 방향으로 진입하려고 했으나, 경찰병력의 강력한 저지에 광화문을 돌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지도위원 복직을 촉구하는 경적 시위를 했습니다.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단식 중인 송경동 시인과 정홍형 금속노조 부양지부 수석부지회장, 성미선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등이 희망차량을 응원하러 광화문 앞에 나왔다가 다시 청와대로 가려고 하는 것도 경찰병력이 제지했습니다. 이 때문에 청와대로 들어가는 광화문 입구는 시민들과 경찰병력의 대치가 있었습니다.

    광화문 앞 무기한 단식농성자들이 청와대로 다시 가려는 걸 경찰이 제지하자 거리에 누워 항의하고 있다.

    송경동 시인이 청와대로 가려는 것을 경찰병력이 제지하자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무기한 단식농성 참가자들은 경찰의 저지에 항의하며 광화문 거리에 누웠고, 경찰병력은 단식농성 참가자들을 고착했습니다. 이에 시민들의 항의와 저항이 계속되었습니다. 오랜 대치 끝에 탈진한 단식농성 참가자들은 차량을 이용해서 청와대 방향으로 이동할 수가 있었습니다.

    청와대 앞에서는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농성장에서 얼음같이 차가운 서리를 피하기 위해 판초우의를 씌우려 하자, 경찰병력은 이마저도 ‘지붕’이란 개념으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농성장에서 건축법이 적용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판초우의는 노숙농성자들이 덮고 자는 것으로 해야만 했습니다.

    여명이 채 밝아오기도 전인 검붉은 새벽 6시가 되자 경찰병력들은 잠이 든 두 사람을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왜 6시에 일어나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청와대 공식 기상이 6시인지 말입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경찰병력의 행위에 잠이 깊이 들었던 송경동 시인은 힘든 목소리로 “시인은 잠을 자는 꿈속에서도 시를 쓴다”라며 “시인의 잠을 깨우지 마라”라고 일갈했습니다. 예술가의 잠은 그냥 잠이 아니라 창작의 잠이었던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나 앉아서 눈을 비비며 잠꼬대인 듯한 송경동 시인의 말은 그냥 웃을 수만은 없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지난밤의 광화문 거리에서 경찰병력의 저지에 분노하며 남은 기력을 모두 쏟았습니다. 그런 이유였을까요. 송경동 시인은 크게 화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낮춰 조곤조곤하게 말했지만, 사람들에게는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무기한 단식과 노숙농성 참가자들을 두고 청와대를 나오면서 “시인의 잠을 깨우지 말라”라는 시인의 목소리가 부산으로 오는 내내 마치 이명처럼 귀속에서 ‘윙윙’ 울렸습니다.

    경찰병력이 새벽 6시 잠을 깨우자 송경동 시인이 잠이 덜깬 모습으로 “시인의 잠을 깨우지 마라” 하고 있다.

    청와대 앞 무기한 단식농성 참가자들이 아침 인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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