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고로 죽은 사람은
    누군가의 사랑하는 사람!
    [그림책] 『엄마, 달려요』(대만 산업재해피해지협회 글/시금치)
        2020년 12월 27일 10: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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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다 죽는 사람이 코로나로 죽는 사람보다 두 배 이상 많은 나라

    대한민국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산재보험 가입 노동자 가운데 사망자는 2020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2020년 12월 23일 현재 코로나로 인한 누적 사망자는 739명이라고 합니다. 산재 사망자 수가 작년도 통계이기는 하지만 올해 코로나 사망자 수보다 두 배가 넘고 거의 세 배에 가깝습니다.

    지난 23년 동안 한국은 OECD 산재 사망자수 1위를 21회나 기록했다고 합니다.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수를 비교해 보면 더욱 놀랍습니다. 2018년 자료를 기준으로 한국은 11.8명으로 네덜란드 0.6명에 비해 19배 이상 높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다 죽을 확률은 네덜란드에서보다 19배나 더 높은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산업재해 사망자 수를 줄일 수 있는 분명한 방법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기업살인법>입니다. 영국은 2007년 <기업살인법>을 도입하여 산재 사망자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 영국에서는 기업이 주의 의무를 위반하여 노동자가 사망하면 이를 범죄로 규정하고 상한 없는 벌금을 기업에 부과합니다.

    아빠는 천사가 되었어요!

    공사 현장입니다. 노란 안전모가 바닥에 떨어져 있습니다. 누군가 쓰러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달려오고 병원으로 옮겨 갑니다.

    “나는 아빠를 보았어요. 병원에 누운 아빠는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았어요. 엄마는 아빠가 다시 깨어나지 못한다고 했어요. 하늘나라로 날아가 천사가 되었대요.”

    -본문 중에서

    그날 이후 엄마가 조금씩 이상해집니다. 마치 엄마 머리 위로 검은 먹구름이 생긴 것 같습니다. 집에는 손님들이 많이 옵니다. 엄마는 예전과 달리 웃지를 않습니다. 웃기는커녕 자꾸만 울고 또 웁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엄마는 한 입도 먹지 않습니다. 걱정스런 얼굴로 책상 위에 쌓인 종이들만 들여다봅니다.

    한 가정에 어느 날 갑자기 아빠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불행이 닥친 것입니다. 어린 주인공과 엄마는 이 엄청난 고난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요? 또 어떻게 해야 엄마가 예전처럼 웃게 될까요? 이러다가 엄마마저 건강을 해치지는 않을까요? 주인공 꼬마의 마음처럼 보는 이의 마음도 조마조마한 그림책, 『엄마, 달려요』입니다.

    고발이 아니다, 감동이다!

    표지에는 당연히 작가 이름이 보입니다. 글/대만 산업재해피해자협회. 그 동안 단체 이름으로 만들어진 어떤 책도 감동이 없었기에 아무 기대 없이 그림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제발 재미있기를, 부디 아름답기를, 반드시 감동적이기를 소망하면서 말입니다. 산업재해피해자협회라는 단체의 진실하고도 간절한 바람이 예술로 승화되기를 기도하면서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겉보기에는 그냥 꼬마가 들려주는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어느 날 산업재해로 배우자를 잃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아냅니다. 그림책에서 다룬 한 사람의 절망과 분노와 슬픔은 어린이의 눈으로 보고 이야기한 덕분에 아주 쉽게 전달됩니다. 더불어 모든 독자에게 진심어린 감동과 치유의 힘을 전해줍니다.

    그림을 그린 천루이추 작가는 아련하고 유머러스한 꼬마 주인공의 감정을 자유롭고 따뜻하게 표현해냅니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엄마의 절망과 슬픔과 분노를 담아내야하는 부담스런 숙제가 있었습니다.

    작가는 아빠의 사고 이후 엄마의 머리 위에 먹구름이 생겼다는 꼬마 주인공의 생각을 따라갑니다. 천루이추 작가는 이 먹구름을 매개로 꼬마 주인공의 순수한 마음과 엄마의 슬픈 마음을 안타깝고도 아름답게 이어줍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주인공인 고양이를 통해 가족의 상처를 어루만져 줍니다.

    오늘 사고로 죽은 사람은 숫자가 아니라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림책 『엄마, 달려요』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들의 슬픔과 절망과 분노와 치유와 용기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이 그림책은 산업재해를 방관하는 기업을 고발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 그림책은 생명의 소중함, 가족의 가치,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한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보편적인 삶의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책이 생명을 경시하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제도와 문화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위험한 환경에서 누군가를 일하게 하는 것은 분명히 사회적 타살입니다. 사람보다 차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 또한 예비 살인입니다.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것도 예비 살인입니다. 사람보다 권력을 우선시하는 것, 사람보다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살인을 불러올 것입니다. <기업살인법>의 제정을 통해 해마다 수천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음에도 이를 가로막는 사람들은 예비살인자입니다.

    오늘도 대한민국의 여러 일터에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섯 명 또는 여섯 명의 숫자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아빠이고 엄마이고 아들이고 딸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입니다. 가슴 아픈 사고를 소재로 가족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그림책, 『엄마, 달려요』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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