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당이 부활시킨 '패거리 정치'
    By
        2006년 10월 30일 04:26 오후

    Print Friendly

    민주노동당은 제도 안에 존재하는 진보정치세력이다. 물론 이것이 민주노동당이 거기에 안주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제도 밖의 목소리를 멀리하고 배제하는 것은 정당으로서 자기 자신의 대표성, 존재기반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보수정당들은 그처럼 대중을 소외시키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질문만큼이나 너무도 식상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그들은 거대 자본 등 기득 세력이 주도하는 기존의 사회관계들을 옹호하는 정당들이기 때문이다.

    보수정당, 목표와 지지자 사이의 분열

    물론 그들도 선거 때가 다가오면 대중의 표를 얻기 위해 한 표를 호소하지만, 그것이 끝나는 순간부터 “나 몰라”라는 태도를 보인다. 선거 때를 빼면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대중의 관심은 거추장스럽다. 왜 그런가? 골프도 마음대로 치지 못하지, 어디 술집에 가서 마음에 드는 여인들과 스텝 맞추는데도 눈치 보아야 하지, 신경 쓰이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그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설사 운이 나빠 언론에 포착되고 대중의 비판에 직면하더라도 크게 두려울 게 없다. 항상 그렇듯이 아니라고 버티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잠시 쉬다가 대중의 기억이 무뎌질 때 쯤 다시 나오면 되기 때문이다.

    당의 입장에서도 이 모든 과정을 여유 있게 지켜본 후, 최악의 경우 또 다른 인물을 선거후보명단에 올리면 그만이기에 그것을 그냥 ‘사생활’로 치부하면서 커다랗게 문제 삼지 않는다. 다만 주의사항이 있다면 선거 직전에만 걸리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행태가 가능한 것은 흔히 말하듯 공인으로서의 그들 정치인들, 정당들이 도덕불감증에 걸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근본적이고도 객관적인 이유는 따로 있는데, 그것은 이들 정당의 존재 목표와 지지자 사이에 존재하는 좁힐 수 없는 분열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자본과 기득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면서도 그들과 긴장, 갈등 관계에 있는 ‘우매한 대중’에게 한 표를 호소해야 하는, 이 내키지 않는 역설적 상황의 존재 말이다.

    진보정당,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일성 추구

    그렇다면 진보정당은 어떤가. 진보정당은 노동자, 농민, 사회적 소수자의 입장에서 기존의 억압적, 비대칭적 사회관계들을 재편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위의 수준에서 보자면, 진보정당에게는 자신의 존재 이유와 정치적 지지자 사이에 분열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현실의 수준에서 재해석해 보면 그 간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진보정당의 또 다른 이름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일성’을 추구하는 민주정당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구조에서는 그 누군가가 사고를 쳐도 어디 숨을 데도, 도망갈 구멍도 없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이유와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당원, 의원의 실수가 정당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보수정당들에게서 나타나는 ‘지켜보자는 식의 관용 혹은 사면’이 쉽지 않은 것도 이러한 구조에서 비롯된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진보, 민주주의라는 이름이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저 인간 진보정치인 맞아, 민주노동당 진보정당 확실해?”라는 비판을 접할 때, 그것이 단순한 비판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물며 당원, 의원의 경우가 이런데, 당의 공식기구가 당의 기조에 어긋나는 결정을 한다면, 더 나아가 그 결정이 당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면 그 심각성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정체성을 훼손시킨 당내 논쟁

    최근 북한의 핵실험 문제를 둘러싸고 민주노동당 제6차 중앙위원회는 ‘한반도 평화실현을 위한 특별결의문’ 채택을 부결시키고 ‘수정동의안’을 채택하여 당원은 물론, 민주노동당에 우호적인 세력들로부터 심각한 질타를 받았다.

       
     ▲ 10월 15일 열린 민주노동당 제 6차 중앙위원회 (사진 = 판갈이)
     

    당 정책위원회 의장 또한 이와 유사한 행태를 보여 내부의 심각한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고 보도되었다. 물론 뒤이은 최고위원회의 결정과 당의 ‘한반도 비핵화와 반전평화결의 대회’를 통해 이러한 국면은 어느 정도 진정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긴장감이 완전히 해소된 것 같지는 않다.

    그렇기에 향후 이와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노출된 문제점을 다시 직시해 보는 것도 그리 무익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첫째, 이번 사태는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심각히 훼손시켰다. 민주노동당은 반전평화, 한반도 비핵화를 옹호하는 진보정당인데, 중앙위원회의 결의, 정책위 의장의 인터뷰 내용은 북한 핵실험을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나아가 핵무기 보유를 정당화함으로써 당의 기조를 훼손시켰다.

    진보정치세력이 반전평화를 부르짖는 것은 그들이 원칙주의자이고 냉정한 국제정치 현실에 대해 나이브한 발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전쟁, 그를 위한 군비경쟁 등 모든 조치들이 노동자, 농민, 사회적 약자 등 대중의 삶 그 자체를 직접적인 담보로 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민주노동당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노무현 정권의 이라크 파병을 반대한 이유 또한 단지 미국의 이라크정책, 그에 동조한 노무현정권의 정치적 행태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이라크 민중의 삶을 고통의 나락으로 빠뜨리고 그들의 삶의 터전을 원초적으로 파괴하기 때문이다.

    진보정당들의 역사가 증명하듯 전쟁, 평화의 문제가 당의 명운을 좌우하는 핵심 사안이 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정당이 민중의 삶 자체를 담보로 하는 방침을 채택하거나 지지하는 것은 결국 그 자신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것이기에 그것은 당의 기조가 변경될 때나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이 핵용인 정책으로 돌아섰다는 결정을 접해 본 바 없는 당원, 우호적인 지지자들이 이번 사태를 접하면서 당혹스러움에 빠진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나아가 이번 사태는 그들에게 자긍심보다는 자괴감을 심어주었는데, 그 이유는 이번 사태로 인해 민주노동당은 평화를 외치는 보수정당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패거리’ 정치에 포위된 민주노동당

    둘째, 당내 민주주의의 훼손이다. 이번 사태는 좀 더 신중히 대응하였더라면 어느 정도 미연에 방지 할 수 있었음에도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또 다른 심각성이 있다. 중앙위원회 개최 이전에 정책위원회 소속의 연구원들은 당 중앙위원들 앞으로 보내는 호소문을 공개해 이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시킨 바 있다.

    당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정책위원회의 다수 연구원들이 사전에 이런 문제제기를 하였다는 것은 그 내용과 형식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이 문제가 얼마나 신중하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인가를 반증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것은 미리 잡혀진 회의 일정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의견수렴과 토론이 필요함을 함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당의 정체성과 연관된 이런 중요한 사안을 졸속으로 처리하고 핵심 당직자가 자기 개인의 생각을 당론인 것처럼 말함으로써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지금 민주노동당이 직면해 있는 문제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즉 이번 사태는 당 내부에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논의 및 결정기제, 리더십이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것이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정파’라는 이름으로 작동되고 있는 ‘패거리 정치’에 의해 당이 포위되어 있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당이 갈라서야 한다는 자조 섞인 소리까지 들리겠는가. 이로 인해 민주노동당의 당원과 우호적인 지지자들은 또 한번의 상처를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보수정치세력들조차 극복해야 한다고 외치는 ‘패거리 정치’를 진보정당의 이름으로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족 의식’이 사태의 발단이라면 심각한 문제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당의 정체성과 당내 민주주의를 훼손시킨 이 사태가 민족문제, 그리고 통일문제에 대한 당 내외의 상이한 인식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우려의 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이번 사태가 ‘같은 민족’이라는 동족의식에 의해 비롯된 것이었다면, 이것이야말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진보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치세력에게 민족주의, 국가주의는 용인의 대상이 아니라 해소, 극복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구화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반대하는 이유도 그 대상이 같은 민족인 북한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의 정책기조가 배외주의, 국가주의에 의해 추동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런 시각을 유지할 때만이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의 핵문제, 나아가 ‘인권문제’ 등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접근과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많은 역사가 보여주듯 민족주의는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다른 하나는 이번 사태가 한반도의 통일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일이 무엇인가. 그것이 민주주의, 평화, 인권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통일이 그러한 가치를 증진시키기보다 훼손시킨다면, 그것은 더 큰 아픔만을 남길 뿐이다.

    민주노동당, 시행착오 계속된다면 전망불투명

    한국전쟁 이후 오랜 세월을 반공규율사회에서 숨죽이며 살아왔으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역사를 모독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통일은 대중의 삶을 더욱 인간답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그 자체가 평화를 위협하는 조치들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루어야 할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민주노동당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정당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문제들이 되풀이된다면, 앞으로의 전망은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지금 민주노동당이 노출하고 있는 문제를 설명하는 핵심 열쇠 가운데 하나는 ‘정파환원론’이다. 모든 문제의 기원은 정파 사이의 갈등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이것이 가장 커다란 장애일 수 있다.

    그런데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정파 문제’를 이야기할 뿐, 그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민주노동당 안에 ‘그들만의 게임 룰’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일종의 당 내 거래(bargain)이다. 거기에서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피해자는 바로 노동자, 농민, 사회적 소수자 등 대중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의 미래는 바로 이런 구조의 해소 여부에 달려 있다. 대중이 열린우리당의 ‘무늬만의 개혁’에 싫증을 내듯 민주노동당 안에 존재하는 ‘정파문제’에 대해서도 이제 실증을 넘어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안의 정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한 가지이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싸우는 상대를 알긴 쉽지만, 왜 싸워야 하는지 아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지금 민주노동당은 싸워야 할 상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이유에 대해서는 더더욱 헤매고 있다.

    글의 모두에서 말한 대로 민주노동당이 보수정당과 다른 진보정당이라면 너무도 자명한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아야 할 때이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