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권 통합론 '백가쟁명', 속이 텅빈 거대 담론들
        2006년 10월 30일 01: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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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히 ‘통합론’의 백가쟁명이다. 이른바 범여권 통합을 위한 명분찾기의 일환이다. 주요 대권주자들이 이런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통합의 지형을 만들기 위한 사전포석이다. 통합 논의를 계기로 대권행보를 본격화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컨텐츠. 깃발은 들었는데 아직 내용이 모호하다.

    김근태 의장이 치켜든 깃발엔 ‘평화번영세력’의 이름이 붙는다. ‘평화번영세력’은 두 개의 날개를 갖고 있다.

    하나는 ‘한반도 평화’다. 이는 김 의장이 정치를 하는 본질적 이유라고 한다. 김 의장은 지난 26일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태산처럼 든든하게 한반도 평화를 지킬 세력을 한데 모으는 것"이라며 "모든 평화수호세력의 대결집을 힘차게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하나는 ‘뉴딜’이다. 지난 6월 당의장 취임과 함께 꺼내 든 대권용 카드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재벌의 투자를 확대하고 고용을 늘리겠다는 게 골자다. 김 의장은 "어떤 선입견도 앞세우지 않고 오직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번영과 새로운 성장을 이루는 길을 찾아 나설 것"이라고 했다.

    정동영 전 의장은 ‘신중도 통합론’을 치켜들었다.

    역시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다. 정 전 의장의 표현으론 "평화를 위한 경제, 경제를 위한 평화"다. 정 전 의장은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공기와 물에 해당하는 것은 평화와 경제"라며 "평화를 위한 경제, 경제를 위한 평화가 우리가 공통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이자 전략"이라고 했다. 그는 지속적인 긴장완화를 통한 평화구축과 남북교류확대를 통한 남북경제공동체의 구성을 제안한다.

    정 전 의장 역시 ‘먹고 사는 문제’를 강조한다.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것이 사회통합의 핵심요소이며 복지국가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그러나 추진 방법에서 김 의장과는 강조점이 조금 다르다. 이는 장차 무엇을 국가경제의 핵심 단위로 놓을 거냐는 문제와 관련 있다.

    김 의장이 ‘재벌 활용론’에 가깝다면, 정 전 의장은 중소기업의 역할을 보다 강조한다. 정 전 의장은 지난 9월말 귀국 메시지에서 "중산층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지름길"이라며 "정치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바로 중산층의 재창출에 있고 이를 위해 중소기업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소기업 문제는 나중에 다시 한번 본격적으로 짚어보도록 하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천정배 전 법무장관은 29일 ‘민생개혁세력통합론’을 제시했다. 이는 민생우선정치, 화합정치, 개혁정치 등 세 개의 기둥을 갖고 있다.

    ‘민생우선정치’는 "중산층과 서민의 민생우선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정치를 뜻한다. 천 전 장관은 교육과 일자리, 주거의 3대 민생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합정치’란 남북간, 동서간의 화해를 추구하는 정치다. ‘화합’의 기치아래 분단 체제와 남한 내 지역주의를 동시에 극복해야 한다는 논리다.

    ‘개혁정치’는 "일체의 기득권을 타파하고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는" 정치다. 천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의 부채와 자산을 모두 승계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개혁정치’는 현 정부의 많지 않은 자산 목록 가운데 하나다.

    그는 "민주화 이후에도 거대권력의 힘과 특권은 줄지 않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 상징하는 불평등과 부패도 남아있다"며 "기득권집단의 특권과 권한남용을 제어할 제도적 장치를 더욱 발전시키고, 법치주의와 인권을 신장하여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당 내 친노직계는 ‘진보적 실용주의’를 내세운다. ‘진보적 실용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들이 현 정부의 경제사회정책을 주도하거나 적극적으로 옹호해왔다는 점에서 ‘좌파 신자유주의’를 계승하는 급진적 신자유주의 개혁노선이 아닐까 짐작된다.

    고건 전 총리는 오래 전부터 ‘중도실용개혁세력 통합론’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지금껏 명쾌하게 밝힌 적이 없다.

    그저 용어의 사전적 의미에 따라 ‘양 극단을 배제하겠다는 것인가’ 싶기도 한데, 고 전 총리는 또 "특정한 세력을 배제하겠다는 건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물에 잡히지 않는 바람처럼 개념의 포획망을 빠져나가는 고 전 총리의 통합론은 자기중심적 통합을 지시하는 개념의 유희를 아직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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