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 여성노동자, 산별노조의 열망을 말하다
        2006년 10월 30일 11:23 오전

    Print Friendly

    ‘과격한’ 남성 노동운동가들이 꽉 잡고 있는 금속노조에서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여성노동자들의 열망이 분출하고, 14만 금속산별노조가 여성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를 토론하는 자리가 있었다.

    지난 10월 27∼28일 1박 2일간 충남 계룡산 부근에서 열린 금속산업연맹 여성간부 수련회에는 여성 40명과 남성 2명을 포함해 모두 42명이 참석했다.(아래 사진) 

    최저 연령 19세에서 최고 연령 50대까지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노동자들의 단결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 수련회에 오기 위해 여성조합원들은 남성들과 다른 몇 가지 장애물을 넘어야 했다.

    철야근무를 하고 수련회에 온 여성노동자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회사가 시간할애를 해 주지 않기 때문에 연·월차를 써야 했다. 정규직 여성들도 마찬가지 장애물이 있었다. 40명 여성 참가자들 중에 중앙간부와 지역 간부들 11명을 제외하고 모두 비상근 간부들이거나 조합원들이었다.

    현대자동차 노조조차 여성부장 단 한 명이 상근 간부다. 일반직이나 사무직 여성조합원들은 이런 수련회나 회의에 자주 참석하다 보면 나중에 일이 쌓여 고생한다. 생산직 여성들은 자신이 빠지면 자기가 할 일을 같은 라인에 있는 조합원들이 해줘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항상 쓰인다.

    게다가 경기 케피코지회, 기아차화성 비정규직지회, 경주 IHL지회 등에서 몇몇 여성조합원들은 아침 8시쯤 끝나는 야근을 하고 참석했다. 차에서 잠깐 눈 붙이고 충남까지 달려와 몸이 녹초가 된 상태에서 수련회에 참가해야만 했다.  

       
     

    화끈하게 펼쳐보인 여성노동자들의 ‘끼’

    이렇게 수많은 장애물들을 뛰어넘고 한 자리에 모인 여성노동자들은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열망과 ‘끼’를 화끈하게 펼쳐 보였다.

    비정규직 여성조합원들이 대거 참석해 투쟁사례를 발표했다. 연월차를 쓰는 것도 불사하면서 기아차 화성식당조합원들 등 ‘무려’ 7명이 참석했다. 장기투쟁 중인 기륭전자분회도 3 명이 참석했다.

    기아차비정규지회 식당조합원들은 ‘닭대가리’, ‘붕어대가리’ 같은 일상적인 언어폭력과 영양사가 기분대로 아주머니들 앞에서 양동이를 걷어차는 등 인격적 모욕을 당해왔다. 비인간적 대우에 체불임금까지 겹치자 결국 식당아주머니들은 지난 3월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그러나 회사의 탈퇴 공작은 야비했다. 창고에 몰아넣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탈퇴서를 작성하라고 강요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회 간부들과 조합원들이 문을 따줬고 이에 대한 공개사과를 요구해 4명의 악질 조리사가 ‘퇴출’되기도 했다. 또 탈퇴를 설득하려고 친분 있는 조리사가 옥상으로 올라가 얘기하자는 제안에 한 조합원은 "난 기미가 많아서 옥상 못 올라간다. 여기서 말해라"고 요구했다는 얘기에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성들은 이해 못 하겠지만 여성노동자들은 이런 얘기에 공감한다.

    "우리도 식당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하고 싶다"

    식당조합원들 투쟁사례 발표가 끝나자 정규직인 대우차 식당조합원들, 현대차 식당조합원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현대차 조합원은 산재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해주었고, 대우차 정규직 식당조합원은 "우리 식당엔 정규직이 45명인데 비정규직은 127명"이라며 " 어떻게 하면 그렇게 당당한 비정규직지회를 조직하는지 알려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또 다른 사례 발표를 한 기륭전자분회의 투쟁을 담은 25분 짜리 비디오 영상을 보며 참석자들은 울기도 하고 마음이 아팠다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몇 백 마디 말 보다 생생한 영상은 사람들의 마음을 더 많이 움직였다.

    기아화성비정규직 참가자들은 많지 않은 강사비를 기륭전자분회에 전달했다. 같은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들이지만 더 어렵고 힘든 동지들에게 보내는 마음의 선물 같은 것이었다. 경주 IHL지회 한 여성조합원은 "비정규직 철폐라는 말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 하던 나의 지난 생각이 부끄러워지는 시간"이라면서 "연대라는 것이 정말 든든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70년대 동일방직 여성노동자 투쟁은 오늘 우리 얘기

    1970년대 인천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담긴 <우리들은 정의파다>라는 영화 상영은 과거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현재를 이어주는 끈이 되었다. 당시 해고된 124명이 지금까지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처절한 투쟁과정을 보며 참석자들이 울다가 웃다가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16∼20세 초반 어린 ‘공순이’들이 당당한 투사로서 거듭나 당시 절대권력이었던 박정희 정권을 향한 대담한 도전이 담긴 이 영화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다만 영화상영을 위한 기술적 조작이 미숙해 회의실에서 보지 못하고 텔레비전에 연결해 방에서 비디오처럼 본 것은 아쉽다. 하지만 커다란 방에 모두 모여 동일방직 여성들이 관리자들에게 통쾌한 반격을 가할 때마다 여성노동자들은 "아이구 잘 했네, 그렇게 해야지"라며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방바닥에 누워 편한 자세로 관람(?)한 것에 다들 만족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은 "20년이 지난 지금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20년 전 동일방직 여성노동자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지금도 여전히 투쟁의 정당성을 가지고 투쟁하는 선배노동자들을 보면서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여성친화적 문화와 중앙교섭에 여성요구 반영

    사실 이번 수련회의 핵심은 산별노조와 관련된 교육이었다. 내년이면 금속산별노조가 본격적인 출범을 할 텐데 그런 면에서 금속연맹 여성위원회도 많은 고민을 해 왔다. 그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여성노동자 관점에서 본 산별노조 방향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수련회이기도 했다.

    여성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 지부에 여성위원회를 건설해야 하고, 이를 위해 여성담당 간부들을 발굴, 선임,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출됐다. 또 여성친화적 조직문화를 위한 성폭력 근절 대책 등과 함께 내년 중앙교섭에서 여성노동자 요구를 걸기 위해 여성노동자들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특히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에서 따낸 ‘성별차이로 인한 임금격차 해소’나 경주지부의 ‘주5일제 청소·식당여성노동자까지 적용’ 등 여성노동자들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중앙교섭 요구들을 제출하고 토론했다. 그 밖에도 조별 토론에서는 보육시설 확대, 양성평등 의무교육 이수자만 후보출마 자격 부여 등 다양한 제기가 덧붙여졌다.

    강사로 온 금속산별완성대의원대회 준비위원회 규약소위위원장 박준석 현대차노조 기획실장은 조별토론까지 참석하면서 현장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인지 즐거운 뒤풀이에서 기아차화성식당 아주머니들로부터 열렬한 환대를 받기도 했다.

    박준석 실장 말고도 5명의 여성들의 ‘김기사’로 오게 된 경주지부 김태완 사무국장도 뒤풀이에서 젊은 여성들의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이번 수련회는 다른 연맹에 비하면 늦었지만 최초로 보육교사를 초빙했다.

    데려온 아이들은 보육교사에게 맡기고 엄마는 신나게

    영유아 등 어린 아이들도 어른들의 수련회와 별도의 자신들의 프로그램으로 놀이시간을 가졌다. 전교조 유치원위원회 해직교사이기도 한 양민주 보육교사는 금속연맹이 처음으로 보육방을 운영하는 것을 알고 미리 자신이 준비물을 챙겨와 차질없는 진행을 해 주었다.

    두 살과 네 살짜리 아이 둘을 데리고 왔던 인천지부 윤화심 사무국장은 "애들을 봐주는 선생님이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애들이 떨어질 수 있을까 우려했는데 주말에 애들과 여행도 할 수 있었고 애들은 선생님과 행복하게 잘 놀았죠. 전 수련회도 안정적으로 참가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의 수련회였습니다"라며 감사를 표했다.

    금속산업연맹 조미자 부위원장은 "여성사업은 조직 전체가 받아 안아야 할 사업인데 그 동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고, 여성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비난해왔다"며 "금속산별노조가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사업을 규약에 명확히 규정해야 하고, 강력히 추진되도록 더 힘차게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렵지만 서로 배려하고 약자에 대한 따뜻한 관심에 바탕을 둔 단결과 연대, 이런 것이 산별노조에 대한 여성노동자들의 바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