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복지관의 노동 인식,
    "노조가 원하는 것은 성실한 교섭"
    [기고] 복지관 이용 지역주민에 대한 갑질
        2020년 12월 19일 05: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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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을 하고 오셨나요?”

    지난 여름, 정릉종합사회복지관이 시끄럽다는 말이 들렸다. 주민센터라면 늘 민원이 많은 곳이니 시끄러울 법도 한데 복지관이 시끄러울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8월 28일 오후에  복지관에 들렀다. 관장을 만나고 싶다고 하니, 약속을 했냐고 묻는다. 지역주민(정릉종합사회복지관은 내가 사는 관내에 있다)이 복지관에 방문하는데 약속을 운운하는 것에 심사가 뒤틀렸지만 참았다.

    내막은 대충 알고 있었다. 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사측과 단체교섭을 하던 중 복지관의 운영법인이 교섭을 미루고 있다는 것. 딱 거기까지가 내가 아는 것의 전부다. 교섭을 미루는 이유는 복지관의 운영법인인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예닮교회가 교섭위원인 시설장의 위임을 철회한 데에 있다.

    관장과 약속을 하지 않고 왔다는 이유로 당장 내쫓을 기세로 응대한 시설장 및 직원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관장과는 일면식이 있는 사이고, 관장은 내가 시민기자인 것을 안다). “복지관의 주인은 주민이다. 나는 무조건 사회복지 노동자의 편”이라고 말했다. 관장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꼬리 잡으며 “앞뒤 상황을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 노동조합의 편을 드는 사람과는 대화할 수 없다, 기레기는 나가라!”며  소리쳤다.

    복지관을 나와 생각해보니 억울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주민을 위해 만들어진 복지관에서 쫓겨나야 하는가. 거기다 ‘기레기’라니. 시간이 흐를수록 그때의 일이 또렷이 떠올랐고 화가 풀리지 않았다.

    나는 복지관에서 문전박대당한 일을 9월 10일 구청 민원게시판에 썼다. 반드시 시설장의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며칠 후 구청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구가 위탁한 복지관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겪었다니 유감이다. 복지관을 위탁한 곳이 구청이므로 일말의 책임이 있다. 민원을 올린 내용은 공공시설의 장이 주민에게 할 행동이 아니다. 글 내용 말고 다른 일은 없었나?”

    구청 담당자의 연락을 받고 마음을 놓았다. 내가 과민반응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구청은 관장을 불러서 면담했고, 나에게 사과하러 갈 것이라고 했다. 일주일 후 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과를 하러 갈 것이니 만날 날짜와 시간을 정하자고 했다.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장소는 정하지 않았다. 당일날 장소를 언급하는 연락이 올 줄 알았지만 관장은 뜻밖의 문자를 보냈다.

    “오늘 민원인(나)에게 사과하기로 한 약속 때문에 외부 일정이 끝나고 부랴부랴 복지관으로 들어왔어요. 8시까지 복지관에 있을 테니 (사과를 받고 싶으면) 내방해 주세요.”

    기가 막혔다. 주객이 바뀌어도 유분수다.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이 사과를 받을 사람에게 오라 가라 하다니. 초등생도 알만한 상식을 깨는 답변에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복지관으로 가지 않았다.

    다음날, 시설장으로부터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말을 구청에 전했다. 구청 담당자는 참담하다는 표정이었다. 이제 복지관의 운영을 책임지는 한기장 재단에게 문제제기를 할 것이니 기다리라고 했다.

    10월 6일 밤 9시, 정릉복지관 관장으로부터 언제 어디로 몇 시까지 가면 되냐는 문자가 왔다. 10월 8일 저녁 7시까지 집 근처로 오라고 했다. 사과를 하러 온 관장은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시키기에 급급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려는 태도가 아니었다. 이번에도 내 기대는 처참히 깨졌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억누른 감정이 폭발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소리를 지르며 관장에게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으니 돌아가세요”라고 했다.

    관장이 돌아간 후, 나는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지역주민을 대하는 태도가 이러한데 노동조합을 만든 조합원들에게는 어떤 모습일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정릉종합사회복지관 노동조합은 2019년 11월 11일 만들었다. 2020년 2월 3차 교섭 후 시설장의 건강 문제와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단체교섭을 연기했다. 4월에는 재단 이사회 결정으로 단체교섭 권한 위임을 철회하면서 교섭을 하지 않았다. 복지관의 운영은 성북구로부터 위탁받은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한기장) 소속인 예닮교회다.

    정릉종합사회복지관 노동조합은 교섭이 중단되자 2020년 9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체신청을 했다. 12월 4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한기장 재단이 단체교섭 당사자인 ‘사용자’라고 판정했다.

    12월 18일 현재, 교섭이 미뤄진 지 299일 째다. 조합원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복지관 앞마당에서 피케팅을 하고 있다. 199일째다.

    12월 17일 정릉복지관 앞에서 기자회견중 피케팅 하는 필자.

    정릉복지관 노동조합원들은 정릉복지관 앞에서 일주일에
    세번 근무시작전에 피케팅을 한다. 12월 18일 현재 199일째.

    재단은 이와 같은 지노위 판정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교섭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나는 처음에도 말했다시피 조합원들의 편이다. 내가 복지관 관장에게 당한 갑질은 조합원들의 마음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에게 힘이 된다면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각오를 했다.

    복지관이라는 비영리 조직에서 노동조합을 인정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사회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봉사’와 ‘희생’, ‘헌신’의 마인드로 일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도 근로계약서를 쓰고 임금을 받는 엄연한 노동자다. 노동자가 기댈 수 있는 곳은 노동조합뿐이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근로기준법이 있다. 올해는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산화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여전히 이를 외면하는 사업주가 있다.

    영리조직이든 비영리조직이든 모든 사업장에는 갑을 관계가 생긴다. ‘갑’과 ‘을’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면 갈등관계가 되고 적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라면 상생하는 노사문화를 만들 수 있다. 정릉복지관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월 1회 시행하는 ‘문화의 날’을 일방적으로 폐지했고, 직원고충처리위원회에서 조합원을 배제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정릉지회는 12월 17일 아침, 복지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다음은 정릉복지관 노조 부지회장인 이재아 사회복지사가 한 말이다.

    “저희는 정릉지역 복지 강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실무자로서 보고하고 결재받는 업무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지워져 있습니다. 사측은 언제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나의 일이 아닌 것처럼 말합니다.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한기장 재단이 사용자라고 판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중재위원회에 언론조정신청을 하고, 부당노동행위 판정에 대한 불복으로 재심청구를 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업무 때문에 다른 업무를 못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함께 이야기해서 만들어가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사측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해결하려고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막을 수 있었고 대화로 풀 수 있었던 문제들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부디 성실한 교섭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한기장 복지재단, 성북구청, 정릉종합사회복지관은 각자의 역할에 책임을 다하길 바랍니다. 당연한 것들을 하지 않고 있는 지금 상황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루빨리 교섭이 재개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노동조합이 원하는 것은 성실한 교섭입니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지역주민, 복지관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회복지 노동자, 시설을 운영하는 법인, 위탁 책임을 갖는 구청. 이 네 곳이 함께 어우러져 약자를 돌보는 일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12월 17일 아침, 귓볼을 떼 갈 듯한 추위가 온몸을 감쌌다. 사용자의 성실한 교섭을 촉구하는 조합원, 지역의 연대 단체, 그리고 나는 정릉종합사회복지관 정문 앞에서 피켓을 들었다.

    “노동조합이 원하는 것은 성실한 교섭입니다.”

    “복지관을 이용하는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갑질 응대, 복지관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라.”

    12월 17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정릉지회가 성실 교섭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필자소개
    사회복지사. 정릉동 지역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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