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치, 사계절 다섯 가지 맛의 조화
        2006년 10월 30일 09: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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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이 맛이 있다고 하면 단맛과 고소한 맛이다. 단맛은 당이고 고소한 맛은 지방이다. 맛있는 것은 좋지만 문제는 과잉 섭취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시대가 되어 사람들은 그저 맛있는 것만 찾아다닌다.

    그러다보니 당과 지방의 과잉섭취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성인병이 그것이다. 어린아이도 성인병에 걸리는, 곧 성인소아병이라는 이상한 병도 다 당과 지방의 과잉섭취에서 비롯된다.

    당과 지방은 우리 몸에서 꼭 필요로 하는 영양소이지만 또한 꼭 필요한 만큼만 먹어야 되는 영양분이다.

       
     
     

    가을배추가 봄배추보다 맛있는 이유

    단맛은 신맛, 쓴맛, 매운맛, 짠맛 중에서 짠맛과 함께 가장 절제되어야 할 맛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단맛은 다섯 가지 맛 중에 제일 필요가 적은 맛이다. 단맛은 식물이 겨울을 나는 데 필요한 영양이자 에너지로 가을에 과일 나무가 맛있게 과일을 맺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곧 씨를 겨울의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과육의 보온덮개로 싸 덮는 것이면서 씨에게 영양이 되어준다. 일교차가 큰 지방에서 과일이 잘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겨울을 나는 작물들도 추위에 견디기 위해 당분을 많이 만든다. 봄배추보다 가을배추가 더 맛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배추만이 아니라 겨울을 나는 채소들은 다 맛있다. 시금치가 대표적이다. 시금치는 아주 추운 겨울에도 끄떡없이 파란색을 유지한다. 상추나 배추도 겨울 추위에 지상부는 얼지만 봄이 되면 뿌리에서 새로 동이 올라오는데 그게 기가 막히게 맛있다.

    그런데 단맛은 그 외에는 별 필요가 없다. 다른 맛들은 그 이상의 역할과 기능이 있다. 특히 신맛과 쓴맛과 매운맛의 약효는 최근에 주목을 받고 있는 맛들이다.

    신맛은 봄에 필요하고, 쓴맛은 여름에 필요하고, 매운맛은 가을에 필요하고, 짠맛은 사계절 필요하다. 대개 이 순서는 자연에서 나는 것들과 자연스럽게 맞춰지는데 우리 몸도 그에 맞게 그 계절에 그 맛을 요구한다. 다만 오행(五行論)에서는 겨울맛이 단맛이 아니라 짠맛이라 하여 약간 차이가 있다. 필자로서는 학식이 부족해 왜 그런 차이가 있는지 아직 파악하질 못하고 있다.

    봄 신맛 수영·두릅·달래

    여하튼 봄에 신맛을 먹어야 하는 것은 겨우내 채소를 먹지 못해 비타민C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개 신맛에는 비타민C가 많다. 신맛 나는 대표적인 나물은 수영이다. 하도 시어서 이름도 수영이다. 누구는 시영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쉬영이라 하는 것도 같지만 다 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겨울이 지나 2월 입춘이 되면 제일 먼저 먹을 수 있는 나물은 냉이다. 냉이는 곰이 동면에서 깨어나 제일 먼저 먹는 음식이다. 먹을 것도 그 외에는 특별히 없기도 하지만 냉이 뿌리는 또 단백질도 많아 원기를 회복하기에 아주 좋은 먹을거리다. 비타민C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봄에 4월 곡우가 지나면 들나물이 억세지고 쓴맛이 많아 먹질 못하지만 이때부터 산나물이 본격적인 철이다. 산나물로 제일 유명한 것은 역시 두릅이다. 두릅은 풀이 아니라 나무다. 나무의 새순이 두릅인 것이다. 두릅 특유의 산내음 나는 듯한 상큼한 맛은 어느 나물도 따라오기 힘든 압도적인 맛이다.

    오죽했으면 두릅 나는 곳은 자식한테도 가르쳐 주질 않는다 했을까? 두릅은 그 자체로도 비타민C가 많은데 이를 또 초고추장에 찍어먹으니 이래저래 신맛을 특히 즐기는 나물이다. 두릅에 있는 쓴맛은 사포닌 성분으로 혈액순환과 피로회복에 그만이라 한다. 신맛 난다 해서 신맛만 나는 것은 아니다. 대개 나물들에는 쓴맛도 많다.

    산나물로 또한 대표적인 것은 달래다. 달래는 마늘 대용으로도 훌륭한데 마늘과 같은 백합과여서 생긴 것도 비슷하다. 달래가 제철이면 작년에 수확한 마늘이 거의 떨어질 때다. 이런 것을 보면 자연이란 참으로 조화롭고 고마운 존재이기만 하다.

    하여튼 달래에도 비타민C가 많은데 또 식초 한방울 떨어뜨려 무쳐 먹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하니 신맛은 역시 봄맛의 대표다. 신맛을 많이 먹어두면 봄에 춘곤증을 퇴치할 수 있는데, 이는 비타민C가 몸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여름의 대표적인 맛은 쓴맛이다. 이때가 대략 6월초 망종인데 이쯤 되면 봄에 파종한 것들이 먹을 만큼 자라있다. 영상의 날씨로 돌아선 춘분 때 심은 잎채소들이 제법 먹을 만하다. 그 가운데 역시 씁쓸하기로는 상추가 으뜸이다. 상추 잎줄기를 자르면 흘러나오는 하얀 즙이 쓴맛을 낸다.

       
     
     

    여름 쓴맛 상추·씀바귀·익모초

    이 쓴맛이 졸음을 오게 해서 상추를 먹고 나면 낮잠을 즐긴다. 먹을 것이 별로 없던 어릴 적, 초여름 일요일 점심 때면 어머니는 된장과 고추장을 갖은 양념에 비벼서 상추쌈을 차려주시곤 했다. 요즘처럼 고기도 없고 생선 한조각도 없이 그저 맛장과 상추만 갖고 먹어도 얼마나 맛있었던지… 배부르게 신나게 먹고는 즐기는 낮잠은 또 얼마나 달았던가…

    그런데 요즘 상추에는 그런 맛이 없어져 버렸다. 특유의 향도, 특유의 씁쓰레한 쓴맛도 없어 고기 집에 꼭 따라 나오는 상추는 항상 넘치는 대로 남는다.

    상추와 비슷한 것으로는 같은 국화과인 씀바귀(고들빼기)다. 이름도 쓴맛 때문에 그렇게 부쳐졌다. 한자로도 쓰다는 뜻의 고채(苦菜)다. 씀바귀는 봄에 나는 나물이지만 왕고들빼기는 여름에 나는 씀바귀다. 밭에 흔하디흔한 잡초로 이놈의 큰 잎을 하나 상추에 얹어 삼겹살을 싸먹으면 대단한 맛을 낸다.

    상추와 함께 봄에 재배하는 작물들도 한결같이 쌉싸름한 맛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배추와 무와 알타리를 먹어보자. 조선 배추 고갱이를 먹어보면 그 씁쓸한 맛이 제법이다. 요즘은 작물로도 재배하지만 옛날엔 대표적인 여름 산나물로 머위가 있다. 이놈은 완전히 쓴맛으로 먹는 나물이다. 다른 나물과 마찬가지로 머위는 비타민이 골고루 들어있고 특히 칼슘성분이 많은 알카리성 나물이다.

    그러나 쓴맛 중에 둘째라면 서러울 것이 역시 익모초다. 얼마나 쓴지 이놈은 나물로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어쨌든 그 쓴맛을 먹어보면 몸을 부르르 떨 정도다. 그런데 익모초는 여름에 더위 먹은 데에는 치료제로 그만이다. 그래서 여름에는 쓴맛을 먹어주어야 한다. 봄에 씀바귀를 열심히 먹어두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을 매운 맛 청양고추

    가을의 대표적인 맛은 매운맛이다. 매운 고춧가루가 또한 매운맛의 대표다. 매운맛은 캡사이신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이 캡사이신이 암에 좋다고 하며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한다. 그러나 매운 맛은 속을 자극하기 때문에 절제하여 먹을 필요가 있다.

    매운고추 하면 역시 청양고추다. 청양고추를 날 것으로 찍어먹기는 쉽지 않지만 양념으로 반찬 만들 때 넣으면 입맛이 돈다. 그저 맵기만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청양고추의 매운 맛이 다른 음식 재료들의 맛을 살려준다. 매운 것으로는 마늘과 대파 생강 등 양념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맛들은 작물들이 갖고 있는 외적에 대한 방어기능이자 작물들의 개성이다. 신맛, 쓴맛, 매운맛 등은 그래서 농약 대용, 곧 기피제로 쓸 수 있는 기능들이다. 이런 맛들이 강한 식물들에는 벌레가 적다. 또한 작물도 이런 고유의 맛과 개성을 살려야 스스로 병해충에 강하게 큰다. 관행농법이 문제인 것은 단지 농약을 많이 쳤기 때문이 아니라 농약을 치다보니 이런 고유의 맛과 개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작물의 방어기능으로는 이런 맛 기능 외에 여러 가지가 있다. 향도 대표적이며 특유의 표피조직도 마찬가지다. 토마토나 들깨 같이 진한 향은 허브식물처럼 독특한 그들의 방어장치다. 표피조직으로는 가시를 내어 까칠하게 만들어서 외적이 먹기 힘들도록 만든다. 유기농으로 키우면 대개 표피조직들이 까끌한데, 오이에도 가시가 있고 배추에도 가시가 있다.

       
     
     

    신맛은 사라지고 달기만 한 과일들

    이런 작물들의 맛과 방어기능들은 사람에게도 좋다. 요즘은 신맛도 좋다고 하여 식초를 상용하기도 한다. 옛날엔 사과도 신맛으로 먹었고 딸기도 그랬다. 요즘엔 그저 달기만 하다. 거의 설탕 덩어리나 마찬가지다. 사과만해도 신맛의 대표는 홍옥이었다. 물론 시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달기도 하면서 시었다.

    딸기도 지금처럼 달기만 한 게 아니라 특유의 신맛과 향이 강했다. 5월말이나 6월초쯤이면 제철인데 이때 딸기밭에 가면 그 향이 끝내준다. 그러면서 딸기도 향과 신맛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그런 우리의 제철 딸기는 사라지고 엄청난 종자값을 일본에 주면서까지 그저 설탕덩어리에 불과한 것을 먹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쓴맛이 나는 상추는 천연수면제다. 병원에 가서 처방약을 받으면 수면제가 들어간 경우가 많은데, 잠을 잘자야 몸이 스스로 치유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인공수면제로 쓰게 되면 꼭 좋을리만은 없다. 대신에 천연수면제로 쓴다면 더더욱 좋을 텐데, 어쨌든 옛말에 음식이 약이라는 말이 다 그런 이치이다. 그래서 나물은 불로초(不老草)고 밥은 불사약(不死藥)이라 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특유의 맛들은 사라지고, 그저 봄에도 단것, 여름에도 단것, 가을에도 단것, 겨울에도 단것만 찾는다. 그러지 않아도 농약에 찌든 우리의 음식들은 이래저래 약이 아니라 독약에 가깝다.

    5가지 맛을 갖춘 완벽한 음식 김치

    짠맛까지 합쳐야 오미(五味)가 되는데, 짠맛은 소금으로 보충해야 한다. 어쨌든 이 다섯 가지 맛은 과용하지 않으면서 골고루 철에 따라 섭취해야 건강 또한 조화롭게 유지할 수 있다. 어느 하나만을 과용하게 되면 그게 독이 된다.

    이 다섯 가지 맛이 고르게 살아있으면서 오미(五味)가 신비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음식이 바로 우리의 김치다. 그 김치의 재료에 들어가는 것들을 보면 오미도 오미지만 철따라 나는 것들이 전부 들어가 있다. 겨울을 나는 마늘과 파, 여름의 고추, 주재료인 배추나 무 등 푸성귀는 봄가을에 난다. 짠맛은 소금으로 낸다. 이런 김치의 재료들을 유기농으로 키워 다섯 가지 맛이 다 살아있는 것들로 만든다면  김치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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