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교회, 루스채플
    연세대의 기독정신 구현
    [그림 한국교회] “동양과 서양의 만남, 고대와 현대의 만남을 융합"
        2020년 12월 18일 10: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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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코로나 사태에 대한 한국교회의 대응이 어설프고 일방적이어서 사회적 신뢰도가 더 훼손되어 곤혹스럽지만, 그나마 교회본질의 회복이 급선무라는 공동인식을 하게 된 것이 다행입니다. 서구교회에 비하면 토대가 얇지만 그래도 한국교회는 뿌리를 들여다보고, 그루터기에서 싹을 틔워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선교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원두우(Horace Grant Underwood) 선교사의 신학과 삶, 첫 기독대학인 연세대학교의 정신은 소중합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은 옮겨와 앉았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중략)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원두우 선교사의 기도는 아니지만, 정연희 소설가가 그분의 신앙과 선교의지를 잘 담은 열망대로 척박한 이 땅에 하나님의 은총이 풍성하게 임하여 많은 교회와 학교, 병원이 설립되었고, 무엇보다 교회가 민족의 개화와 독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연세대학에서 모임이 있을 때 집에서 걸어서 안산 자락을 거쳐 연세대학교 교정으로 가면 담쟁이로 단장한 석조본관 앞에 있는 원두우 선교사의 동상과 만납니다. YMCA 회장, 피어슨기념성경학교장, 새문안교회 목사, 한국어문법·한영사전 편찬, 경신학교·연희전문대학 설립인으로서 한국생활 31년을 성실히 수행하였습니다.

    ‘복음전도와 사회선교의 균형’을 추구하고, 에큐메니칼운동을 실천하여 교파연합의 기초를 놓은 걸출한 인물이지만, 동상이 작고 소박하여서인지 친근하게 여겨집니다. 거기서 대강당을 지나 학생회관 뒤로 가면 루스채플이 나옵니다. 이 독특한 건축물에 대하여 정종훈 교수님(세브란스병원 원목실장)은 저서 <연세대학교 루스채플이야기>(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2019)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독수리가 창공을 웅비하려는 듯한 형상을 지닌 루스채플은 연세의 교훈인 진리와 자유, 기독교 정신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는 산실이다.” (상게서 3쪽)

    그림=이근복

    특이하게 보인 것은 캔틸레버(외팔보)라는 현대 건축기법으로 특별한 지붕을 만들고, 다양한 한국 전통문화 요소들을 융합하여 건축한 까닭입니다. 루스채플 설계를 맡은 김석재 건축가는 ‘한국 전통건축의 미학’을 현대 건축으로 구현하는 것을 고민하던 중, 어느 날 새벽 서울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다가 지금의 교보빌딩 앞에 있는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해 세운 기념비전을 보고 디자인 모티브를 얻습니다. 비각의 곡선 지붕이 조명을 받아 마치 하늘 위에 둥실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고 루스채플의 형태를 착안한 것입니다. 양쪽으로 길게 튀어나오는 지붕은 연세대의 상징인 독수리가 날개를 편 모습을 상징하는 의미도 더해졌습니다.

    그런데 건축 장소도 특별하여 동산처럼 땅이 볼록 솟아오른 지형으로 ‘수경원’(사도세자 어머니인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의 묘)의 터였습니다. 김석재 장로는 이 구릉형 땅 모양을 그대로 살려 설계하였습니다. 하늘에 떠 아래쪽으로 굽은 지붕의 곡선, 그리고 반대로 땅에서 위로 솟아오른 언덕 곡선의 양쪽 끝이 연결되는 구도가 되도록 연출하여 동과 서로 뻗어 나간 지붕은 자유의 확장을 상징하는데 이는 또한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자 고대와 현대의 만남을 융합한 결과”(정종훈 상게서 32쪽)인 것입니다.

    루스채플 구석구석에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습니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 위쪽은 전통 건축의 ‘공포(栱包)’ 부분을 연상시키도록 디자인했고, 우리나라 전통 종(일명 평화의 종)이 달려 있고, 전통 악기인 편종과 한국적인 아름다운 미를 연출하는 석등과 청사초롱도 있습니다. 채플 안으로 들어가면 투명유리창을 통해 하늘과 나무를 훤히 볼 수 있고, 유리창의 창살은 한옥 창살의 전통적인 문양이고, 청/적/백색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모자이크 외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상징하여 복음의 핵심을 전파하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루스채플이야기>는 루스채플에 있는 예술작품으로 파이프 오르간, 김학수 화백의 한국화풍의 예수 시리즈 성화들, 예수상 조각, 서예작품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는 건축가 정시춘 선생의 말을 그대로 지킨 것같이 보입니다.

    “교회건축은 하나님 백성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기독교 문화를 표현하는 중요한 상징이다.”(정시춘, 세계의 교회건축순례, 2009) 40쪽

    루스채플에서 예배드리는 연세대 대학교회는 1931년 4월 5일 부활절 예배로 시작되었습니다. 교정에 독자적인 교회를 꿈꾸던 연세대는 ‘잡지의 왕’으로 불린 언론기업인 미국의 헨리 루스재단에서 20만불을 기증받아 그의 이름을 딴 루스채플을 건축하여, 1974년 9월 봉헌식을 가졌습니다. 2006년도에는 부속건물인 ‘원일한홀’(원일환 박사는 원우두 선교사의 손자)을 건축하였습니다.

    정종훈 교수는 책 말미에 대학교회가 새로운 비전을 추구하고 있다고 기술하는데 이는 한국교회가 공유할 가치입니다. 1. 교파를 초월해서 한국교회의 모범적인 교회로 자리매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2. 생활신앙의 기독교인을 배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3. 누구라도 환영하고 환영받는 교회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4. 대학캠퍼스 학원선교의 전초기지로서 역할을 감당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 교목실장인 이대성 교수님의 선교관도 한국교회가 귀담아 들으면 좋겠습니다. 연초에 국민일보(2020.1.31.)에 실린 “아카펠라풍의 선교”라는 제목을 글 중에 일부분을 인용합니다.

    “(전략) 유럽이 기독교 문명에 속해 있을 때 교회는 모든 삶의 중심이었다. 세례증명서가 출생증명서 역할을 하던 시대에는 교회와 분리된 다른 영역은 없었다. 다만 전쟁 등의 비상시에만 교회를 떠나 야전 채플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계몽주의와 세속화의 흐름 이후 유럽에서 교회는 더 이상 일상생활의 중심 역할을 하지 못한다. 교회는 이전과 같은 권위와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와 같이 선교를 받은 지역에서는 역사상 어느 한순간도 교회가 생활의 중심인 적은 없었다. 교회 중심의 신학, 선교, 예배는 어떻게 보면 허상이다. 오늘날 전 세계 모든 기독교 예배 공동체는 교회의 성격보다는 채플의 성격을 띠고 있다. 교회 모델에서 채플 모델로의 전환은 유대교가 성전 중심에서 회당 중심으로 전환한 것 이상의 중요한 인식 전환이다.(하략)”

    그러면서 교회가 선교 대상자의 교회 출석이 아니라 그들이 각 영역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자각하고 그 사명을 전문적으로 수행함으로써 하나님 나라 건설에 동참하게 돕는 것이라고 봅니다. 급변하는 세계의 흐름 속에서 기독교 선교는 ‘아카펠라 방식’(문자적으로 ‘채플의 방식에 따라서’라는 의미)에 주목하여 군목, 교목, 원목 등 이미 여러 영역에서 오랫동안 선교해온 채플린들이 서로 협력하고 신학적인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며, 교회의 선교를 아카펠라풍으로 바꾸기 위해 인재를 훈련하고, 선교의 목적을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에 두는 방향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동안 저는 연세대 대학교회 교목실의 초청으로 서너 번 설교하였습니다. 지난 4월 11일 부활절 하루 전날, 루스채플에서 녹화한 비대면 부활주일 설교를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교우 여러분! 코로나19가 은밀한 강자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인 부활신앙으로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부활신앙으로 공포와 두려움에서 자유인이 된 우리는, 부활의 일상을 통하여, 이웃에게 생명과 평화, 희망과 기쁨의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길 다짐하는 여러분에게, 성령 하나님의 충만하신 임재를 기원합니다.“

    더 심각해진 코로나 상황에서 2020년을 갈무리해야 하는 참담한 때이지만,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새로운 소망과 기쁨으로 충만하시길 간구합니다.

    필자소개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역임.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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