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유와 게바라 그리고 순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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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30일 12: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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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유 추모사업회(준비위원회)는 올해로 두 번째 추모행사를 남원 중앙연수원에서 열었다. 그 모임에 참석했다가 즉흥 축사를 하였다. 그 요지를 정리해본다.

    이렇게 일관된 신념으로 살기가 어려운 시대에 이재유를 추모하는 모임을 만든 여러분의 용기에 격려를 보내고 이 좋은 행사에 대해 축하를 드린다. 작년 첫 모임에 참석하여 이런 시대에 이 모임이 잘 될 건가를 걱정했는데 오늘 와보니 과연 어렵기는 어려운가 보다.

    여러분이 더 잘 아시겠지만 이재유는 인텔리겐챠 중심의 운동을 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신 분이다. 대중운동의 장구함과 역동성과 발전가능성을 믿고 현재의 부족함을 인내하고 그리고 자신의 입장을 양보하신 분이다.

       
    ▲ 큰 사진 이재유. 맨위부터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아래 왼쪽부터 이현상, 김삼룡, 이관술.

    그리고 오직 대중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에 진정으로 주체적일 수 있었다. 그 분은 어떤 권위에도, 코민테른이라든지 당시 이른바 국제선이라고 했던 그런 권위가 대표적이었겠지만, 굴종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중의 지지에 근거했기 때문에 또한 파벌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재유 선생은 해방을 일 년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애석하게도 감옥에서 돌아가셨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의 생애는 해방 후의 현실 정치에 굴절되고 오염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분은 어떤 순수한 정신의 화신이 되고 상징이 되신 분이다.

    일제 시대 노동운동에 많은 훌륭한 운동가들이 있었지만 그 분의 위치는 독특한 것이다. 쿠바에 가면 공항에 내릴 때부터 카스트로의 사진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게바라의 사진을 만난다고 하는데 게바라가 순수한 정신의 상징이라면 이재유도 바로 그런 분이다.

    오늘 집에서 나오는데 윗집에 사시는 분이 매우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요즘 잘 지내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잘 지낸다”고 말씀드렸다.(웃음) 우리 민주노동당이 지금 매우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가 왜 사회당이나 아니면 아예 공산당을 하지 않고 노동당을 만들려고 했던가를, 그 이유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1992년에 한국노동당을 시도하고, 2000년에 민주노동당을 창당한 그 정신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는 이념보다 노동자 계급 대중을 믿기로 했다. 우리는 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지금이 이재유를 추모해야 할 때다.

    시간이 충분하게 주어졌다면 난 이런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었다.

    이재유는 정직했다. 그는 일제 경찰의 심문을 받으며 숱한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적기>(이재유 등이 중심이 돼 1936년 발행한 전국적 정치신문)의 발행 부수를 엄청 줄여서 말했을 것이고 사랑하는 동지를 모른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신조에 대해서만큼은 떳떳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는 오히려 심문도, 감옥 생활도 선전의 기회로 삼았다. 그래서 그에게 감화를 받은 경찰이 탈출을 묵인해주기도 했고 경성 제대의 일본인 교수가 집에다 숨겨주기도 했던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핑계대고 또 다른 무엇을 핑계 삼아 자신의 주의주장을 숨기고 또 숨겨주는 편리한 행위는 우리들의 나쁜 습관이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습관은 매우 나쁘다. 그런 나쁜 습관은 결국에는 우리 자신의 인격을 파괴한다. 이재유를 본받아 자신에게 그리고 대중에게 정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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