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거 보고 나면 고기 못 먹습니다"
        2006년 10월 28일 12: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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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NA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으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반대여론 형성에 기여했던 KBS스페셜 이강택 피디가 이번엔 ‘광우병’을 주제로 다시 찾아왔다.

    오는 29일 오후 8시에 방영되는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미국 쇠고기 보고서’에서 이 피디는 미국의 공장형 육유사육과 도축실태를 고발한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멕시코의 경제와 멕시코인들의 일상을 통해 FTA의 문제점을 드러낸 이 피디는 이번 프로그램에서 한미FTA 협상의 전제조건인 미국산 쇠고기의 문제를 짚어보면서 미국이 왜 한국에 쇠고기 수입재개를 강력히 요구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병한 콜로라도와 네브라스카의 대규모 육우사육농장을 취재했다. 이 피디는 그곳에서 8만5천여 마리의 소들이 분뇨 위에서 뒹구는 모습과 자동차 조립라인처럼 돌아가며 소가 부위별로 해체되는 도축공장의 충격적 영상을 담았다. 이 프로그램 방영을 앞두고 한국의 농림수산부가 바짝 긴장하고 있는 눈치다.

       
      ▲ 8만 5천마리의 육우를 사육하는 네브라스카주 아담스 농장 (사진=KBS)
     

    다음은 이강택 피디와의 인터뷰.

    – 이번에는 광우병을 다뤘다. 기획의도는.

    = 사실 광우병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관심 정도 수준이었다. 소한테 쇠고기를 먹이는 동종식육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를 궁금해 하면서 흥미를 갖고 지켜봤다. 그러다 지난 4월에 한미FTA 전제조건으로 나오면서 축산자본, 특히 다국적 자본의 이해관계에 궁금증이 커졌다.

    저번 프로그램이 FTA를 멕시코의 사례를 중심으로 총론적으로, 민족경제, 국가경제 차원에서 다루면서 FTA로 인해 변화되는 생활양식과 일상에 대해 다뤘다면 이번엔 각론으로 쇠고기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

    – 취재과정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 상당한 자연과학적 지식이 요구됐다. 생리학이나 병리학 등 의학적 지식도 필요하고 또 불확정성의 영역이 있기 때문에 반론도 가능한 측면이 있었다. 병리현상 그 자체보다는 사회적, 정치적 함의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싶었다. 국내에서는 제대로 얘기해주는 양심적인 전문가가 없어서 직접 해외사이트에서 자료를 찾는 등 방대한 자료조사가 먼저 진행됐다.

    그 다음에는 미국 현지에서 취재를 해야 하는데 섭외가 안 돼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화면을 채울 수 있을까를 걱정했을 정도다. 미국에 가기 전에도 정부, 축산자본 등 핵심적인 취재원에 대한 섭외가 안 됐지만 현장에서 부딪혀보기로 하고 출국을 했다.

    – 대규모 사육농장을 다녀왔는데 직접 본 소감은.

    = 미국의 축산업에 대한 피상적인 생각이 있지 않은가. 땅덩어리가 넓은 곳이니 방목을 할 것 같고, 광활한 목초지에서 자라는 풀을 먹일 것 같고, 유명한 FDA(미 식품의약안전청)의 엄격한 검사를 받을 것 같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허상에 불과했다.

    소가 어떻게 키워지고 있는지를 이번 프로그램에서 충격적인 영상으로 보여줄 것이다. 8만5천마리를 키우는 네브라스카의 ‘아담스 농장’에 갔는데 상당히 외진 곳에 위치해 있다. 왜 외진 곳에 있나 했더니 악취 때문이었다. 그 악취를 TV로 내보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였다.

    8만5천마리. 상상이 가는가. 차를 타고 먼데서 쳐다보면 소들이 빼곡한 점으로 보인다. 소를 가둬서 키우니 바닥에 분뇨가 흥건하다. 이 분뇨를 가끔 불도저로 밀어서 한 곳에 쌓아놓는데 소가 그 위에서 누워서 쉰다.

    소에게는 풀을 주는 게 아니라 곡물로 만들어진 사료를 준다. 사료가 엄청나게 싸기 때문이다. 농업 보조금으로 곡물값이 싸지니까 남은 곡물을 사료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카길이나 몬산토와 같은 곡물메이저가 소도 키우고 사료업체를 인수해 사료도 만들고 가공공장까지 장악했다.

    미국에서는 소농가가 1920~1930년대 7백만호에서 지금 1백만호로 줄어들었다. 다국적 자본의 위탁재배농으로 전환된 것이다.

    거대 메이저들이 육우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90% 넘어섰다. 목초지에서 방목해서 자란 소는 1%에 불과하다.

    – 이렇게 대규모로 사육된 소들은 어떻게 도축되나.

    = 덴버 외곽의 도축공장에 가봤다. 시간당 4백마리를 도축하는 곳이다. 컨베이어벨트로 소 한마리를 순식간에 해체한다고 보면 된다. 여기도 외진 곳에 위치해있고 밤에만 작업을 한다.

    접근조차 못하게 해서 멀리 떨어져 잠복을 해서 찍었다. 그날 옆에서도 촬영을 하길래 물어봤더니 미국에서 독립다큐멘터리 찍는 사람들인데 자기네는 6개월전부터 섭외를 했는데 거부 당했다고 하더라.

    – 도축공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나.

       
      ▲ 닭과 돼지의 부산물을 옮기는 작업장 (사진=KBS)
     

    = 나중에 홍보테입과 시민단체에서 찍은 테입을 봤다. 소가 들어오면 껍질을 벗기고 기계톱을 반을 가른다. 이 과정에서 등뼈가 튀는데 척추에 광우병 위험물질이 들어있다.

    도축을 하고 나면 남은 뼈와 뇌 등을 육골분 사료로 만든다. 부산물 처리비용을 극소화하고 싼 값으로 소에게 동물성 단백질을 공급하니까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이다.

    잘 안 알려져 있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공장형 축산에 대한 반대운동이 활발하다. 광우병 유발 문제가 불거지면서 검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축산업자들은 검사를 규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검사는 매우 형식화 됐다. 현직 감사관도 ‘페이퍼(서류) 작업’이 다라는 얘기를 했다. 게다가 검사하는 비율도 1%에서 0.2%로 줄였다.

    동종사육이 문제가 되자 절충한 것이 소에서 나온 부산물로 만든 사료를 소한테만 먹이지 않는 것이었다. 소나 양과 같은 반추동물(되새김질 동물)한테는 안 되지만 돼지나 닭 등 가금류한테는 줘도 되고 가금류나 돼지에서 나온 사료는 소한테 줘도 된다는 것인데 이게 눈가리고 아웅이다. 광우병이라는 것이 잠복기가 길고 한바퀴 돌아서 교차감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정부의 감사에서도 확인한 것인데 농가 2만8천 곳에서 검사를 안 받았다. 광우병이 의심되는 보행불능소 중에서도 일부만 검사를 받고 있다. 축산업자들은 보지 않으면 발견되지 않는 것(Don’t Look, Don’t Find)이라는 입장이다. 공적인 감시를 ‘규제’로만 받아들이는 신자유주의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 광우병이 발병한 이후 축산업자들은 위기를 어떻게 탈출하고 있나.

    = 미국에서 채식주의 운동이 의외로 활발하다. 길거리에서 인터뷰를 해보면 10명 중 6명이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한다. 식비에서 육류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떨어지고 있고 90년대 이후 광우병이 발발하면서 쇠고기 소비가 급전직하로 떨어졌다.

    이에 축산업자들은 국제수역기구에 압력을 넣어 기준을 완화시키고 광우병 위험국가 기준 대폭 낮췄다. 미국은 광우병이 발생한 나라의 소를 전면 수입제한했는데 자기네 나라에서 광우병이 발병하니까 베트남, 이집트, 페루 등 힘없는 나라부터 개방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쟤들도 하니까 니들도 해라’는 식이다.

    반면 한국은 알아서 개방을 했다. 17개월 이하 소만 수입하는 일본과 비교된다. 뼈없는 살코기만 수입하는 게 일반적인데 한국은 이제 뼈까지 수입한다. 페루나 베트남 수준으로 가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초국적 자본의 이해가 관철 되면서 쇠고기가 어디에 팔렸는지고 공표되지 않아 문제가 생겼을 때 리콜도 안된다. 또 농산물 비방금지법이란 게 있어서 유명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는 <매드 카우보이>의 저자 하워드 라이먼이 출연한 프로그램에서 “죽은 소를 갈아서 살아있는 소에게 먹인다”는 출연자의 발언에 대해 “다시는 햄버거를 먹지 않겠다”라고 했다가 텍사스 목장주협회로부터 1천200만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적도 있다.

    이 프로그램 방영되고 나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웃음)

    축산업자들의 로비력은 막강하다. 정부에도 많이 들어가 있다. 한국과 쇠고기 수입재개 협상을 담당했던 척 램버트 농무부 부차관보는 목장주연합회에서 15년간 일하다 온 사람이다.

    – 광우병이 인간에게 어떤 위협이 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 알츠하이머병의 상당수는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 인간광우병)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는 연구결과가 있다.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은 인구 백만명당 1명의 발병율을 나타내는데 미국에서는 17만명이 사는 카운티에서 4명이 발병했다. 70년대에 이미 발생한 게 80, 90년대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 일본정부는 광우병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

    = 매우 철저하다. 도축하는 소를 전수조사 한다. 일일이 뇌샘플을 채취해 검사한다. 22~23개월의 소에서도 발병한 것을 확인했다. 모든 국내산 소에 대한 개체이력 시스템을 갖춘 상태에서 미국과 협상을 해서 가장 유리한 조건(A-40)을 따냈다.

    국내산과 수입산 섞이지 않게 하고 불시에 DNA 검사를 실시한다. 사료는 어분까지 금지시키고 있다. 국민건강도 지키고 자국 축산업도 보호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축산업도 망가지고 국민건강도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 최근 북핵문제로 인해 FTA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도 낮아졌다. 이번 프로그램이 어떤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하나.

    = 미국에서 취재를 마치고 와보니 그 사이 북핵이 터졌더라. 그 여파로 FTA 반대여론도 낮아지고 묻히는 감이 있다.

    FTA 문제는 어느 특정계층의 경제적 이해득실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 이제 어떤 세상이 되는지의 문제다. 그런 차원에서 핵문제에 밀려 소홀히 할 수 있는 사안은 분명히 아니다.

    이 프로그램이 한미FTA를 좀더 풍부하게 재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의제의 균형성 회복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우리 생활, 일상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문제 아닌가. 식품안전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안보의 문제 아닌가. 북핵만이 안보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건강권과 식량안보에 대해 재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강택 피디는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참고로 저는 고기 안 먹습니다. 원래 잘 안 먹었는데 이번 취재를 하면서 전혀 못 먹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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