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직선제 임원선거,
    3번 후보조 ‘조직적 부정선거’ 논란
    “노동계 스스로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 마련해야”
        2020년 12월 15일 08: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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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차기 집행부 선출을 위한 선거 과정에서 기호3번 후보조(양경수, 윤택근, 전종덕)를 둘러싸고 “조직적 부정선거”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민주노총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황증거가 명확한 위반사실”을 확인하고도 ‘경고 1회’, ‘경고 사실 공표’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리는 데에 그쳤다. 노동계 내부에선 민주노조 내 부정선거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재발방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노총 중선관위는 지난 8일 ‘민주노총 임원선거 기호3번 후보자 등 규정위반 선거운동 제재결정 통지’를 통해 건설노조 경기도건설지부와 3번 후보조가 단체소통방에서 선거운동 기간에 특정 후보의 홍보물만 게시하거나, 투표기간에 ‘경기도 건설지부 투표지침’이라는 제목으로 기호3번 후보에 투표하게 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해당 조직은 개별 조합원이 기호3번에 투표했는지 ‘확인’하고, 기호3번에 투표한 인원을 ‘보고’하게 했다. 중선관위 내부 사정에 밝은 민주노총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이 조직은 개별 조합원이 기호3번 후보조에 투표한 후 인증샷을 남기는 방식으로 투표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기호3번 후보조는 1차 선거에서 출마한 4개 후보조 중 가장 많은 득표를 해 1위로 결선에 올랐다.

    중선관위는 특정 후보에게 투표했는지 확인하고, 보고하는 등 경기도건설지부의 일련의 행위와 관련해 “부정선거를 조직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확인”했다며 선거관리규정 위반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중선관위가 경기도건설지부와 기호3번 후보조에게 내린 제재는 고작 ‘경고 1회 및 경고 사실 공표’가 전부다. 중선관위가 선거관리규정 위반 제재 결정을 내리기 전에 열린 공식 회의 자료를 보면 “정황 증거가 명확한 위반사실로 인하여 아래 단위에 대한 제재로 경고 1회 및 경고 사실 공표를 결정함(이견 없음)”이라고 적혀 있다. ‘명확한 위반사실’임에도 경고 조치에 그친 것에 대해 한 중선관위원은 “민주노총 선거규정에 따라서는 (경고 조치) 제재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중선관위 통지문 중 제재 대상자엔 ‘건설노조 경기도건설지부 및 산하’, ‘기호 3번 후보 (양경수, 윤택근, 전종덕)’라고 명시돼있다. 선거운동을 하는 일부 조직의 일탈이 아니라, 3번 후보까지 부정선거에 연루돼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중선관위원은 “이런 문제가 있을 때 후보조도 모두 제재 대상에 포함하는 게 기본 원칙이지만, (이번 건의 경우) 실제로 후보조가 연관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에 대해 후보조의 이의 제기가 있었지만 중선관위는 다시 회의를 거쳐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중선관위는 “조직적 부정선거”
    3번 후보조 선본 “통상적 선거문제를 침소봉대”

    3번 후보조와 선거운동본부는 15일 새벽 “조선일보는 악의적 선거 개입 기도를 즉각 중단하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오전 ‘[단독] 親이석기 후보 찍으라 요구…민노총 위원장 부정선거 파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호 3번 선본은 “투쟁을 강조하며 1위로 결선에 오른 양경수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본격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기 위해 취재하는 상황이 확인되고 있다”며 “조선일보의 단골 메뉴인 종북몰이와 선거 시기에 통상적으로 나타나는 선거문제를 침소봉대해 부정선거 시비를 일으키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정후보에 대한 투표를 권유하고, 실제 투표가 이뤄졌는지 확인하고 보고까지 한 행위를 “선거 시기에 통상적으로 나타나는 선거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민주노총 중선관위에서 이미 “조직적인 부정선거”라고 규정한 이 사건을 두고 해당 선본은 “(조선일보가) 침소봉대해 부정선거 시비를 일으키려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3번 후보조 선본은 입장문에 “선거 시기 통상적으로 나타나는 선거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나 해명은 내놓지 않았다.

    금기의 조선일보? 보수언론 보도 이유만으로 문제 제기 어려운 내부 분위기
    “조선일보와 무관하게 노동계 스스로 재발방지대책 마련해야”

    3번 후보조가 부정선거 문제를 <조선일보>의 “악의적 선거개입”이라고 낙인찍으면서, 3번과 함께 결선에 오른 1번 후보조는 “민주노총 조합원을 내부에서 분열시키는 것”이라며 부정선거에 대한 언급을 자제한 입장문을 냈다.

    부정선거 문제를 ‘악의적 선거개입’으로 전락시키는 일부 정파의 인식도 문제지만, 보수언론이 보도했다는 이유만으로 관련 사안에 대한 문제 제기가 쉽지 않거나, 악의가 있다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내부 분위기는 더 큰 문제다. 특히 이는 민주노총의 건강한 조직 문화를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1번 후보조가 경쟁 후보조의 부정선거 문제를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못하고 방어적인 입장문을 낸 것이 그 예다.

    1번 후보조 선본 관계자는 “조선일보가 민주노총 내부 선거 문제를 먼저 보도하고 전체가 부패한 선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도하니 경쟁 후보조에서도 대응할 수 있는 범위가 많이 없다”고 말했다.

    과거 통합진보당부터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까지 일부 정파에 의한 논란이 이어지면서, 노동계 내부에선 부정선거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라는 것은 그럴 수 있지만, 특정 후보에게 투표한 인증샷을 보고하라고 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민주적 질서가 무너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의 보도와 무관하게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노동계 스스로가 근본적으로 재발방지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100만 조합원 직선제라고 자랑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이 사건과 관련해 15일 “때 되면 나타나는 그 못된 버릇. 조선은 다시 왜 그들이 청산돼야 할 적폐인지 스스로 증명했다”라는 제목으로 조선일보를 맹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 민주노총은 “(조선일보) 기사의 진위여부와 관련해선 민주노총 내 독립기구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판단과 결정이 있으니 이는 조합원들의 판단의 몫”이라고 밝히며 “조선의 의도와 본색은 다른 곳에서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조선의 전매특허인 색깔론 프레임 덧씌우기”라며 “민주노총을 흠집 내어 조합원들과 국민들 사이에서 고립시키고자 하는 오래전부터 시도해왔던 조선의 본색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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