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제국, 천황제로 살핀 일본 근대
    [책]『일본 근대는 무엇인가』(미타니 타이치로.평사리)
        2020년 12월 12일 12: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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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일본 정치사의 대학자인 미타니 타이치로가 노년에 쓴 일본 근대에 대한 총론이자 대중역사서이다. 마르크스와 동시대 영국의 정치경제 학자인 월터 바지호트는 ‘토의에 의한 통치’를 중심 개념으로, ‘무역’과 ‘식민지화’를 파생 개념으로 ‘근대’를 말한다. 미타니는 이를 일본 근대에 적용한다.

    1장은 일본에서 ‘토의에 의한 통치’로서 의회제와 정당정치가 어떻게 성립했는지, 2장은 근대화의 추진력인 ‘무역’문제를 ‘왜 일본에서 자본주의가 형성하는지’로 넓혀서 고찰한다. 3장은 왜 일본이 군사적 의존도가 높은 식민지제국으로 돌진했는지를 다룬다. 4장은 정교분리의 유럽 종교를 ‘기능주의적 등가물’로 도입한 일본 천황제의 탄생과 전개, 그리고 붕괴를 살핀다. 이로서 미타니는 역사 인식을 둘러싼 정치지도자의 주체성 결여가 전문가 집단의 기능적 권위의 확대로 이어져, ‘토의에 의한 통치’를 정지시키고 ‘입헌적 독재’로 나아갈 위험성을 현대 일본 정치에서 읽고 있다.

    “앞으로 일본의 권력 형태는 ‘입헌적 독재’ 경향,
    실질적으로는 ‘전문가 지배’로 강화 될 것이다”

    1.

    “일본의 근대는 19세기 후반 최선진국으로 국민국가 건설에 착수한 유럽 열강을 모델로 형성되었습니다.” 이 책의 방향을 대변하는 문장이다. 저자인 미타니 타이치로는 유럽으로 대표되는 서양 근대와 비교로서 후발국 일본의 근대화 과정(형성, 발전, 위기 그리고 종언)을 살핀다. 저자는 19세기 말 월터 바지호트가 성찰한 유럽의 근대를 참조하면서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 천황제라는 주제로 제국 일본이 근대의 붕괴로 돌진했던 이유를 곱씹는다.

    저자는 역사 인식을 둘러싼 정치지도자의 주체성 결여가 전문가 집단의 기능적 권위의 확대로 이어져, 이것이 ‘토의에 의한 통치’를 정지시키고, ‘입헌적 독재’로 나아갈 위험성을 현대 일본 정권에서 읽고 있다.

    2.

    저자의 총론적 연구는 각론의 좁고 깊은 분석을 통해 확보한 지식을 바탕으로, 저자 자신의 50여 년에 걸친 학문 인생을 뒤돌아보며, 통사적으로 펼치는 향연으로 일본 근대의 현재적 의미를 찾고자 하는 열의가 돋보인다.

    먼저 정당정치로 ‘토의에 의한 통치’와 관련된 주제다. 저자는 바지호트가 영국 근대의 정치 분석을 통해 획득한 ‘토의에 의한 통치’라는 개념을 원용한다. 아시아적 특성으로 거론되는 동양적 전제주의와는 다른 결로 ‘문예적 공공성’, 에도 막부의 ‘권력 억제 균형 시스템’을 일본 전통에서 석출하여 ‘토의에 의한 통치’의 맹아로 봤다. 막번체제의 세력균형시스템을 살펴서 메이지 헌법 하 권력분립제가 의회제적 정당정치로 이어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저자는 막부를 무너뜨린 번벌정치가 실질적인 정당정치의 출현을 가져왔고, 나아가 본격적인 입헌정치로의 이행을 끌어냈던 점을 살피며, 체제통합의 주체로서 막부, 번벌 그리고 정당정치의 위상을 자세히 분석한다. 이는 일본 정치사에서 ‘타이쇼 데모크라시’론의 한 축을 담당했던 저자의 청년기부터 이뤄진 연구가 바탕에 깔려 있다. 또 저자는 하라 타카시로 대표되는 입헌정치의 프로페셔널적 흐름과 요시노 사쿠조로 대표되는 입헌정치의 아마추어적 흐름에서 일본 근대 정당정치의 발전과정을 살펴본다. 저자는 ‘비권력 세계’에도 관심을 보이는 데, 책에서 메이지 시기 후쿠자와 유키치, 타이쇼 시기 요시노 사쿠조, 전후 마루야마 마사오라는 정치교육자들에 대한 관심으로 잘 나타난다.

    저자는 정당정치와 군부의 관계를 분석하면서, 일본 근대 정당정치의 몰락과 군국주의의 대두가 일본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갔던 점에 주목한다. 저자는 로야마 마사미치가 제기한 ‘입헌적 독재’를 비판하며, 이를 정당정치의 부정이자 ‘토의에 의한 통치’의 상실로 보았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 즉 일본 근대 자본주의의 형성, 성장, 몰락을 다룬다. 후발주자인 일본 근대 자본주의는 선진 자본주의 열강의 경제적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자립적 자본주의’로 출발했다. 자립적 자본주의는, ① 정부 주도 ‘식산흥업’ 정책의 시행, ② 근대적 조세제도의 확립으로 국가자본의 원천 확보, ③ 자본주의에 필수인 노동력 육성, ④ 대외평화의 확보를 조건으로 성립한다고 저자는 파악한다. 청일전쟁으로 자립적 자본주의를 확립한 근대 일본은,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국제적 자본주의로 이행했고, 이를 일본 근대가 세계 자본주의의 한 멤버로 성장한 상징으로 보았다.

    저자는 국제적 금융가와 연결된 일본의 정치, 경제 지도자의 형성과 몰락을 통해서 일본 근대의 국제적 자본주의가 붕괴하는 과정을 성찰한다. 세계 경제가 대공황을 거치면서 국제적 자본주의의 몰락과 지역주의를 표방하는 지역 내 패권 경제구조로 전화하는 과정을 고찰하면서, 일본 근대 자본주의는 국가자본의 시대이자 자유무역이 종말을 고한 전쟁의 시대가 되었다고 평한다.

    국제적 자본주의 문제를 고찰하며, 저자는 일본의 타이쇼 데모크라시가 미국의 데모크라시의 한 모습이라고 보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으로 전개된 미국화(americanization)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였고, 이것이 일본에도 나타났다고 보았다. ‘타이쇼 데모크라시’를 일본에 한정된 로컬적 현상이 아니라 동시대적인 세계사적 움직임이었다고 보았다.

    세 번째로, ‘공식적 식민제국’으로 내달린 일본과 식민지와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자유무역 제국주의’로 ‘비공식제국’을 모색한 세계적 패권국인 영국을 대표로 한 유럽의 근대와 달리, 비용이 많이 드는 군사적 의존도가 높은 ‘공식제국’으로 돌진한 일본 근대의 모습을 성찰한다. 저자는 당시 일본이 선진 식민지제국에 필적하는 실질적인 국제사회의 멤버가 아니었다고 파악한다. 따라서 일본의 식민지제국 구상은 유럽 열강과 달리, 경제적 이익에 대한 관심보다 자국의 군사적 안전보장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 건설 방향은 자국의 국경선에 직결되는 공간의 확대라는 형태를 띠었고, 이는 일본 내셔널리즘의 발전이 제국주의와 결합한 특성이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식민지 문제를 필연적으로 유발하는데, 제국의회가 아닌 정부, 군부 그리고 추밀원의 영향권 하에서 제정되고 입법되었던 식민지 입법은 결국 제국 헌법 체제와 모순 관계를 형성했다. 이는 ‘이법구역’ 혹은 ‘특수통치구역’으로서 식민지의 존재가 비입헌적 정치공간으로 남게 되는 문제와 관련되는데, 이는 ‘동화’를 둘러싼 방향성 즉, 식민지의 ‘자치’와 ‘참정권’ 문제로까지 확산되는 것이었다.

    한편 저자는 미국, 영국이 중국 내셔널리즘과 타협을 선택한 것과 달리, 제국주의적 입장에서 중국과 대립을 견지했던 일본의 선택이 미국 및 영국과의 국제협조 정책을 포기하고 전쟁으로 나가게 하는 요인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는 제국주의를 대체할 지역주의의 대두와 깊은 관련이 있다. 저자는 제국 일본이 정당화하며 확대한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지역질서’로서 지역주의가 아시아 여러 민족의 내셔널리즘 저항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고찰하고 있다. 저자는 국제질서 속에서 지역주의와 제국주의의 관계성에서 식민지 문제를 파악함으로써, 이것이 일본이 패전한 이후 미국 중심의 동아시아 지역주의로 전화하는 계기를 찾고자 했다.

    네 번째로, 사상사적 측면이다. 정교분리를 전제로 한 유럽 근대의 종교와 달리, 정교가 결합한 ‘근대천황제’를 둘러싼 문제를 다룬다. 유럽 근대의 기독교적 전통과 대비해 일본 천황제를 유럽 기독교의 ‘기능주의적 등가물’로 파악해, 서양 근대에서 기독교가 한 역할을 일본 천황제에서 찾았고, 이 관계성에서 일본 근대의 사상사적 천이를 이해했다. 기능주의라는 근대 합리성을 비합리적인 종교로 설명하는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이렇듯 일본 근대천황제의 탄생과 전개 그리고 붕괴 과정을 종교와 분리된 정치 공간이 부재하다는 측면에서 파악했다.

    전체를 아우르는 키워드는 ‘기능주의적 등가물’이라는 개념인데, 이는 일본 근대가 유럽 및 미국의 근대를 수용하는 방식을 특징지었던 개념이었다. 구미 사회와 달리 일본 사회는 내용적 변동보다는 형식적 근대성을 중시했지만, 그럼에도 상호침투성은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일본 근대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파악하겠다는 것이 저자의 목표 중 하나로 보인다. 이는 화혼양재, 동도서기, 중체서용이라는, 동아시아가 서양 근대를 수용했던 방식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는 일본 강좌파적 해석과 일정 정도 조응 관계를 이루기도 한다.

    3.

    일본 근대에 대한 이해가 우리나라의 근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건 중 하나다. 이런 의미에서 균형 잡힌 일본 근대에 대한 총론적 파악은 매우 필요한 작업이다. 일본 근대의 역사는 일본 제국주의 혹은 일제로 상징되는 것처럼, 우리나라를 침략하며 식민지로 지배했던 역사이기도 하다. 따라서 침략자로서의 이미지가 강력하게 남아 있고, 이는 현재에도 과거사 문제라는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일본과의 역사 대화를 통해 양국 사이의 과거사를 풀어가기 위해서도 우리는 일본 근대에 대해 파편적이고 각론적인 이해를 넘어 이를 포괄할 수 있는 총론적인 이해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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