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양산이 죽으면 인천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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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27일 01: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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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꽁이 그거 이쪽에서 ‘맹’하면 저쪽에서 ‘꽁’하고 우는 거 맞죠?”
    “응”
    “맹꽁이 그거 새인가요?”
    허-걱! 23살 학생과의 대화였다.

    서울서 나고 자란 또 다른 젊은 엄마.
    “어! 맹꽁이가 그냥 바보 같은 사람 칭하는 말이 아니라 동물 이름이었어요?”
    두번 다 배꼽잡고 웃었지만 웃을 일이 아니었다. 이들을 탓할 일도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농토는 농약에 오염되고 하천은 콘크리트로 덮였다.

    길에는 아스팔트가 깔리고 건물은 회색 콘크리트에 울긋불긋한 페인트 칠한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속에 어려서부터 늘 함께 놀던 추억의 생명들도 묻혔다. 그리고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은 산도 동물원도 아닌 ‘마트’에 가서 토끼와 사슴벌레를 사고 죽으면 쓰레기통에 버리는 세상이 됐다.

    그런 아이들이 도심에서 자연을 호흡하고 시름에 겨운 서민들이 돈안 들이고 쉴 수 있는 곳이 작은 산들이다.

       
      ▲ 계양산 골프장부지 중심부인 목상동 소나무 숲에서 골프장을 막기위안 방안을 논의하는 시민들 (사진=인천녹색연합)  
     

    인천에는 계양산이 있다. 한강 이남 금강 북쪽을 지칭하는 한남금북 정맥이 속리산부터 뻗어나와 계양산까지 이르렀다. 먼 옛날 강화 마니산에서 떨어져 나온 아우산이 안남산(계양산의 옛이름)이다. 지금도 삼한시대 산성터가 남아있다.

    계양산에서 인천의 철마산, 원적산, 호봉산, 만월산, 거마산, 관모산, 문학산, 청량산이 에스(S)자를 이루며 뻗어있는 모양새가 인천의 지형이다. 모두들 작은 산들이지만 주민들이 아침 출근 전, 혹은 주말에 잠깐 짬을 내서도 갈 수 있는 곳이다. 인천 도심 한가운데 작은 ‘녹색 섬’을 이루고 있는 만월산에서는 올해도 반딧불이를 볼 수 있었다.

    계양산 밑에서 6년을 살았던 나는 계양산 정상에서 인천이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지를 처음 느꼈었다. 90년대 초반 며칠동안 쏟아진 비끝에 맑게 개인 어느 날 계양산에 올랐다. 탁 트인 정상에서 본 인천 앞바다는 너무나 예쁜 호수였다.

    입시공부 때 많이 들었음직한 리아스식 해안이 멀리 산위에서 볼때는 앞바다의 섬과 조화를 이루면서 조각배 한척 떠 있는 호수처럼 보인 것이다. 너무 아름다웠던 그 광경은 지금도 내 마음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즈음 롯데그룹이 계양산을 위락시설로 개발하려는 것을 인천시민들은 막아냈다.

    그로부터 15여년이 흐른 지금 계양산에 올라 너무나 많이 변한 인천을 목격한다.
    인천 앞바다는 더 이상 호수가 아니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 일직선이 그어졌다. 각종 매립공사로 지도에서 확인하는 인천의 해안선은 ‘ㄴ’자가 됐다. 수많은 농토들은 매립돼 성냥갑을 빽빽히 세워놓은 모양의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다. 당시에 쭉쭉 뻗어있던 4공단과 그 인근의 공장굴뚝들도 이제는 몇 개 남지 않았다.

    그래도 계양산은 말없이 그자리에 서서 변해가는 인천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어디 계양산이 인천의 풍광만 지켜보고 있을까? 인천사람들의 한과 설움과 저항까지 봐왔다. 고려시대 한량 이규보는 계양산에서 시를 읊었고, 조선 백정 임꺽정은 계양산에서 무술을 배웠고 스승으로부터 지금으로 치자면 ‘민중사상’을 배웠다.

    가까이 87년 6월 항쟁 때는 경찰의 폭력진압에 쫓긴 시위대가 계양산 산줄기를 따라 도망을 치면서 인근 파출소를 ‘타격’했고, 대우자동차 정리해고자들은 산곡동 성당 농성을 접을 때 눈물을 흘리며 계양산 정상을 올랐다.

    계양산 정상에 오르면 과거 한 고을이었던 부평, 부천이 분지처럼 산에 둘러쌓여 있다. S자형 산줄기 넘어로는 인천이, 북쪽으로는 김포평야와 한강 넘어 서울 북한산까지 보인다. 몸을 왼쪽으로 틀면 바다건너 강화도도 보인다.

    계양산 중턱 하느재 고개를 넘어서면 산중턱으로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산책로처럼 숲속 오솔길이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가면 아름드리 소나무가 10미터 이상씩 쭉쭉 뻗어있다. 골프장이 지어지면 그곳은 골프장 가운데쯤 된다고 한다.

       
      ▲ 계양산에 골프장을 지어야 한다는 의견서를 낸 계양구가 세워 놓은 팻말  
     

    지금 계양산이 위기에 처했다.
    계양산 북사면(김포방향) 아름드리 소나무가 솔향을 은은히 풍기는 그곳에 롯데측은 골프장을 짓겠다고 하고 인천광역시와 계양구청은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해 골프장을 허가해 주려고 하고 있다.

    “또 골프장이야? 아휴 여기도 골프장, 저기도 골프장. 왜 어른들은 여기저기에 골프장을 짓지?”
    청라경제자유구역 부지의 골프장을 반대하느라 라면박스를 뜯어 개구리며, 새들을 그려 넣고 여섯살짜리 동생과 엄마(김은영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환경위원장)와 1인 시위를 했던 초등학교 2학년생 다함이가 계양산을 오르면서 중얼거린 푸념이었다.

    이렇게 어영부영 골프장 들어서는 것을 막아내지 못하고 잘려나가는 것을 봐야 하나. 걱정만하고 무기력하고, 그러나 이면에는 ‘인천에서 20여년 활동한 ‘노련한 또는 노회한 활동가답게’ 대충 관성적으로 임하고 있는 내게 10월25일 오전 문자 한통 날아왔다.

    ‘보름 간사가 계양산 소나무 숲 나무 위에서 농성을 하고 있어요.’
    까무잡잡하고 키작은 비혼여성 보름(본명 신정은 만28세, 인천녹색연합 상근활동가)을 난 가끔 ‘아가’라고 불렀다. 화장기 없는 앳된 얼굴에 웃는 모습이 아기같아서 그렇게 불렀는데 옹이하나 없이 쭉 뻗은 소나무 위에를 어떻게 올라갔지? 밤에 무섭지는 않았을까? 춥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계양산을 오르는 발길이 무겁다.
    북사면으로 들어서 산책로처럼 난 등산로를 따라 가는데, 밟히고 밟혀서 ‘빤질빤질’ 윤이 나는 그 길은 힘겹게 현대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무거운 등판 같다.

    호랑나비류의 애벌레들이 나뭇잎으로 제 몸을 싼 채 고치를 튼채 산초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겨울을 준비하고 있고, 낙엽 지기 시작한 국수나무 사이사이에는 올해 사용하고 버린 붉은머리오목눈이 – 우리가 흔히 뱁새라고 부르는 작고 예쁜새다 – 둥지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 ‘계양산이 죽으면 인천이 죽는다’ 12미터 높이의 소나무 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잇는 신정은 인천녹색연합 간사 (사진=인천녹색연합)
     

    나무들이 잘리거나 뽑혀나가면 새들이 둥지를 틀지 못하고, 곤충의 먹이식물도 없어진다. 모두들 사라질 것이다. 말등메이산은 통째로 없어진다. 경인운하를 위해 파낸 흙으로 청라 갯벌을 매립했듯이 말등메이산을 깎아낸 흙은 가까운 어느 곳에 갯뻘 매립용으로 팔아먹을 것이다. 파괴가 또 다른 파괴를 부추기는 것이다.

    골프장 부지에 포함되는 등산로를 30여분 동안 걸어가면 솔향이 풍기는 소나무 숲이 나온다. 지금은 굴포천 방수로로 절단이 났지만 계양천 발원지였던 냇물을 흐르고 있어 버들치, 맹꽁이, 애반닷불이, 늦반딧불이가 살고 있고 벌레잡이 식물인 통발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습지도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천연기념물인 소쩍새와 부엉이도 있다.

    쭉 뻗은 나무 꼭대기에서 농성을 벌이는 보름을 쳐다보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10여년을 넘는 선배는 미안함이 앞선다. 선배들이 파괴하고, 보존하지 못해 후배들이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우리 부모님들이 먹고 사는데 급급해 파괴하는지도 모르고 파괴한 하천을 복원하기 위해 수백억의 예산을 쏟아 붓는다. 이제는 더 많은 유흥과 돈벌이를 위한 개발로 파괴한다. 우리가 지키고 보전하지 못한다면 별로 멀지않은 훗날 우리 아들, 딸이며 후배들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 한다. 그만큼 그들이 누려야할 복지비용도 줄어드는 것이고.

    마음속으로 되묻게 된다. 우리의 후배, 아들, 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사진제공 : 인천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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