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에 무뎌지는 사회를 거부한다
    [기자수첩] 김용균 2주기,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
        2020년 12월 10일 04: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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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2주기가 사흘 지난 2016년 4월 19일, 부산지하철과 서울도시철도공사 기관사 2명이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썼다.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선 그 전에 이미 8명의 기관사가 자살한 상황이었다. 세상을 떠난 기관사들 모두 우울증, 수면장애,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의 질병을 가지고 있었다. 지하 근무와 1인 승무제 등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이었다.

    그해 5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청년이 전동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죽었다. 협업이 중요한 안전업무를 외주업체에 넘긴 탓이 컸다. 인력 부족으로 ‘2인 1조’ 안전 매뉴얼이 지켜지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이 사고를 ‘구의역 참사’라고 불렀는데 전에 볼 수 없던 충격적인 일은 아니었다. 이미 성수역과 강남역에서 같은 사고로 노동자가, 사람이 죽었었다.

    그 다음 달이었다. 삼성전자 에어컨 수리기사가 안전장치 없이 3층 빌라 건물 외벽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던 중 추락해 사망했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협력업체 소속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금일 처리건 매우 부진함/ 늦은 시간까지 1건이라도 뺄 수 있는 건은 절대적으로 처리”. 그가 병원에 이송된 후에도 회사는 실적을 압박하는 수 건의 문자 메지시를 보내왔다. “비 온다고 에어컨 다음날로 넘기지 말라. 무조건 조치할 수 있으면 조치 당부 드린다”는 동료 수리기사가 받은 회사의 메시지는 위험을 감수하라는 지시였다.

    2017년 2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이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와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해 11월엔 고 이민호 군이 생수공장에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학생을 값싼 노동력으로만 치부한 자본의 논리와 취업률이라는 성과에만 집착한 학교가 내몬 지옥에서 어린 아이들은 죽어갔다.

    사진=노동과세계

    2018년 12월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했다. 원청은 위험 업무를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떠넘겼고, 인건비 감축을 위해 ‘2인 1조’ 안전 매뉴얼은 지켜지지 않았다.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의 원인은 여전히 현장에 그대로 남아있다.

    또 어떤 날엔 우편물을 배달하는 우정사업본부 집배노동자가 과로사하거나 자살했고, 대형 택배사에서 일하는 택배노동자는 길거리에서 피를 토했다. 배를 만드는 조선소 노동자와 건설노동자는 날마다 떨어지고 찢겨 나갔다. 발전소에서 일하는 화물차 노동자는 자신의 업무가 아닌 업무를 하다가 떨어지거나 무거운 물체에 깔려 죽었다.

    이렇게 수많은 죽음들과 마주했던 날들을 떠올려보니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달랐던 것 같다. 얼마 전 남동발전 영흥화력 화물노동자의 죽음을 들은 나는, 2016년 지하철 기관사의 죽음을 마주했던 때와 비교하면 지나치게 담담했다. 잔인한 일이다.

    죽음에 무뎌지는 것은 나뿐일까. 코로나19 사망자보다 일하다 죽는 사람이 더 많다고 제 아무리 외쳐도 여론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보다 정치권력의 게임 퀘스트 깨기와 같은 공수처나 검찰개혁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일을 막는 것보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찍어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돼버린 시대다.

    정치는 더 무감각하다. 민주당은 국회에 야당이란 존재하지 않는 듯 공수처법 개정안을 밀어붙이지만, 죽음의 구렁텅이에 있는 노동자를 구할 수도 있는 중대재해법은 “더 깊게 논의해야 할 법안”이라고 말한다. 안전 의무를 지키지 않아 반복적으로 중대한 산재 사고가 벌어지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감옥에 보내는 게 ‘과잉입법’이라는 이유에서다. 재계도 마찬가지다. 왜 산업현장에 있지도 않은 ‘우리 회장님’이 노동자의 잘못으로 벌어진 사고에 책임을 져야 하냐는 거다. 그들은 안전 비용을 아껴 회사가 더 많은 이윤을 내고 있다는 이면의 진실은 말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겨울 국회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아들을 떠나보낸 지 2년이 흐른 지금 중대재해법 제정을 위한 국회 농성 중이다. 노동자들이 하루에 7명씩 죽어 나간다고 울고 호소해도, 여당은 재계를 포함한 국민 모두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며 중대재해법의 처리를 미루고 시간을 흘려보낸다.

    정부와 여당이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동안 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고 불구가 된다. 또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가정이 파탄난다. 그러나 경영자와 사업주는 아예 처벌 받지 않거나 그들에겐 푼돈 수준인 벌금을 내고 평온하게 살아간다.

    중대재해법이 노동자들의 그 모든 죽음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신앙적 믿음은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 기업은 노동자의 죽음을 예방할 의무가 있다는 그 상식적인 원칙을 우리 사회에 천명할 수는 있다. 그것은 수많은 죽음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첫 걸음일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죽음이 일상이 아닌 사회를 원한다. 죽음에 무뎌지는 잔인한 사회를 반대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 안전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를 죽인 기업과 경영자를 처벌하라.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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