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사노위, 공공기관 임금체계
    직무급 도입 추진 합의···로드맵은 없어
    공공, 보건의료노조 "양극화·격차해소 방향성 전무"
        2020년 11월 27일 02: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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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공공기관 임금 직무급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호봉중심’의 기존 연공급제 임금체계를 ‘직무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인데, 직무급제 도입의 핵심 목적인 ‘양극화 해소와 공공기관 간 임금격차 해소’가 합의안에 포함되지 않은데다, 구체적 내용과 로드맵은 모두 개별 기관에 맡겨둔 터라 혼란이 예상된다.

    경사노위 공공기관위원회가 지난 25일 발표한 합의문을 보면 ▲객관적 직무가치가 임금에 반영되는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노력 ▲직무중심 임금체계 개편은 획일적·일방적 방식이 아닌 기관별 특성을 반영해 개별 공공기관 노사합의를 통해 자율적·단계적으로 추진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합의안에 포함된 2개 조항은 큰 틀에서 다른 내용은 아니지만 ‘객관적 직무가치가 임금에 반영되는 임금체계 개편’은 노사정 논의를 통해 로드맵을 마련하자는 것이고, ‘직무중심 임금체계’는 직무급제 도입이라는 결과 그 자체에 방점을 찍고 있다. 전자는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계가 요구하는 내용이고, 후자는 기획재정부가 뜻이 반영돼있다.

    노동계는 직무분류, 직무가치를 어떻게 판단할지 등 구체적 사안부터 노사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방식이라면 임금체계 개편 과정에서 노동자 직접 참여 등으로 다양한 이해를 반영할 수 있고 기관 간 격차 해소를 위한 산업별 임금체계 논의의 물꼬를 터 직무급제의 본 목적인 ‘사회적 임금’의 목표도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 또 사측의 일방적인 임금체계 개편으로 인해 예상되는 저항도 일정 부분 막을 수 있다.

    기획재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인 쪽은 ‘직무중심 임금체계’다. 기존 임금체계의 뼈대가 됐던 호봉제를 기본급부터 직무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그 취지인데, 직무분류와 가치 평가 방식 등 주요 내용과 도입 방식은 모두 개별 공공기관 내 노사합의에 맡기고 있다.

    경사노위는 이번 합의에서 기재부의 뜻이 반영된 직무중심 임금체계는 ‘추진’이라고 명시에 그 의지를 명확하게 밝혔다. 반면 구체적 로드맵을 노사정이 함께 마련하자는 의미의 ‘객관적 직무가치가 임금에 반영되는 임금체계 개편’ 조항은 ‘노력’이라고만 명시해 합의의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내용과 로드맵은 미흡하거나 부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보건의료노조는 이 합의안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직무급제의 핵심 목적인 양극화와 공공기관 간 격차해소라는 방향성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노조는 직무급제를 두고 내부 이견이 존재하긴 하지만 ‘격차해소’ 원칙만 분명히 한다면 직무급제를 포함해 다양한 임금체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고 했었다.

    공공부문 최대 산별노조인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임금체계 개편의 원칙과 방향을 상실한 합의”라며 “공공부문에서 임금제도 개선의 목표와 방향은 양극화·격차해소가 돼야 한다는 것과 기업별로 임금의 큰 격차 현실을 고려할 때 앞으로의 방향은 초기업 임금체계로 발전해가야 한다”며 “그러나 이러한 임금체계 개선의 방향은 이번 합의 어디에도 담겨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노조도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의 목표와 원칙을 담지 못함으로써 정당성을 상실한 합의”라며 “사회적 불평등 해소,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 공공기관 격차 완화 등을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의 핵심 목표로 제시해왔는데 이번 합의문에는 일언반구도 언급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직무급제의 방향성을 분명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개별 공공기관에 합의를 맡기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앞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추진 당시엔 상시업무와 생명·안전업무 종사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큰 목표가 있었음에도 노사 합의 과정에 상당한 진통이 뒤따랐다. 임금체계 변경은 임금, 노동조건, 처우 등은 예민한 문제라 원칙 없이 추진했다간 더 큰 혼란만 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노조는 중장기적 협의기구를 꾸려 직무급제의 내용, 추진 방식 등 로드맵은 물론 기관 간 격차해소를 위한 노정·산별교섭을 추진하자고 제안했으나 공공부문 예산을 틀어쥔 기획재정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재부는 직무급제의 대원칙과 구체적 로드맵도 없이 직무중심 임금체계 개편을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다. 실제로 기재부는 합의가 도출되기도 전에 직무급제 변환을 경영평가 기준에 포함시켰다. 경사노위 합의와 무관하게 직무중심 임금체계를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경사노위 합의 과정을 잘 아는 노조의 한 관계자는 “경영평가에 직무급제 전환을 포함하면 공공기관 경영자들은 당연히 경영평가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당장 임금체계 변환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보건의료노조는 “‘획일적·일방적 방식이 아닌 기관별 특성을 반영해 개별 공공기관 노사합의를 통해 자율적·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이번 합의를 무색하게 하는 행태”라며 “결국 노동계가 제시한 임금체계 개편의 목표와 원칙을 무시한 채 정부가 획일적이고 일률적으로 공공기관 임금체계를 관리·통제하기 위한 명분쌓기용 합의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고 질타했다.

    직무급제 논의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시작됐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연공서열대로 임금이 올라가는 구조는 옳지 않다”며 “새로운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직무급제는 박근혜 정부의 ‘성과연봉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국정과제로 선정돼 추진돼왔다. 노조도 기존 호봉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데엔 일정 정도 공감대를 이뤘다.

    그러나 양극화와 격차해소 대원칙 실종, 다양한 이해관계자 참여 미보장 등과 같은 현 상황이 계속될 경우 자칫 박근혜 정부의 성과연봉제 반대 투쟁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보건의료노조 한 관계자는 “노동자들은 임금체계를 변경하는 것에 불안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노조가 임금체계 개편 논의를 해야 하는 필요성에 공감한 이유는 양극화와 공공기관 간 격차 문제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적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대원칙은 빠진다면 어떤 임금체계가 나올지 예상할 수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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