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긋할 수 없는 농한기
    [낭만파 농부] 모두가 '고난의 행군'
        2020년 11월 26일 10: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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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보니 농한기다. 농한기 기다리는 낙으로 농사짓고, 농한기 없으면 무슨 재미로 농사짓나… 하는 그 농한기 말이다. 처음 겪는 대흉작에 기가 팍 꺾이고, 코가 쑥 빠져 스스로 ‘이 판국에 무슨 얼어 죽을 농한기냐!’ 싶었더랬다. 줄어든 수입을 벌충해야 목구멍에 풀칠을 할 것이고, 그러자면 뭐가 되었든 또 다른 밥벌이를 찾아 나서리라 다짐하던 터였다.

    가을걷이 끝나고, 나락 말려 방아 찧고, 밀려드는 마수걸이 햅쌀 주문에 사나흘을 밀봉작업하고, 상자에 포장해 택배 보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보냈다. 그 뒤로는 쌀 주문도 띄엄띄엄 뜸해지고 비로소 한숨 돌리게 된다.

    해질 무렵

    그제야 울긋불긋 물든 앞산의 단풍이며, 된서리 맞아 시들어버린 남새와 풀꽃 따위가 눈에 들어온다. 해질 무렵 어떤 날은 붉게, 어떤 날은 시퍼렇게 물든 앞산 노을을 폰카에 담아 동네톡방에 올리는 여유도 부려본다. 그러다가 문득 아득한 시절의 기억이라도 떠오를라 치면 그 감흥을 가누지 못해 기어이 내지르고 만다.

    굴뚝에선 저녁밥 짓는 연기 피어오르고
    검둥개는 컹컹
    동네 고샅에 울리는 아이 찾는 엄마 목소리

    누군가 대거리로 추임새라도 넣으면 잠깐이나마 추억이 섞이기도 하는 법.

    어려서 막걸리집, 내 키 높이 타일 빠 어른거리네요.
    딸래미 왔다고 막걸리 안주 접시에서 깎은 고구마며 삶은 메추리알 집어 주시던 것들.

    사는 게 다 그 모양이지. 밥벌이에 나서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벼르고 했지만 바쁜 일 끝나 느긋해지고 나니 막상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돈 안 되는 일은 왜 이리 생겨나고 핑계가 끊이지 않는지.

    김장은 그나마 생산적인 축에 속한다. 서울 살 적엔 어머니가 동네 아낙들과 품앗이로 담은 김장김치를 택배로 넙죽넙죽 받아먹기만 했다. 응당 그러려니, 고마운 줄도 모르고 참 낯짝도 두꺼웠지. 귀농해서는 어머니 댁과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은 덕분에 그래도 염치가 생겨 배추, 무 뽑아 빠개고, 절이는 따위 허드렛일로 체면치레.

    김장 담그기

    그 어머니 이제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당최 기력이 없으니 양념들 비율 맞추고, 작업공정 감독하는 선에서 그치고 실제 작업은 ‘애들’ 몫이 되었다. 절인 배추 건져내 씻고 물기 빼고, 양념 버무리고, 김장속 치대다 보면 해가 저문다. 그렇게 이틀을 꼬박 매달지지만 ‘한 해 양식’을 장만했으니 그리 밑지는 장사는 아닌 듯도 싶다.

    물론 세상살이라는 게 늘 벌기만 하고 생산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씨 뿌리고 가꿔서 거둬들이고 갈무리 하고 나면 그거 야금야금 빼먹으며 겨울을 나는 게 자연의 섭리이기도 하고. 그게 바로 농한기 아니던가. 버는 것 없이 쓰기만 하고 빈둥거려도 좋은 시절.

    그러나 맘 편히, 느긋하게 빈둥거릴 처지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더욱이 코로나 국면, 겨울철로 접어들면서 다시 대유행 조짐마저 보이는 상황.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안 그래도 모두가 ‘고난의 행군’ 중이다.

    이 와중에 국가권력은 고단한 인민을 등쳐 대놓고 그들 스스로의 사익을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차별금지법, 낙태죄 폐지 같은 자신의 공약이나 전향적 입법은 발을 빼기 바쁘고, 난데없는 노동법 개악과 가덕도 신공항 추진 등 오직 정략적 행보로 일관하고 있다. 이제는 이름도 희미해진 ‘K-방역’이라고, 주요국가의 코로나19 대응실패에 따른 반사이익에 취했는지 너무 막 나가지 싶다. 손을 대는 족족 상황을 덧낼 뿐인 주택정책과 막장으로 치달은 뻔뻔한 권력투쟁에 인민의 피로감은 참기 힘든 지경에 이른 듯하다. 이런 판국이니 ‘빚투’(빚내서 주식투자)니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 부동산투자)이니 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지 모르겠다. 코로나 블루에 더해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간다.

    시골구석에 처박힌 촌부라고 예외가 아니다. 안 그래도 ‘성인병’ ‘기저질환’ 딱지가 붙은 몸뚱이가 얼마 전부터 위험신호를 보내온다. 이런저런 수치가 치솟고 이곳저곳이 삐걱대는 거다. 안 되겠다 싶어 ‘운동’이란 걸 시작했다. 평생 안 하던 짓이었는데, 어디 매인 삶이 아니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걸 깨닫고 나서부터 바로 뒷동산을 오른다. 그렇게 땀을 내고 찬물샤워를 하고 나면 아주 개운하다. 그 맑은 기운으로 책을 집어 든다. 일주일도 안 되어 수치가 떨어졌다. 참 신기하다.

    다시 생각한다. 가위 누르는, 아등바등 매달려야 할 것 같은 그 밥벌이의 ‘밥’이란 무엇일까. 밥 대신 죽이면 안 될까. 그냥 농한기 모드로 가도 되지 않을까.

    뒷산에 올라 쳐다보는 경치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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