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노당-민주노총 반미외곬은 자승자박
    By
        2006년 10월 25일 12:33 오후

    Print Friendly
    노동부 장관과 10~13대 국회의원을 지낸 남재희 전 장관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남 전 장관은 월간 <헌정> 11월호(11월 초 발행 예정)에 ‘한국 노동운동을 안타까워한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민주노총이 보다 유연해질 것을 주문하는 한편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권유했다.

    그는 “노사정위가 필요 없다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지금 노조가 약체여서 그런 말을 하지 노사분쟁의 고조기가 되면 노사정위에서의 사회적 합의가 효용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주노총이 노선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강경 투쟁 노선을 늦추어 온건한 유연 노선을 택했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이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NL파에 대해서도 비판했는데 “(그들의) 극단적 주장에 다수 국민은 도저히 따라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남 전장관은 “일방주의적으로 세계를 호령하는 부시 대통령의 미국은 정말 수용하기 어렵”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중-러의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에 눈감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남 전 장관은 “(극단적 주장의 내용은) 민족해방이론에 따른 반미 외곬수이며 북과의 나이브한 ‘우리 민족끼리’이다”라며 “설혹 반미 운동의 변증법적 역학 작용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같이 이제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부분을 무겁게 차지하고 있는 주역들이 그럴 수는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 전 장관은 이 글을 통해 한국 기업과 정부의 반노조적 행태와 대기업 노조 그리고 노사간 사회적 타협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남 전 장관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레디앙> 독자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노동운동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보수 정치인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고 월간 <헌정>의 양해를 받아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한국 노동운동을 안타까워한다

    딱 한번 여러 명이 함께 노무현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난 일이 있다. 아마 그의 임기가 1년쯤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나는 몇 가지 의견을 말하며 그 중 한가지로 “요즘 사회 기강이 너무 풀어져 있어 걱정이 되는데 얼마간 조이는 듯 하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하였다.

       
    ▲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그랬더니 아마 내가 노동부장관을 지냈기에 그렇게 판단한 것인지 “노동계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런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라고 노동 분야로 좁혀서 말을 받는다.

    사회전반을 조이는 데에는 권력에 한계가 있다고도 했다. 사회의 불만 분출기에 법과 질서를 잡기 위한 권력과 사회 제 세력과의 관계론 같아 음미해 볼만한 과제로 여겼다. 사실 그런 대답이 나올만한 배경은 있다.

    13대 국회 때 노동위원회에는 노무현, 이해찬, 이상수, 이인제 의원 등 투사들이 포진하여 노동자들을 위한 열띤 주장을 하였었다. 그때 4선인 나도 그 분야에 관심이 있어 노동위에 자원해 있었으나 야당 초선들의 날카로운 공세에 여측으로서 아주 점잖게 대응을 하여 그들과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른바 87년 민주(노동)항쟁으로 세상이 바뀌기 전까지 역대 정권들은 경제발전을 위해서란 명분으로 계속 노동자를 억압해 왔고 노동조합운동을 탄압해 온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노동정책은 즉 치안정책이어서 노동청장이나 장관 가운데에는 경찰과 군 출신이 많았다.

    박대통령이 수출입국을 내세울 때부터의 억압이고 탄압이니 노사관계는 엄청나게 왜곡되어 왔었고 ‘전태일 사건’이 상징하듯이 노동자들은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렇게 장기간에 걸쳐 왜곡되어온 구조가 87년 항쟁 후 정상상태로 평형을 되찾는 데에는 역시 오랜 진통의 시일이 걸린다는 것은 자명하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쯤을 주먹구구식으로 잡아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셈법이라면 90년대 후반에야 그런대로 평형을 회복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소극(笑劇)적이라 할 이야기를 소개한다면, 우리나라 대기업을 거의 장악하고 있는 민주노총 세력이 매우 오랫동안 합법노조가 되지 못하고 ‘불법’으로 취급되거나 기껏해야 ‘법외(法外)’로 대접받는 것이다.

    그만큼 정권들은 억압적이었다. 김영삼 정권말기에 전국적인 ‘노동대란’이 있은 후이니 민주화의 속도가 노동계에서는 지체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면초가에 몰린 노동계

    그러나 87년 이후 10년이 지나고 또다시 10년이 지나는 오늘날의 상황이나 실정은 다르다. 노동계는 다른 이유에서 문자 그대로 사면초가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노동 쪽에는 불행하게도 세계화의 급진전으로 고용은 감소하고, 실업자는 급증하고 있으며 그나마 취업을 했다 해도 그중 37%쯤이 비정규직인 것이다.

    또한 노조의 조직률도 우리나라는 10%대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계속 하강 추세이며, 이미 지난날과 같은 전투성도 상실해 가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우리 노동계는 근래 추문이 잇달았다. 또 국민정서에 지나치게 어긋나는 과격 쟁의 행위도 빈발하였다.

    더구나 특히 민주노총의 경우는 대기업의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고임금이기 때문에 그들의 임금인상 투쟁은 결과적으로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귀족노조’의 자기욕심 채우기로 비추어졌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간의 경쟁은 있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때때로 불미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여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고 있다.

    지금 여론은 어느 쪽이냐 하면 노조에 비판적이다. 노동운동은 지금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주의 할 것은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여론’이라고 내세우는 때로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만 그냥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거대 언론이 당초부터 분명 노동운동에 부정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많은 연구가 보여주고 있다. 거대 언론이 대기업 소유이기도 하고, 또한 대기업 광고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도 하며, 대기업과 언론인 사이에 유착관계가 끈끈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시각을 바꾸어 보아, 기업 측의 행태는 과연 정상적인가 하는 문제도 고려해야한다. 언론에 보도되지 못한 숱한 노동애사(哀史)들이 사회엔 깔려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도 분쟁의 과격화의 배경으로 이해해야 할 줄 안다.

    당면해서는 최근의 이른바 ‘노사정 타협’을 둘러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간의 대립에 관하여 의견을 말해두어야 하겠다. 간단히 큰 대목만 설명한다면 기업 단위 복수노조 허용 문제를 연기하는 대신 노조 전임자의 임금을 기업이 부담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의 시행을 역시 연기하는 식으로 맞바꾸기를 하자는 이야기다.

    한국노총에는 중소기업들의 노조가 많아 전임자의 임금을 기업이 부담해주지 않는다면 당장 노조활동에 큰 지장이 있을 것이다.

    반면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은 ILO(국제노동기구)가 내세우는 대의(大義)이기도 하지만, 기업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되지 않을 경우 한국노총이 장악하고 있는 기업에 민주노총이 조직을 확장할 수가 없게 되어 민주노총으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이다.

    조직 확장을 놓고는 그 역의 경우도 있겠으나 활동역량에 비추어 민주노총 측의 불만이 크다고 하겠다. 그밖에 복수노조 금지는 유명 대기업에 있다고 알려진 ‘유령노조’란 도깨비들을 온존시킨다는 측면도 있다.

    최근의 ‘노사정 타협’은 그렇게 볼 때 원칙에는 어긋난 것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현실이라는 게 있다. 기업 측은 대부분 그 타협에 찬성하고 있다. 기업 가운데는 민주노총측이 주도권을 쥐고 있어 그것을 깨기 위해 복수노조가 필요한데 이번 타협대로라면 그런 일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불만인 곳도 있다는 보도이다.

       
     ▲ 제6차 노사정위 대표자회의 (2006. 7. 6) 
     

    이러한 얼마간 혼미한 상황에서 정부 측이 택하기가 용이한 정책방향은 타협을 수용하는 쪽일 것이다. 우선 대충이라도 타협을 시켜 비록 미봉책이더라도 사태를 봉합하는 일이다. 세상사는 대개 그렇게 하여 그렁저렁 굴러가기도(muddling through) 하는 것이다.

    노동문제를 생각할 때 역시 큰 세력이고 역동적 양상을 보이고 있는 민주노총에 관심이 더 쏠리게 된다. 민주노총 측에 의견을 말함에 있어서 다른 노동계의 권위를 잠깐 빌려야겠다. 김금수씨는 자타가 인정하는 노동운동의 대부(代父)격이다.

    그가 얼마 전 노사정위원장의 임기를 마치고 가진 고별 기자회견에서 의미 있는 쓴 소리를 하였다. ‘백조의 노래(swan song)’라 하여 서양에서는 백조의 마지막 노래를 미화하는 비유가 있는데 나는 그의 고별회견에 그런 무게를 두고 싶은 것이다.

    고별 회견은 지난 6월 20일에 있었으니까 최근의 ‘노사정 타협’ 이전이다. 그는 “민주노동당의 비정규법안 대응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하였다.

    “법안이 국회에서 본격 심의되기 전에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정부안에 대해 크게 부정적이지는 않았음. 그러나 막상 국회 교섭이 진행되니 민주노총을 의식해서 기존의 입장을 바꾸고 강경한 입장을 취해옴.

    나도 처음 정부안에 대해서는 파견 직종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꾼 것 등 서너 가지 문제점을 지적한 적이 있지만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안은 노동계 요구가 많이 반영된 것이고 일부 비정규직 단체들도 법안의 통과를 원하고 있는데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 눈치를 보며 법안 처리에 반대하고 있는 것임.”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했다.
    “현재 노동운동은 엄청난 위기임. 민주노총의 주요 간부조차 자기 조직의 목표를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음.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함. 이중 대외적 돌파구는 정책 참여임. 제도나 정책은 교섭 대상이 아님. 정책 참여를 한다면 현재로서는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는 것 밖에 없음.

    만약 정책 참여를 하지 않겠다면 총파업을 해야 하는데 이것도 잘 안되고 있음. 내년 선거를 앞두고 벌어질 주도권 쟁탈전에 사회적 대화가 이용되어서는 안 될 것임.”(노사정위 기록대로 임)

    완곡한 표현이지만 민주노총이 보다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엄한 충고이다. 사실 김금수씨는 노사정 위원장을 맡고 무던히 고민을 한 것 같다. 노사정간의 이른바 사회적 합의는 김대중 정부 임기 초에 한번 반짝했고 그 후로는 침체기에 빠져 들었다.

    노사정위가 필요 없다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지금 노조가 약체여서 그런 말을 하지 노사분쟁의 고조기가 되면 노사정위에서의 사회적 합의가 효용이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마치 불꽃이 살아있는 휴화산 같아 언제 다시 활화산이 될 지 짐작할 수 없는 것이다.

    김금수씨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민주노총이 노선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경 투쟁 노선을 늦추어 온건한 유연 노선을 택했으면 한다. 지금의 투쟁 노선은 밖에서 보기엔 계급투쟁 노선에 기운 것 같다.

    과연 지금 이 시대에 계급투쟁 운운이 유효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식자들 사이에서 결론이 난 것으로 안다. 지금 노동계급은 변화, 다양화, 축소 등으로 바뀌고 있으며 그 노동계급만의 계급투쟁으로 목적을 달성하기엔 사회 환경은 멀찌감치 가버려 있는 게 아닌가.

    마르크스는 경제학만이 아니고 전반적 학문에 있어서 그 방법론으로는 충분히 참고가 되지만 현실 경제나 정치에 관한 결론이나 처방으로는 이미 현실과 크게 유리된 것이다. 이미 1세기 반 가까이 지난 마르크스가 아닌가.

    다른 한편 민주노총(또는 많이 중복되는 민주노동당)의 흔히 NL파라고 하는 측의 극단적 주장에 다수 국민은 도저히 따라 갈 수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간단히 말하여 민족해방이론에 따른 반미외곬수이며 북과의 나이브한 “우리 민족끼리”이다. 긴 설명을 할 계제는 아니고, 미국이라고 물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좋은 미국’도 있고 ‘나쁜 미국’도 있다. 특히 일방주의적으로 세계를 호령하는 부시대통령의 미국은 정말 수용하기가 어렵다.

    민주노총-민주노동당 반미 외곬은 자승자박

    그렇다고 우리를 둘러싼 미-일-중-러의 국제정치적 역학관계(그 밀림의 법칙이 통하는 적나라한 힘의 세계)에 눈감을 수는 없다. 북에 있는 김정일 체제는 동포끼리라고 아무리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하더라도 이미 실패한 체제임이 입증된 게 아닌가. 세상 사람들을 웃기는 체제는 얼마 유지 될 수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평화와 생존을 추구한다면, 흔히들 너무 쉽게 사용하고 있는 말이지만, 용미(用美)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지 반미외곬수가 길일 수는 없는 것이다. 설혹 반미 운동의 변증법적 역학 작용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같이 이제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부분을 무겁게 차지하고 있는 주역들이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 비정규 노동자의 눈물

    대기업 노조의 특권화, 귀족화 문제는 너무나 알려져 있는 일이기에 말을 줄이는 게 좋겠다. 대기업 노조 쪽에서도 생각 있는 사람들은 반성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국민의 이해를 얻을 수 있고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하고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끝으로 요즘 신문에 등장하고 있는 이른바 뉴 라이트 노동운동에 대해 한마디 하겠다. 그러한 노선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형태를 갖추기 전에 정당들과 교섭을 하는 등의 정치적 편향을 보이고 있는 것은 실망스럽다. 한국노총이고 민주노총이고 어떻든 치열한 투쟁을 했고 꾸준한 노력을 통해 역사를 쌓아온 조직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참고로 서울대 <대학신문>(2006.9.25)에 학생 간부 김재천 군이 쓴 칼럼 <언론이 모른척한 포항지역 건설노동자>에서 약간 길게 인용해 둔다. 의미가 있는 글이라고 한다.

    “법적으로는 건설노동자와 하청업체 간에 직접 고용관계가 성립하는 것이 맞지만 원청회사인 포스코 건설이 사실상 노동자들의 근무여건을 결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원청회사가 공사단가를 지나치게 낮춰버리면 하청업체들은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시켜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건설업체들은 ‘하청 단가에 맞추려면 임금인상이나 일요일 유급휴가 등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 없으니 포스코 측에 직접 가서 말하라’고 하고 포스코 측은 “교섭 대상자인 하청업체와 협의할 일”이라고 발뺌했다.

    더구나 포스코 측은 건설노동자들의 파업이 합법적이었음에도 건설 현장에 대체 인력을 투입했다고 한다. 노동자들로서는 다단계 하청 사슬의 정점에 위치한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속사정을 보도하는 매체는 거의 없었다. 일부 인터넷 매체만이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을 뿐이고 주요 언론들은 대부분 모른척하며 불법 파업으로 몰고 갔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