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부도덕과 북한의 어리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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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25일 07: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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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이란 말은 흔히 히로시마로 이어진다. 그런데 우리에게 히로시마는 고통스러운 참화가 아니라 종종 해방과 연결된다. 일본을 항복에 이르게 함으로써 우리나라를 해방시킨 은인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원자폭탄은 이렇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많은 한국인에게 원자폭탄은 힘의 상징이고 해방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한국전쟁 때 맥아더가 만주에 투하하려 했던 원자탄, 박정희가 개발하려던 원자탄에 대해서도 “계획대로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북한에서 개발한 원자탄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유사한 맥락에서 접근한다. 북한을 위협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북이 핵이라는 강한 힘을 보유했으므로 우리도 그 힘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을 동포로 여기면서 미국에 적대적인 사람들은 북이 핵을 지닌 미국에 대항할 자위수단을 갖는 것이 잘못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원자폭탄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70% 가까운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핵에 대한 긍정적인 의식이 우리에게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히로시마를 해방과 연결시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히로시마를 기억하기도 싫은 고통, 어떻게든 벗어버리고 싶은 것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한국인 히바쿠샤들이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일본인에게만 피해를 준 것이 아니다. 일본인 피해자가 60만명, 한국인 피해자가 10만명이었다는 수치는 한국도 원자폭탄의 피해국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 히로시마 우라늄 – 암호명 Little boy
  농축우라늄 "Oralloy , 폭발력 TNT 15,000 톤
 

그런데 우리는 원자폭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생각할 때 이 점을 철저하게 무시한다. 한국 정부, 한국 정치인, 한국 지식인, 한국 국민 모두 이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지금 한국에서 히바쿠샤 1세, 2세, 3세가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데도, 다시 말하면 원폭투하가 현재 진행형인데도 무시로 일관되고 있는 것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피폭으로 죽는 사람의 숫자가 매년 3000명씩 늘어난다. 피폭 2세와 3세들이 대를 이어서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개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진짜’는 빼놓는다.

국제정치적 상황은 ‘진짜’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진짜’란 바로 원자폭탄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가져오는가이다. 우리가 정말 집중해서 생각하고 이야기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북한의 자위권, 미국의 목조르기, 제재, 포용 같은 언급들은 그 앞에서는 하찮은 것일 뿐이다. 원자폭탄은 다른 어떤 무기보다 부도덕한 무기다. 대량살상을 넘어서 2세와 3세에게까지 고통을 대물림하는 무기를 보유한다는 것은 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용납될 수 없다.

그러므로 미국이야말로 가장 부도덕한 국가이다. 그렇지만 그 부도덕을 따라하는 것은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미국이 부도덕하니 북한이 부도덕한 것도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또 어떤가?

원자폭탄을 보유한다는 것은 수많은 잠재적 히로시마, 나가사키를 생산하는 것이다. 북한은 생존을 위해서 재앙으로 이르는 길을 선택했다. 어처구니없는 착각이 아닐 수 없다.

핵무기 개발은 결코 생존을 가져오지 않는다. 북한의 재앙, 한반도의 재앙, 동북아의 재앙을 가져올 뿐이다.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평화적인 공생은 불가능하다. 오직 핵무기가 사용되기 전까지 불안과 초조 속의 삶만이 가능할 뿐이다.

한반도에서, 동북아에서 평화적인 공생과 번영이란 비핵화라는 조건하에서만 가능하다. 비핵화는 핵무기만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핵무기뿐만 아니라 핵 발전까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흑연감속로라는 발전시설을 이용해서 핵무기를 만든 사실, 일본이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된 플루토늄을 수십톤 쌓아두고 있다는 사실은 핵 발전이 지속되는 한 비핵화도 성취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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