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년 프랑스 대투쟁, 사르코지를 겨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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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2월 01일 05: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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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주 동안 공공운수연맹의 초청으로 프랑스 쉬드 철도노조의 두 활동가 미셸 데스마흐와 엠마누엘 비고가 한국을 방문, 철도노조를 비롯한 한국의 노동자들을 만나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고 갔다. 목수정씨는 통역자로서 나흘간 이들과 동행했다. 필자는 이들에게 전해들은 ‘생생한’ 얘기를 전하고 싶다며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프랑스 철도파업, 승자는 과연 사르코지였나?

지난해 가을, 사르코지 대 철도노동자의 대결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한국 보수언론들로 하여금 ‘사르코지의 뚝심, 승리’라는 제목으로 지면을 도배하게 하며, 신자유주의와 공공부문 축소 대세론을 떠벌이게 만든 열흘간의 프랑스 철도파업. 그 파업을 주도한 쉬드(Sud)철도노조의 투쟁에 대한 술회와 현상 진단은 사뭇 흥미진진하다.

“2003년 파업이 끝났을 때, 모든 노동자들은 지쳐 있었고, 절망했고, 낭패감에 빠졌지만, 2007년 11월 열흘간의 파업이 결국 승리를 거머쥐기 전, 중단되었을 때, 모든 노동자들은 가슴 속에 뜨거운 증오를 하나씩 품고, 다음을 기약하는 마음으로 일터에 돌아갔다.”

   
  ▲"우리들의 연금을 위한 총파업"을 내걸고 거리로 나선 노동자들.
 

오히려 지난 파업은 2008년 대대적으로 벌어질 사르코지 정부의 공세에 맞선 노동자들의 대반격을 위한 워밍업이었고, 파업현장에서 모두들 준비되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쉬드레일의 활동가 미쉘 데스마흐는 증언한다.

파업을 중단시킨 것은 투쟁 열기가 식은 노동자들이 아니라, 서둘러 정부와 협상을 벌이고자 했던, 몇몇 거대노조의 지도자들이었다. 쉬드를 비롯, 모든 노총의 철도노동자들이 파업에 동참(전체 철도노동자의 67%) 하였으나 결국, 각각의 노총들이 가진 정치의식에 따라 파업의 지속에 대한 의지에 균열이 생겨났던 것이다.

2008년 프랑스 대투쟁?

사르코지가 집권 후 가장 먼저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대상이 철도노조라는 사실은 매우 선명한 정치적 목적을 드러낸다. 가장 강력한 투쟁력을 자랑하는 철도노조를 꺾음으로써 이후 이어질 노동자들의 투쟁의지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열흘 간, 노동자들은 서로 내면에 꿈틀거리는 투쟁의 열정이 물꼬를 트기 시작함을 감지했다. 사르코지가 일찌감치 들쑤셔 놓은 방리유(대도시 외곽)의 청년들, 대학 사유화를 시도하는 정부에 반발하는 학생들까지 투쟁의 대열에 동참하면서, 투쟁의 계층적 확산도 이루어졌다.

2008년, 어쩌면 40년 전, 68때 그러했듯이 조직하지도 기획하지도 않은 자발적인 저항의 의지들이 사회 전계층에서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올 수도 있음을 이들은 감지하였다고 술회한다. 서른 중반의 엠마누엘 같은 노조활동가들은 오히려 뒤에서 이 혈기왕성한 청년들의 과격한 시위를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을 정도.

시대는 이제 역전하기 시작했고, 사르코지는 뇌관을 제대로 건드렸다. 그는 선명하게 시장과 자본 중심의 세상을 표방함으로써 투쟁의 대열에 다양한 계층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당의 가면을 쓴 신자유주의자들이 좌파진영을 불구로 만들어버렸던 20여년 반역의 세월은 이제 노골적인 시장주의자, 파쇼정부를 상대로 반전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과연 한국에서도 일어날 것인가?

새로운 좌파운동의 중심 ‘쉬드’

   
  ▲미셸 데스마흐.
 

쉬드철도의 두 활동가는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거대한 투쟁을 앞두고 있는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첫손을 내밀기 위해, 일주일간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국의 노동자들과 사회변혁을 향한 열정을 나누었다. 아나키즘적 조합주의로 새로운 좌파운동의 중심이 된 쉬드.

쉬드는 1988년, 프랑스의 거대노조 CFDT 소속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정부와 타협하는 노조 지도부의 결정에 불복하여 파업을 벌인 후 축출되어, 이듬해 새롭게 조직한 수평적 노조 연대체이다.

1995년 겨울의 대대적인 공공부문 파업 때도, 우경화한 프랑스 최대노총 CFDT는 정부를 지지하였고, 이 때 교육, 철도부문의 노동자들이 또 다시 이탈, 쉬드 철도노조와 교직원 노조를 건설하였다. 현재 쉬드는 전국에 걸쳐 42개의 조직에 투쟁적이고 참여적인 8만의 조합원이 있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1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프랑스 노조의 역사 속에서 거대 노총들은 예외없이 관료화, 경직, 권력화의 길을 걸었다. 사회당이라는 간판으로 집권에 성공한 미테랑과 그의 친구들은 거대 노총들을 비롯하여, 공산당, 녹색당 등에 모두 빵부스러기를 조금씩 나눠 줌으로써, 이제 좌파에게 태평성대가 왔음을 선언하고, 좌파의 날개를 부러뜨렸다.

이후 노골적으로 우경화, 어용화된 CFDT, 여전히 좌파임을 주장하나 불어난 몸집 때문인지, 행동에 나서는데 굼뜬 CGT. 그들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거역할 수 없는 삶의 조건으로 인정할 것을 노동자들에게 종용했고, 자본가들과 협력하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개평을 조금씩 얻어낼 것을 조합원들에게 제시했고 파업을 걷어치우자고 제안했다.

프랑스 노총의 우경화와 어용화

SUD는 사회변혁을 포기하고, 현존하는 계급질서에 충실하게 복무하도록 하는 노총에 거역한 노동자들이 수평적 연대와 조직 내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설립한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 연합이다.

노조 지도자들끼리 정보와 전략을 공유하고 노동자는 그들의 명령을 하달받는 방식의 수직적 노조가 아니라, 평조합원의 목소리가 모여 중앙에 전달되고, 그들이 파업의 주체가 되며, 그들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평등하게 담기는 노조연대를 그들은 꿈꾸었고, 20년 가까이 그 아나키즘적 조합주의를 실현해 가고 있다. 어떻게?

명확한 해답은 없다. 정해진 로드맵이 존재한다면 그건 아나키즘이 아니다. 그들은 사람을 동원하거나, 조직하지 않고, 수직적 권력을 조직 내에서 분배하지 않으며, 매순간 자발적인 힘과 목소리들이 모여, 역사의 큰 산을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아나키스트의 원칙을 잊지 않았고, 일은 매번 그렇게 진행되었다.

조합원 8만명을 헤아리는 쉬드철도노조 전체 상근자는 10여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요한 사안이 발생하였을 때, 이 숫자는 50명으로 즉각 늘어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연대체일 뿐 중앙의 노조본부가 각각의 개별노조를 감시하고 감독하지는 않는다.

아나키스트 노조

   
  ▲엠마누엘 비고.
 

그러나 모든 조합원들은 절차를 밟거나 기다리지 않고, 즉각 지역의 노조 활동가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각 지역에 흩어져있는 활동가들은 조합원이 문제해결을 호소할 때, 발로 뛰며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다.

SUD에 속한 모든 노조활동가들의 관계는 수평적이며 밀접하고, 그들은 모두 서로에게 “동지”이다. 40년 동안 노동운동을 했고, 쉬드철도노조(Sud Rail)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미셸 데스마흐와 이제 서른 중반인 파리동역의 역무원 엠마누엘 비고는 서로 어깨를 툭툭 치며 농담을 주고 받는 믿음직한 동지일 뿐이다.

노조전임자를 6년 이상 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은 조항, 42개의 단위 조합이 모여서 전체투표를 할 때, 노조원이 15,000명이나 되는 조합도, 500명에 불과한 조합도 모두 동일하게 한 표씩을 행사할 수 있게 해 놓은 점도 모두 관료화를 통한 조직 내 민주주의의 훼손을 우려한 예방 장치들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선 적어도 조직 내 패권장악을 위해 조합원을 집단 가입시키고 조합비를 대납하는 등의 황당한 짓은 근절될 수밖에 없겠죠)

조합원들은 자유롭게 정당활동을 할 수 있지만, 노조 자체가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사회당의 집권이 전체 좌파진영에게 독약이었던 지난 경험을 뼈저리게 느끼는 탓이다.

쉬드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수호하는 일상에서의 투쟁 이외에 자본주의를 배격하기 위한 사회변혁운동을 그들의 주요한 목표로 삼는다. 그들은 이를 결과에 대한 투쟁과 원인에 대한 투쟁으로 설명한다.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언제까지 결과에 대해서만 싸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노동운동 뿐 아니라, 여성운동, 주거권,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 또한 쉬드의 특징이다. 사회변혁이라는 거대명제를 성취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가장 먼저 제거되고 축출되는 사회적 약자들과의 연대를 하는 것이 투쟁의 전선을 선명하게 그리며 싸울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쉬드 교직원 노조의 활동가들에게는 학교에까지 체류증이 없는 학생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들이닥친 경찰로부터 학생들을 지켜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임무이기도 하다.

쉬드의 노조활동가들은 대부분 현장에서 본연의 작업을 병행한다. 엠마누엘은 파리동역 매표소에서 표를 파는 역무원이다. 독일어, 영어, 이탈리아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그녀는 70%는 역무원으로, 30%는 노조 활동가로 일을 하며, 자신의 재능에 걸맞게 쉬드철도노조에서 국제담당을 하고 있다.

50세까지 철도기관사로 일하고 16년전 은퇴한 후, 자칭 매우 행복한 은퇴 후의 삶을 보내고 있는 미셸 데스마흐는 쉬드노조에서 은퇴자 담당이며 역시 국제부문에서도 활약하는 활동가이다.

쉬드는 노동자들 간의 국제연대를 매우 중요한 활동의 방향으로 삼는다. 자본가들은 G8, WTO니 하는 기구들을 통해 자신들의 연대를 도모하며 그것을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강제하려고 한다. 전 세계 노동자들도 연대를 통해서 자본가들을 위협하고 압박하며 함께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이다.

미셸은 멕시코의 치아파스, 팔레스타인, 루마니아, 헝가리 등 모든 격렬한 투쟁의 현장을 쉼없이 누비고 다니며 국제연대의 현장에 SUD의 깃발을 휘날렸다. 현재 유럽 내에서의 왕성하고 공고한 연대는 물론, 아프리카, 남미 지역 노조들과의 연대를 구성한 상태이고, 지난해 일본에 이어 올해 한국을 방문하며, 아시아지역과의 연대를 건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프랑스가 철도파업을 하던 날, 독일이 같이 동맹파업을 했던 것처럼, 프랑스와 한국의 철도가 같이 멈춰서서 양국의 자본가들에 저항하는 그 날을 이들은 고대하고 있다.

미셸은 말한다. 자본가들은 비정규직, 파견, 위탁 등으로 끊임없이 노동자들을 균열시킨다. 그 균열된 틀에 맞추어 노동자들도 노조를 조각내면, 싸움은 처음부터 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쉬드철도노조는 철도기관사, 엔지니어, 역무원, 청소 담당 등 모든 철도부분의 노동자들을 하나의 노조에서 묶고 있다.

부산지역 철도노조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서슴없이 노동자 내부의 균열은 투쟁에서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역 구내에서 투쟁 중인 쉬드철도노조 조합원들
 

수평적 연대의 힘

조합원 70-80만을 거느린 막강한 거대노조들의 틈바구니에서 이제 출범한지 20년도 되지 않은 쉬드가 좌파진영에서 얻고 있는 그 막강한 영향력은 이제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 비결을 이들은 노조 안팎의 노동자들, 사회단체들을 자유로우면서도 긴밀하게 연결하는 수평적 연대에 있다고 본다.

그들은 자발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부여한 상태에서 공동의 투쟁이 필요한 상황에서 맹렬한 연대의 깃발을 올린다. 실제로 지난 해 11월 열흘간 이어진 철도파업에는 쉬드를 비롯한 모든 노총들 소속의 노동자들이 연대했다.

9월 사르코지 정부가 특별연금제도개혁안을 내놓자마자, 쉬드는 모든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상대로, 발 빠르게 현 상황이 그들에게 미칠 구체적 피해들을 숫자화, 도표화 하여 조합원들 교육을 해갔다. 모든 미디어가 사르코지의 언어를 반복하고 있는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상황을 노동자 입장에서 그리고 파악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파 어용노조들까지 포함한 모든 철도노조가 같은 날 동시에 파업에 임하도록 하는데 동의를 이끌어 냈다.

수직적 조직을 움직이는 힘은 권력이다. 하나의 권력이 미치는 힘의 범위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언제나 패악을 뿜어내게 마련이다. 수평적 연대를 지탱하는 힘은 보이지 않는 개개인의 자발성이다. 수평적 연대의 구조에서는 한 사람이 손을 벌리는 순간, 모든 사람과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다.

손을 내리는 순간 그들은 한없이 자유롭고 단조로운 하나의 객체로 돌아온다. 가장 자유로우면서 동시에 가장 강력할 수 있는 수평적 연대의 마술이 그 위력을 발휘했던 순간이었다.

특별연금개혁은 평등을 가장한 강탈

지난해 열흘간의 파업을 유발했던 정부의 특별연금개혁은 무엇인가? 철도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소위 “특별”연금제도는 이미 1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민간기업이었던 프랑스 철도회사가 철도노동자들에 대한 복지제도로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 때부터 완전고령보험의 만기연수는 37.5년이었다.

1945년, 2차대전 직후, 레지스탕스세력을 중심으로 한 의회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연금제도를 도입했고, 당시에는 40년이 만기연한이었지만, 점차 철도노동자의 연금제도를 모델로 연수를 축소시켜나갈 것을 정부는 약속하였다.

그러나 그 후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되었다. 7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신자유주의는 프랑스 사회에 스며들기 시작했고, 오일쇼크가 가져온 실업은 만성적이고 장기적인 사회적 문제로 고착되면서, 이제까지 더 많은 것을 요구해왔던 노동자의 투쟁은 이후 지금까지 얻은 것들을 지켜내는 투쟁으로 전환될 수 밖에 없었다.

민간 부분에 이어, 공무원까지 37.5년의 만기연한은 40년으로 후퇴하였고, 이제 정부는 최후까지 100년 전에 만들어진 이 제도의 혜택이랄 수 있는 37.5년의 만기연한을 누리고 있는 철도노동자들을 향하여 “평등”의 이름으로 “특권”을 버릴 것을 종용하고 있다.

철도노동자들의 요구는 간명하다. “모든 국민에게 37.5년을” 이는 철도노동자들의 새로운 요구가 아니며, 정부가 이미 50년 전에 약속했던 사항이다. 프랑스의 경제력은 유로화의 상승과 더불어 점점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의 몫을 강탈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르코지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좀 더 일하고, 좀 더 벌자”는 간계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러한 개혁이 이루어지면, 평균적으로 사람들은 약 14%의 손해를 보게 된다. 현재 35세인 엠마누엘이 55살에 정년퇴임을 하고 20년 동안 연금을 받는다고 할 때, 약 1억5천만원의 손해를 본다고 한다.

사르코지 재임 기간이 채 1년도 되지 않아, 더 일하고 덜 벌게 될 뿐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기 시작했고 이는 바로 사르코지에 대한 지지율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그에 대한 지지율은 1월에만 8%포인트 하락했고 응답자의 55%는 사르코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개정된 연금법에 의하면 최소 연금수령액은 140만원 가량에서 그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 돈으로 파리에선 집세 정도를 간신히 낼 수 있을 뿐이다. 정부가 노리는 것은 연금만으로 노후를 살아갈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고, 시민들이 결국 민간보험회사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연금 부분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민영화일 뿐이다.” 라고 엠마누엘은 전한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가들의 거대한 강탈이며, 사르코지라는 자본가들의 꼭두각시가 경찰들을 앞세워 벌이는 대범한 강도짓임이 분명하다.

사르코지는 2008년에 들어서자 마자,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40년의 만기연금연수를 41년으로 연장할 계획을 선포했다. 그는 이 기간을 45년까지 늘일 것을 구상하고 있다. 철도노동자들이 37.5년을 고수하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들이 막고 있던 둑이 무너지면, 사르코지는 끝없이 오로지 지배계급의 이해만을 위해 복무할 것이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다

95년 프랑스의 겨울의 전설적인 공공부분 파업을 신자유주의에 저항한 최초의 민중적 저항이라고 표현한다면, 2005년 유럽헌법 반대투쟁의 승리는 그 첫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된 유럽의 숭고한 이미지는 많은 시민들의 판단력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사회당과 거대노총 CFDT(조합원 85만), 르몽드와 리베라시옹을 비롯한 프랑스의 모든 주요 미디어들은 신자유주의로 범벅된 유럽헌법을 통과시키고자 안간힘을 썼으나, 시민들은 더 이상 우리를 바보 취급하지 말라며, No를 말함으로써 그들을 우롱했던 권력의 뺨을 보기좋게 올려붙였다.

아탁을 비롯한 반세계화단체, 급진좌파정당(혁명적공산당연맹, 노동자투쟁당 등), 쉬드노조를 비롯한 좌파노조들은 이 때 신자유주의적 유럽헌법 반대투쟁에 하나되어 투쟁했고, 값진 승리를 얻었다. 프랑스에서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한 전 사회적 인식이 급격히 진일보했음은 물론이고,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좌파 전체의 연대가능성이 가시화되었던 순간이었다.

전에 없이 격렬했던 최초고용계약법(CPE)도 저지 투쟁도 이제까지 쌓여온 불만이 폭발한 케이스였다. 하루에 200만명이 넘는 자발적인 시위대가 유혈시위를 벌였고, 대학생, 고등학생, 불안정노동에 종사하는 젊은 층들이 투쟁의 중심에 있었다.

기존 운동단체들이 이들을 조직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속에 쌓여있던 분노가 일시에 폭발하며 자발적인 투쟁이 릴레이처럼 이어졌다. 학생들의 투쟁의 열기가 노조들과, 사회단체들의 동참을 이끌어 냈고, 여기에 교수, 선생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거의 30여년 만에 모든 사회계층이 하나 되는 저항을 펼쳤고, 승리했다. 쉬드가 말하는, 그리고 68을 발발시켰던 아나키즘적 정신이 작렬했던 또 한 번의 순간이었다.

“덜 일하고 행복하게 살자”

사르코지는 파업기간에도 최소한의 공공서비스가 유지되도록 하겠다고 대선 중 공약했고, 언론은 마치 지난 파업기간 동안에 그의 공약이 지켜질 것처럼, “파업 중에도 미니멈의 서비스”를 슬로건처럼 내걸고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그러나 이들은 “파업승리로, 일년 내내 최대한의 서비스를”를 내걸고 맞대응했다. 여론? 많은 한국의 노동자들이 "어떻게 여론을 파업에 호의적으로 이끌어내느냐"는 것을 물었다.

이 뻔뻔한(?) 프랑스 노동자들의 첫 번째 대답은 “노동자는 파업을 시민들에게 허락받지 않는다. 파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파업을 한다”였다. 그러나 물론 시민들의 마음을 얻으면 파업이 더 오래 지속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평소 시민단체들과의 연대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 프랑스에는 다양한 형태의 시민단체들이 있고, 철도 부분에 있어서도 철도이용객 시민단체들이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철도공사가 철도요금을 인상할 것을 검토하면, 노조는 이를 시민단체와 논의한다.

그리하여 시민단체와의 합의안을 노조의 안으로 제시하며 시민들과 함께 철도공사와 싸운다. 파업이 불가피한 상황에 임박해서도, 반드시 시민단체들과 협의한다. 그들에게 파업의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시켜, 공동의 명의로 만든 전단을 만들어 거리에서 함께 전단을 나누어 준다. 노조가 단독으로 만든 전단을 노조 홀로 나눠주는 것보다 훨씬 설득력 있는 것이 당연하다.

실제로 파업의 현장에서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더 이상 바보가 아니고, 철도노동자들이 전체를 대신한 대리전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다. 이 둑이 뚫리면 사르코지는 연금만기 연한을 41.42… 45년까지 연장할 것이다. 철도노동자들의 저항은 결국 모든 국민들을 위한 저항이다.

대통령 인수위가 전국의 철도 역사를 50%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언급한 바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만약 그들이 그런 뉴스를 들었을 때 당장 할 일은, 역사가 없어지게 될 지역을 찾아가 주민들과 연대투쟁을 조직하는 일이다.

사르코지를 닮고 싶어 안달난 이명박, 이명박을 사르코지에 견주고 싶어 몸살난 한국의 언론들에게, 사르코지와 이명박이 차곡차곡 벌고 있는 매는, 오랜만에 전체 좌파를 하나로 묶어줄 좋은 건수를 제공해 주고 있음을 넌지시 귀뜸해 줘야할 때이다.

사르코지가 “더 일하고 더 벌자”고 말할 때, 쉬드 노조는 “덜 일하고 행복하게 살자”고 선동한다. 선택은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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